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의 조상, 70만 년 전에 존재했다.

2016.06.20 18:14

 

지난 2014년 플로레스섬 마타멩어에서 70만 년 전 인류의 오른쪽 아래턱뼈 일부(가운데)와 치아가 발견됐다. 분석 결과 2003년 발굴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턱뼈(위)와 구조와 크기가 비슷해 그 직계조상으로 보인다.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왜소화된 인류라는 게 유력한 가설이다. 아래는 호모 에렉투스의 턱뼈. 이번 발굴결과는 논문 두 편으로 나뉘어 ‘네이처’ 6월 9일자에 실렸다. - 네이처 제공
지난 2014년 플로레스섬 마타멩어에서 70만 년 전 인류의 오른쪽 아래턱뼈 일부(가운데)와 치아가 발견됐다. 분석 결과 2003년 발굴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턱뼈(위)와 구조와 크기가 비슷해 그 직계조상으로 보인다.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왜소화된 인류라는 게 유력한 가설이다. 아래는 호모 에렉투스의 턱뼈. 이번 발굴결과는 논문 두 편으로 나뉘어 ‘네이처’ 6월 9일자에 실렸다. - 네이처 제공

“(2012년 마지막으로 현장을 방문한) 모우드는 구멍을 더 많이 파고 작업 속도를 높이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는 정말 절실하게 뼈가 나오기를 바랐던 것이죠.”
- 게릿 판 덴 베르그, 이번 발굴을 이끈 울런공대학 고생물학자

 

학술지 ‘네이처’ 6월 9일자에는 호주 울런공대학 고생물학자들의 논문 두 편이 나란히 실렸다. 그런데 저자 가운데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한 명 포함돼 있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일급 저널의 경우 논문을 투고해 게재되는 데까지 보통 6개월은 걸리고 때로 1년이 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사이 저자가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학술지 ‘사이언스’ 9월 12일자에 실린 한 논문은 굉장히 비극적인 예로 저자 가운데 무려 다섯 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2014년 서아프리카 세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에볼라바이러스의 기원과 전파경로를 밝힌 논문으로 미국 하버드대와 시에라리온 케네마정부병원 연구자들이 주도한 공동 연구 결과다.


그런데 논문이 나오기 한 달 반 전인 7월 29일 방역을 지휘하던 케네마병원의 세이크 후마르 칸 박사가 에볼라로 사망했고 비슷한 시기 다른 의료인 네 명도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실상 국가의 의료체계가 붕괴된 상태에서 병의 확산을 막고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시에라리온의 의료인이 200여 명이나 됐다고 하니 이들의 숭고한 희생에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이번 고생물학 논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즉 논문이 다룬 70만 년 전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게 2014년인데 이 저자는 2013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다른 저자들은 망자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발굴 성공 못 보고 사망


죽어서도 논문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울런공대학의 전설적인 인류학자 마이크 모우드다. 고인은 고인류학 발굴역사에서 손에 꼽힐 대사건인 2003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의 발굴을 이끌었다. 이듬해 ‘네이처’에 논문이 실리면서 ‘호빗’이라는 애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 인류와 모우드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이 발견이 놀라운 건 현생인류가 아닌 인류, 그것도 키가 1미터가 조금 넘는 피그미 호모 에렉투스가 불과 1만8000년 전에도 살고 있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인류로 여겨진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게 4만 여 년 전 일이므로 고인류학의 프레임이 크게 흔들렸다. 


몇몇 학자들은 한 술 더 떠 길고 편평한 발 등 호빗의 골격이 호모 에렉투스보다 더 원시적이라며 호빗은 호모 하빌리스 또는 심지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예(변종)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주장이 맞다면 아프리카를 벗어난 최초의 인류가 호모 에렉투스라는 인류진화의 역사는 전면 개편이 불가피하다.


반면 상당수의 학자들은 호빗이 피그미 현생인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침팬지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의 뇌용량(426cc)에 대해서는 소두증의 결과라고 해석했다(당시에도 지카바이러스가 있었을까?). 즉 병든 피그미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이다. 실제 호빗이 발굴된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는 지금도 피그미족이 살고 있다. 최근까지도 호빗의 실체를 두고 두 진영(피그미 에렉투스 대 병든 피그미 사피엔스)은 논쟁을 계속했고 각자 입장을 지지하는 논문들을 발표해왔다.


모우드 교수는 호빗 논문 발표 직후 벌어진 논쟁을 끝낼 유일한 길은 더 많은 유골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 추가 발굴을 계획했고 2004년부터 호빗을 발굴한 리앙부아에서 동남쪽으로 74킬로미터 떨어진 마타멩어(Mata Menge)에서 발굴에 들어갔다. 이곳은 1960년대 코끼리뼈와 석기 등이 다수 발견된 지역이다.


모우드 교수는 마타멩어 발굴에 전력했으나 악어와 코모도도마뱀 등 동물의 뼈만 잔뜩 발굴한 채 2013년 7월 23일 암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이듬해 10월 마침내 인류의 뼈 몇 개가 발견된 것이다. 즉 아래턱뼈 일부와 치아 여섯 개였다. 그런데 한 줌도 안 되는 이 뼈들이 고인류학에서 호빗의 위상을 확고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굴로 호빗이 병든 현생인류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었지만 그 기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즉 호빗이 호메 하빌리스의 직계후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발굴한 골격을 토대로 추정한 각 인류의 체격으로 왼쪽부터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다. - 네이처 제공
이번 발굴로 호빗이 병든 현생인류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었지만 그 기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즉 호빗이 호모 하빌리스의 직계후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발굴한 골격을 토대로 추정한 각 인류의 체격으로 왼쪽부터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다. - 네이처 제공

호빗 보다도 턱 작아


먼저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 뼈들은 대략 70만 년 전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20만 년 역사인 현생인류가 아닌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뼈들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놀랍게도 아래턱뼈와 치아의 크기와 형태가 호빗과 꽤 비슷했다. 턱뼈의 경우는 성인의 것임에도(사랑니가 박혀 있던 치조, 즉 턱뼈의 구멍이 뚜렷이 보인다) 호빗의 턱뼈보다도 더 작았다. 함께 발굴된 치아의 경우도 좀 더 원시적인 형태인 1번 어금니를 빼면 호빗의 치아와 비슷했다.


턱뼈와 치아 외에는 다른 골격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호빗의 조상이라고 봐도 별 무리가 없는 결과다. 무엇보다도 호빗이 소두증인 현생인류라는 집요한 주장이 이제 힘을 잃게 됐다. 호빗보다 머리가 더 작은 인류가 무려 70만 년 전부터 플로레스섬에 살고 있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신체 골격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인류의 키도 1미터 남짓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대략 100만 년 전 아시아에 진출한 호모 에렉투스 무리 가운데 일부가 플로레스섬에 들어와 고립됐다. 천적이 없는 대신 먹을 것도 부족한 작은 섬에 고립될 경우 몸집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섬왜소증이라고 부른다. 실제 섬왜소증으로 소보다 작아진 코끼리도 있었다.

 

아무튼 플로레스섬에 발을 디딘 인류는 몸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늦어도 70만 년 전에는 호빗의 체격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다만 이번 발굴로 호모 하빌리스가 직계조상이라는 가능성까지 배제된 건 아니다. 더 많은 발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번 두 편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이 오른 마이크 모우드 교수는 2013년 63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호빗 두개골을 지켜보는 포즈를 취한 모우드 교수. - 울런공대학 제공
이번 두 편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이 오른 마이크 모우드 교수는 2013년 63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호빗 두개골을 지켜보는 포즈를 취한 모우드 교수. - 울런공대학 제공

호빗의 연대추정 오류 밝혀져


이보다 앞서 ‘네이처’ 4월 21일자에는 약간 허탈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1만 8000년 전 으로 추정됐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연대를 10만~6만 년 전으로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호빗 발굴을 주도했던 울런공대학 고생물학자들의 연구로 여기에도 마이크 모우드 교수의 이름이 보인다.

 

연구자들은 당시 호빗의 뼈가 발굴된 지층을 면밀히 재조사한 결과 토양이 무너져 지층이 뒤섞였다는 걸 발견하고 주위의 보존이 잘 된 지층에서 발견된 시료를 갖고 연대측정을 다시 했다. 그 결과 기존 9만5000년~1만2000년 전 대신 10만~6만 년 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한편 플로레스섬이 포함된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현생인류가 발을 내디딘 건 대략 5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호빗이 현생인류일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결국 연구자들이 2004년 발굴 논문을 쓸 때 좀 더 면밀히 살펴봤더라면 호빗을 둘러싼 소모적인 현생인류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네이처’ 6월 9일자에는 관련 기사도 실려 있는데 2012년 마지막으로 발굴현장을 찾은 모우드 교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당시 전립선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의 모우드는 힘겹게 현장을 돌아다니며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며 발굴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에게 호빗의 역사를 무려 70만 년 가까이 끌어올릴 발굴을 지켜볼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고작 1년의 시간조차 유예해주지 않은 자연의 무정함이 새삼 서글프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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