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여행] 광주호, 식영정, 한국가사문학관에서 휘둘리는 마음을 잡다

2016.06.09 15:45

※ 뷰레이크 타임 (View Lake Time) :  누군가를 챙기느라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당신에게 걸고자 하는 시간이다. 호수여행을 하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본다. 그동안 소홀했던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 안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고! 하기 전> 광주호 뷰레이크 타임 코스  
코스 ☞ 한국가사문학관 → 식영정 → 광주호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누군가 툭 던진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질 때가 있다. 뷰레이크 타임 열두 번째 질문 ‘어떻게 하면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안고 담양으로 향했다. 

 

전남 담양군 고서면, 남면과 광주광역시 북구에 걸쳐 있는 광주호. - 고종환 제공
전남 담양군 고서면, 남면과 광주광역시 북구에 걸쳐 있는 광주호. - 고종환 제공

☜고!☞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발견한 글의 가치


명절을 제외하고 친척들이 모이는 일은 둘 중 하나다. 기쁜 일 아니면 슬픈 일. 며칠 전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에 친척들이 모였다. 다행히 고비는 넘기셨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필자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요즘 무슨 일 하는지,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형식적으로 건네는 질문 레퍼토리임을 알면서도 당당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은 마음을 찌르는 화살이다. 되도록 화살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언젠가부터 명절에 가지 않았던 이유다. 

 

1995년부터 건립을 추진해 2000년 10월 완공한 한국가사문학관. - 고기은 제공
1995년부터 건립을 추진해 2000년 10월 완공한 한국가사문학관. - 고기은 제공

글을 쓰고 있다고 하자 어떤 글을 쓰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돈벌이가 되고 안 되고가 중요했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것도 맞고, 불안정한 일인 것도 맞다. 조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뒤이어 이어진 한 마디가 필자의 마음을 찌르고 말았다. 이제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이런 말들에 휘둘리지 않을 때도 됐건만 아직도 내 마음은 단단하지 못한가 보다.

 

한국가사문학관 경내에 자리한 연못과 정원. - 고기은 제공
한국가사문학관 경내에 자리한 연못과 정원. - 고기은 제공

마음을 다시 잡게 된 건 한국가사문학관에서였다.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모두 이곳 담양에서 탄생했다. 이것만으로도 담양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자리하는 이유는 충분하지만 이유는 더 있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사림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한다.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호남 지방으로 내려온다. 물 맑고 볕 좋은 담양에 많은 정자와 누각이 지어진다. 인근에 자리한 식영정, 환벽당, 면앙정, 송강정 등이 그러하다. 담양권 가사문학은 조선 중기 이서의 낙지가를 필두로 20세기 정해정의 민농가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왔다고 한다. ‘담양=가사문학의 산실’이라 할 만하다.  

 

담양에서 전승되고 있는 18편의 가사. 강호 자연 생활을 비롯 명승지의 유람, 유배의 체험, 유교적 이념 설파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 고기은 제공
담양에서 전승되고 있는 18편의 가사. 강호 자연 생활을 비롯 명승지의 유람, 유배의 체험, 유교적 이념 설파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 고기은 제공

 

면앙 송순의 면앙집.(왼쪽) 송강 정철이 선조에게서 하사 받은 술잔.(오른쪽) - 고기은 제공
면앙 송순의 면앙집.(왼쪽) 송강 정철이 선조에게서 하사 받은 술잔.(오른쪽) - 고기은 제공

작품들을 차례차례 만나본다. 상춘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등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작품부터 도산별곡, 춘면곡, 산외별곡, 사향곡, 상명가라 등 생소한 작품까지 한 자리에서 찬찬히 읽어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고전문학작품은 외계어 같아서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다. 현대어로 해석한 것을 달달 외우기 바빴다. 작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감정도 얕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접하게 될 땐 다르다. 진솔한 감정들이 읽힌다. 외로움, 그리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은 시대가 달라도 통한다. 선인들의 작품을 통해 글을 쓰는 마음을 다시 잡아본다.  

 

정철의 성산별곡에서 성산의 가을 풍경 속 피리부는 목동을 표현한 동상. - 고기은 제공
정철의 성산별곡에서 성산의 가을 풍경 속 피리부는 목동을 표현한 동상. - 고기은 제공

☞스톱!☜ 꿀팁 3큰술 


<①큰술> 주소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가사문학로 877번지
<②큰술> 관람 요금 : 어른 2000원, 청소년, 군인 1000원, 어린이 700원 (65세 이상, 유치원생 무료)
<③큰술> 관람시간 : 09:00 ~ 18:00 (연중무휴)

 


☜고!☞ 식영정에서 광주호를 바라보다   


식영정으로 향한다. 한국가사문학관 옆에 자리하고 있다. 식영정은 호남의 문인인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이름은 임억령이 지었다. 식영정(息影亭)이 담고 있는 의미가 궁금했다. 쉴 식, 그림자 영, 정자 정.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 낭만적인 의미다. 하지만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다.

 

담양의 정자 중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을 꼽히는 식영정. - 고종환 제공
담양의 정자 중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을 꼽히는 식영정. - 고종환 제공

찾아보니 장자의 제물편에 나오는 우화인 그림자 도망치기의 의미가 숨어있었다.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바보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벗어나지 못한 채 쓰러져 죽게 된다. 그늘 속으로만 들어갔어도 그림자는 사라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뜻하는 그림자는 욕망이다.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이를 떨쳐낼 수 없음을 일깨운다. 이곳에서만큼은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로 보길 바라는 마음이 이름에 담겨 있었다.

 

서하당과 부용정의 운치를 감상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아본다.식영정 일원은 명승 제57호로 지정돼 있다. - 고종환 제공
서하당과 부용정의 운치를 감상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아본다.식영정 일원은 명승 제57호로 지정돼 있다. - 고종환 제공

이곳에 머물며 글을 쓰던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을 ‘식영정 사선’이라 불렀다. 그들은 이곳에서 주옥같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중에서 정철의 성산별곡이 마음에 머문다.  성산별곡은 서하당, 식영정의 사계절 경치와, 그곳의 주인 김성원의 풍류를 칭송하고 있다.


김성원은 생애 대부분을 성산의 자연에서 보낸다. 자연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무던하게 살아간 그. 자연의 흐름에 따라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한 개인의 삶을 예찬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보편성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더 감동 깊게 자리한다. 누군가가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봐주는 것만으로 살아감에 있어 큰 힘이 되지 않는가. 이 작품은 그것을 다시금 깨우쳐 준다.

 

1976년 9월 광주댐이 완공되며 생겨난 인공호수인 광주호. - 고종환 제공
1976년 9월 광주댐이 완공되며 생겨난 인공호수인 광주호. - 고종환 제공

식영정에서 광주호를 바라본다. 호수가 들어서며 사라진 풍경들이 있다. 성산별곡에서 성산의 봄 풍경을 묘사한 부분에 나오는 방초주, 성산의 여름 풍경을 묘사한 부분에 나오는 자미탄 등이 그렇다. 더위를 식혀주던 자미탄, 무릉도원 같은 방초주는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호수는 새로운 풍경으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 준다. 각자의 방식으로 쉬어가며 유유자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호수를 바라보며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본다. - 고종환 제공
호수를 바라보며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본다. - 고종환 제공

☞스톱!☜ 꿀팁 1큰술 


<①큰술>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76-1

 


광주호 뷰레이크 타임, 못다 한 이야기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찌르는 화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말을 건넬 땐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건넸으면 한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는 결국 스스로의 확신에 있다. 중심이 탄탄하게 잡혀 있다면 휘둘릴 일이 없다. 중심을 잡아나가는데 선인의 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 내 삶을 가치 있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은 용기 있게 걸어나가길 응원한다. 
 
 

필자소개
고기은. KBS, MBC 방송구성작가, 소셜커머스 쿠팡 여행 에디터를 거쳐 현재는 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길을 잃고 뜻밖의 풍경, 인연을 만날 때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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