소프트웨어가 내 형량을 결정한다고?

2016.06.29 07:15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그루즈가 미래에 발생할 범죄 장면을 분석하는 모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그루즈가 미래에 발생할 범죄 장면을 분석하는 모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어떤 범죄자가 다시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을지 낮을지 소프트웨어가 결정한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사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측정한 재범 가능성을 근거로 형량을 부과한다면 어떨까요?

 

사실 이건 이미 미국 등에서 꽤 예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자신의 재범 확률을 판정한 소프트웨어의 알고리즘을 밝혀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범죄자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소프트웨어 분석 결과, 당신의 재범 가능성은 '높음'입니다

 

미국 위스컨신주에 사는 에릭 루미스라는 사람은 2013년 총격 사건 현장에서 목격된 차를 타고 다니다, 이를 발견한 경찰 단속을 피해 달아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전에도 성범죄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판사는 그가 재범 확률이 높다며 6년의 징역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위스컨신 사법주부가 사람들의 재범률을 측정하는데 쓰는 ‘컴파스’ (Compas)라는 소프트웨어의 분석 결과를 형량 결정에 참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루미스는 이에 대해 소송을 걸었습니다. 컴파스의 알고리즘은 어떤 분류 항목을 사용해 재범 확률을 평가하는지 밝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컴파스는 노스포인트라는 민간 기업이 만든 소프트웨어이고, 알고리즘은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루미스는 이 소프트웨어가 남자와 여자에 대해 다른 점수를 부여한다는 점도 문제삼았습니다.

 

위스컨신주 대법원은 지난 4월 심리를 벌였고, 조만간 판결을 내릴 예정입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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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스는 피고인에 대한 조사와 과거 행적 정보 등을 종합해 재범 확률을 산정하고, 교도소에서 어떤 감독을 받아야 적절할 지 등도 제안합니다. 컴파스 개발사는 ‘영업 비밀’이라며 이 소프트웨어의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루미스는 이 점을 파고 들었습니다. 알고리즘을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내려진 평가가 적절한 지 검토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입니다.

 

 

● 누가 언제 어디서 범죄 저지를까...소프트웨어는 안다

 

판결에 이같은 범죄 예측 소프트웨어를 쓰는 곳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유타, 버지니아, 인디아나 주 등에서 이런 소프트웨어를 활용합니다. 보통 과거 범죄 전력, 반사회성, 범죄적 성향, 범죄자들과 어울리는 정도, 성별, 연령 등을 기반으로 평가합니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런 기술의 활용은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재범 확률 계산뿐 아니라, 실제 범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지도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카고 경찰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총격을 가하거나 총을 맞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는데, 지난 메모리얼 데이 기간 총에 맞은 사람 64명 중 50명이 이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캔자스 시티 경찰도 이와 비슷한 예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법무부는 최근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징후 사전 예측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범죄자의 성향, 범행 수법, 기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정보 등을 전자발찌를 찬 사람의 위치 정보 등과 결합,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경찰에 실시간으로 통보합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비 오는 날 라디오에서 ‘우울한 편지’라는 노래가 나올 때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여경의 판단력에 의지한 것이지만, 이제는 다각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런 것들을 잡아낼 수 있게 됩니다.

 

경찰 역시 자체 데이터베이스의 데이터와 날씨 정보, 인터넷과 SNS에 흩어진 정보 등을 종합해 범죄 징후를 예측하거나 벌어진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원하는 빅데이터 프로그램을 개발 중입니다.

 

이스라엘의 페이셉션이라는 회사는 빅데이터 기반으로 사람들 얼굴을 분석해 테러리스트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을 추려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네, 범죄를 미리 예측하고 사전에 (예비) 범죄자를 붙잡아  가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그루즈가 미래에 발생할 범죄 장면을 분석하는 모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그루즈가 미래에 발생할 범죄 장면을 분석하는 모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돈테크무비] 범죄 '예측'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올랜도 총기 난사, 영국 의원 피살을 막았을까?

 

편견을 이길 데이터 알고리즘 고민해야

 

범죄를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 줍니다. 재범 가능성이 낮은 사람은 형량을 줄여 보다 효과적으로 사회에 복귀하게 할 수 있습니다. 범죄 예방에 필요한 경찰이나 사법부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역시 어딘가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를 앞으로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감독하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요? 범죄 예측을 위해 내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하는 것이 개인정보의 적절한 사용에 포함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수입이 없고, 폭력 전과가 있고,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쉬운 우범 지역에 살면 확실히 범죄에 연루되거나 재범을 저지를 확률이 커집니다. 그렇다고 한 개인을 특정 범주로 분류해 그에 따라 재범 가능성이나 형량 등을 판정하는 것은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칫 사회적 불평등이 더 쉽게 사법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리란 우려도 나옵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측정하는 알고리즘을 누가 어떻게 무슨 근거로 결정하느냐도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빅데이터에 기반한 분석 기술은 계속 발달하고 있고, 인공지능의 발전은 예측의 정확성을 더욱 높일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편견에 쌓이기 쉬운 판사나 경찰의 판단에 의지하기보다는 데이터에 맡기는 것이 더 공정할 수 있습니다. 분야는 완전히 다릅니다만, 알파고가 이세돌보다 나은 수를 뒀던 사례가 법조계에서도 재현될 수 있습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범죄 예방과 수사에 적용할 때, 데이터에 숨어들 수 있는 편향을 최대한 줄이는 길은 무엇인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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