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성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날 좋아해서? ‘Yes or No’

2016.06.12 10:45

▶고민 
옆 부서에서 일하는 그녀는 만날 때마다 밝은 미소를 보여줍니다. 눈이 딱 벌어질 정도의 외모라고 하긴 어렵지만, 나름 귀여운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어주면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사실 결혼식도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하였습니다. 이제 남자답게 대쉬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게다가 그녀의 S라인 몸매는 너무나 도발적입니다. 이런 여성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먼저 도발했으니, 남자로서 가만히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 정신과 전문의가 답합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세 줄 요약
1. 어떤 여성이 미소를 보여 주었다고 해서,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2. 외모만 보고 여성을 평가하는 것은, 광고만 보고 상품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3. 그녀의 결정에 승복할 자신이 없다면, 사랑의 고백은 다음 기회에……


세상 여자들이 모두 다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개강파티에서 술을 한잔 따라 준 ‘여성’친구도, 수업시간에 ‘굳이’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녀도,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해준 이름 모를 여성도, 심지어는 상냥하게 응대해 준 햄버거집 알바생도…… 사실 모두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라며 떠벌리고 다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아주 오랫동안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0년 동안 주변에는 ‘추파’를 던지는 여성이 늘 가득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사귀자고 말을 꺼내면, 기겁을 하고 떠나는 여성들. 여자란 동물은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주변에 있던 여성들은 (아마)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모두 남자의 착각일 뿐입니다. 이를 진화심리학에서는 성적 과지각편향(sexual overperception bias)라고 합니다.

 

사실 남자라는 동물은은 그렇게 진화했습니다. 여성의 아주 사소한 호의도, 대단한 것으로 부풀려서 생각합니다. ‘용기있는 자 만이 미인을 얻는다’라는 과학적 근거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말이 있습니다. 물론 미녀를 볼때마다 덮어놓고 들이대면, 거의 100%의 확률로 뺨을 맞겠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남성들이 많습니다. ‘천 번 정도 들이대면, 적어도 한번은 성공’이라는 식의 계산입니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보수적입니다. 지난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성은 아주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이는 단지 여성의 심리적 특성에 의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류학적인 의미에서 좋은 신랑감을 찾는 것은, 여자 쪽 집안 전체의 중대한 과업입니다. 이를 헌신회의편향(commitment skepticism bias)이라고 합니다. 즉 좋은 집안의 신랑감이 되려는 남자는 (과도하게) 험난한 평가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동서양의 전래 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양갓집 규수를 얻기 위해서는 사나운 용도 무찔러야 하고, 장인어른의 괴상한 질문에도 훌륭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미녀의 유혹도 이겨내야 합니다. 불확실한 가능성의 그녀를 얻기 위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미녀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식의 상당히 모순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은 바로 여성의 헌신회의편향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 편(☞마음에 두던 그 사람에게 고백을 받았어요. 하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어요(여성 편))에서 다루었으므로, 이정도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주변에서 좀 잘해주는 여성이 있다고 해서, 절대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남성이 있을 때, 여성들은 단지 친절한 미소나 배려로만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연정을 표현합니다.

 

빈 소주잔을 채워주는 식으로, 숨겨온 호감을 진지하게 꺼내 놓는 여성은 없습니다. 햄버거집 알바여성이 당신을 보고 밝은 미소로 응대한 것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서 그런 것이지 당신을 사모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성은 보통 우회적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느냐고요? 여성이 ‘아니요’라고 하면, 사실은 ‘예’라는 의미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도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직접 ‘발화’합니다. 여성이 ‘아니’라고 하면, 그냥 ‘아닌’ 겁니다.


두번째 고민은 조금 불순하군요. 상냥하게 대해주었다는 이유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몸매에 대한 발칙한 상상까지 하다니 말이죠. 하지만 사실 많은 남성들이 거의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남성만의 몇 가지 기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기준은 바로 ‘외모’입니다.

 

보통 남성들은 예쁜 옷도 안 입고, 예쁜 구두도 안 신고, 예쁜 장신구도 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남성들은 ‘예쁨’에 대해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짝을 고를 때는 예외입니다. 누구나 ‘예쁜’ 여성을 좋아합니다. 참 이상한 현상입니다. 왜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초기 진화심리학에서는 외모가 신체적 자질에 대한 보증서로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깨끗한 피부는 기생충 감염이 없다는 신호이고, 항아리형 몸매는 출산능력에 대한 긍정적 신호라는 등의 주장입니다.

 

게다가 예쁜 외모는 사회경제적 자질도 반영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얗고 연약한 피부는 햇볕 아래에서의 노동이 필요 없을 정도의 부유함을 암시한다든가, 심지어는 작은 오염이나 벌레에도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여성스러운’ 특성은 사실 ‘귀하게 자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식이죠. 이런 식의 적응주의적 주장들은 상당히 그럴 듯하지만, 증명하기도 어렵고 아마 상당수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진화인류학적 가설이 있습니다. 남성들이 예쁜 여성을 찾는 이유는, 바로 예쁜 딸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쁜 엄마가 아무래도 예쁜 딸을 낳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면 왜 예쁜 딸을 가지려는 것일까요? 예뻐야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 좋은 사위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남자들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미래의’ 잠재적인 사윗감은, 왜 예쁜 내 딸을 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또다시 예쁜 손주딸을 낳으려는…… 이런 식으로 끝없이 계속 됩니다. 그래서 이를 달음박질 전략(runaway strategy)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남성들은 예쁜 여성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예쁜 여성을 원하는 남성의 마음에 대한 진실은, 두 가지 가설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것입니다. 소위 명품은, 대개 제품의 질도 우수합니다. 그러나 제품의 질은 두 배정도 우수한데, 가격은 열 배 정도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명한 소비자는 두 가지 기준의 중간에서 적당하게 타협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어떤 유명한 명품 구두는 ‘너무’ 명품이라, 우천 시에는 신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무거운 철판이 들어가서 오래 걸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어느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가치에 대한 상징이 본질을 압도하는 일이 벌어지고는 합니다.


즉 진화심리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여성의 외모는 원래 건강한 배우자, 건강한 엄마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기능도 하지만, 실제로는 성적 경쟁에 의한 무의미한 과시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남성이 멋진 외모의 여성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물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체 자질을 온전하게 반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은밀한 성적 신호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즉 남성이 여성의 몸매를 보고 도발되도록 진화한 것이지, 여성이 신체를 이용해서 남성을 도발한 것이 (이론적으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뿐입니다.


정리해 볼까요? 주변에 상냥하게 대해주는 여성이 있다면, 그냥 친절로 받아들이고 젠틀하게 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친절과 호의를, 성적인 신호로 오인한다면 그나마 친절하게 해주던 사람들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순수한 친절과 호의로 답해준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전해오는 여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고민에서 말한 것처럼, 여성의 몸을 보며 남성이 경험하는 성적인 느낌은 그 자체로는 솔직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여성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치마에 빨간 루즈를 발랐으니, 남자로서 대응을 해주지 않으면 여자도 서운할 것’이라는 식의 반응은, 원인과 결과를 심각하게 혼동하는 것입니다. 설사 여성이 그런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목표는 아마 당신이 아닐 겁니다(당신이라고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는 말이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들이 갖추어야한 중요한 매너는, 바로 ‘No means No’, ‘Yes means Ye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고, ‘예’라고 하면 ‘예’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듭니다(Manners maketh man).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Manners maketh man.” 영화 ‘킹스맨’에서도 나오는 명대사지요?,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에필로그

 

남성혐오, 여성혐오 논란이 뜨겁습니다. 양쪽의 주장은 너무나도 극단적이라서, 어느 쪽도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진화적 차원에서는, 어느 쪽도 승산이 없습니다. 남혐 혹은 여혐의 주장을 기어이 관철시켜 승리했다고 하죠. 그러면 뭐가 남을까요? 약 12억년 전, 유성생식이 시작된 후 상대 성을 ‘사랑’했던 생물만이 지금껏 살아남았습니다. 상대 성을 혐오해보아야, 남는 것은 ‘외로움’뿐입니다.

 

※편집자주: 살림살이 좀 어떠십니까? 뉴스를 보면 도처에 안좋은 소식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취업 걱정, 중장년 층은 노후 걱정에 노심초사합니다. 경제, 정치 심지어 날씨까지 우리 편은 없어 보입니다. 본지는 인류학을 전공한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한번쯤 고민할 법한 주제를 선정, 지면을 통해 상담을 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마음에 품고 사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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