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가득한 대나무를 먹는 동물?

2016.06.04 13:00

한정된 먹잇감 가운데 무엇을 주식으로 삼느냐는 야생에서의 생과 사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이 선택에 따라 몸은 물론, 사회구조와 행동양식도 바뀐다. 야생의 생존게임에서 최종 승리한 원숭이들의 먹잇감 차별화 전략을 살펴보자.

 

GIB, Cacophony(W), Olivier Lejade(W) 제공
GIB, Cacophony(W), Olivier Lejade(W) 제공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당장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부터 어떤 공부를 할지, 어느 대학에 갈지, 누구를 사귈지, 10년 뒤엔 어디에 살지 등 결정할 것들이 산더미다. 이런 선택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완성된다.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해온 선택의 결과물인 셈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도 예외는 아니다. 지구에 등장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살아남기 위해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려야만 했고, 그 결과 지금의 서식지에 각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해야 했던 선택 중 가장 중요한 건, 단연 먹을 것이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원숭이와 그들의 먹이를 연결한 그림. 왼쪽부터 큰대나무여우원숭이,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 슬로우 로리스, 안경원숭이, 피그미마모셋. - 과학동아 제공
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원숭이와 그들의 먹이를 연결한 그림. 왼쪽부터 큰대나무여우원숭이,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 슬로우 로리스, 안경원숭이, 피그미마모셋. - 과학동아 제공

작고 날씬할수록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전세계에는 몸무게가 1kg도 안 되는 소형원숭이부터 200kg이상인 대형영장류까지 다양한 크기의 원숭이가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의 주식은 곤충, 박쥐, 과일, 나뭇잎, 나무진액 등 다양하다. 각각 칼로리나 영양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을 주식으로 삼냐에 따라 원숭이들은 몸의 구조나 행동 양식에 차이가 난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주로 사는 원시 원숭이의 일종인 ‘안경원숭이’는 체중이 1kg이 채 나가지 않는(100~140g) 아주 작은 원숭이인데, 엄청난 대식가다. 매일 자기 몸무게의 10%에 달하는 먹이를 섭취한다. 주식은 파리, 메뚜기, 매미, 바퀴벌레 등의 곤충과 애벌레. 곤충류는 칼로리가 낮으면서 단백질 함량은 매우 높은, 영양가가 높은 음식이다. 안경원숭이는 곤충류뿐만 아니라 도마뱀, 박쥐, 새, 그리고 때론 자기보다 큰 동물도 잡아 먹는다.


이토록 작은 원숭이가 체중에 비해 과도한 양을 먹는 이유는 다른 원숭이보다 높은 기초대사량에서 찾을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기본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영양가가 풍부하면서도 즉시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는 먹잇감을 주식으로 삼은 것이다. 단 구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동물을 주식으로 택한 탓에,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먹이를 잡는 데 사용한다. 오히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종일수록 영양가가 적은 먹이를 선택해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늘 풀잎만 씹어먹는 고릴라는 체중 당 기초 대사량이 적다.


소형 원숭이들은 몸집을 키우면 그만큼 먹는 곤충의 양을 많이 늘려야 하기 때문에 얻는 에너지보다 소모하는 에너지가 더 많은, 피곤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론 커지지 못한다. 즉, 몸무게가 일정 수준을 넘는 원숭이 중에는 순수하게 곤충만을 주식으로 삼는 종이 거의 없다.


물론 예외도 있다. ‘슬로우 로리스’라는 원시원숭이가 대표적이다. 안경원숭이보다 체중이 10배 정도 많이 나가지만 여전히 곤충을 주식으로 삼아 살고 있다. 비결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기초대사량이다. 먹이를 사냥할 때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가 아니면, 영화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나무늘보 ‘플래시’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이 때문에 느림보 원숭이로도 알려져 있다.

 

슬로우 로리스 원숭이는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곤충을 주식으로 고집했기에 느리게 움직이는 전략으로 기초대사량을 낮췄다. - Helena Snyder(W) 제공
슬로우 로리스 원숭이는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곤충을 주식으로 고집했기에 느리게 움직이는 전략으로 기초대사량을 낮췄다. - Helena Snyder(W) 제공

질 나쁜 먹이를 주식으로 삼는 차별화 전략


슬로우 로리스의 전략은 이뿐만이 아니다. 몸집에 걸맞게 엄청난 양의 곤충을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 남들이 건드리지 않는 곤충을 먹는다! 곤충도 다 같은 곤충이 아니다. 악취가 나거나 온 몸에 가시가 돋아 있어서 곤충을 주식으로 삼는 동물들조차 거들떠 보지 않는 종들이 있다. 슬로우 로리스는 이런 곤충들까지 먹이로 삼는 전략 덕분에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곤충을 선호하는 취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슬로우 로리스처럼 질 나쁜 먹이를 좋아하는 종이 또 있다. 남아메리카대륙에 서식하는 ‘피그미마모셋’을 비롯한 작은 원숭이들은 나무에서 나오는 나무진액을 주로 먹는데, 나무진액은 구하기 어렵고 영양분도 별로 없으면서 소화조차 쉽지 않은, 한 마디로 질이 매우 나쁜 음식이다. 단백질이나 비타민 함량이 매우 적고, 지방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포유류의 일반적인 소화효소로는 분해할 수 없는 특이한 성분(폴리사카라이드 복합체)이 들어 있어서 미생물 등 다른 생물체의 도움이 없으면 소화하기도 어렵다.


피그미마모셋은 이를 소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들의 위 속에는 나무진액 성분을 발효시킬 수 있는 미생물이 있다. 또한 미생물이 나무진액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분해할 수 있게끔 음식물들이 위에 오래 머문다. 피그미마모셋과 가까운 친척인 일반 마모셋은 음식을 위 속에 오래 지니고 있지 않는다. 씨앗처럼 소화되지 않는 물질을 빨리 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그미마모셋은 진액이 잘 나오는 나무 한두 그루 정도만 잘 지키면, 나무가 살아 있는 한 일가족이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힘들게 사냥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나무에 직접 상처를 내고 진액을 먹는데,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생산하지 않는다. 농부가 밭일을 하는 소를 소중히 여기듯 피그미마모셋도 나무진액을 주는 나무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이용한다.

 

초록 잎을 주식으로 하는 콜로부스 원숭이는 한꺼번에 잔뜩 먹은 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소화하는 데 보낸다. - Antony(W) 제공
초록 잎을 주식으로 하는 콜로부스 원숭이는 한꺼번에 잔뜩 먹은 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소화하는 데 보낸다. - Antony(W) 제공

“난 먹는 걸로 경쟁하긴 싫어!”


야생의 삶에서는 동물 사이에 먹이 경쟁이 몹시 빈번하게 벌어지며, 누군가는 생존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도태된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 잎을 주식으로 선택한다면 어떨까. 최소한 밥 먹는 문제로 다툴 일은 없을 것 같다.


구세계 원숭이(협비원소목 긴꼬리원숭이상과)에 속하는 ‘콜로부스 원숭이’는 초록 잎을 먹는 대표적인 원숭이다. 마치 소처럼 위 속에 공생 미생물을 갖고 있어서 초록색 잎에 있는 단단한 셀룰로오스 조직을 분해시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타닌 같은, 잎 속에 든 독성 물질도 해독할 수 있기 때문에 열대 우림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나뭇잎을 먹이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초록 잎에도 약점은 있다. 영양분이 매우 부족하다. 이파리를 주식으로 삼으면 다른 동물과 경쟁하지 않는 대신 엄청난 양을 먹어야만 한다. 그만큼 소화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콜로부스 원숭이들은 마치 내장지방이 가득한 중년 남성처럼 볼록한 배를 갖고 있다. 몸무게의 25%나 되는 엄청난 양의 풀을 위 속에 일단 넣은 뒤, 소가 되새김질을 하면서 풀을 소화시키듯 천천히 시간을 들여 분해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콜로부스 원숭이의 습성은 다른 구세계 원숭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원숭이나 필리핀원숭이는 하루 종일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거나 먹는 행동을 반복하는 데 비해, 콜로부스 원숭이는 나뭇잎을 한번 많이 먹은 뒤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코알라처럼, 나무 위에서 쉬면서 뱃속에 있는 나뭇잎을 발효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에 사는 일부 원숭이들도 초록 잎을 주식으로 삼는다. 각각 ‘큰대나무여우원숭이’, ‘작은대나무여우원숭이’,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대나무를 주식으로 살아가지만 편식이 엄청 심하다. 서로 다른 부위를 먹기 때문에 싸울 일 없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큰대나무여우원숭이는 대나무 줄기의 부드러운 부위를 먹고, 작은대나무여우원숭이는 잎의 아랫부분과 어린 싹을 먹는다.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는 그 중에서도 다소 독특하다. 어린 싹이 아닌 성장한 대나무만을 먹는데, 흔히 청산가리라고 알려져 있는 시안화칼륨 성분이 100g당 15mg이나 함유돼 있기 때문에 다른 두 종은 감히 먹을 엄두도 못 낸다.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가 매일 먹는 청산가리의 양은 몸무게가 비슷한 일반 원숭이 기준 치사량의 12배에 해당한다. 이렇게 독한 음식을 어떻게 소화시키고 독성을 배출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구한 세월 동안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와 대나무가 공진화를 해왔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현재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영장류들은 살벌한 생존게임의 최종 승자다. 이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자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위대한 존재다. 먹이를 둘러싼 이들의 고도의 차별화 전략은, 오늘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우리 인간에게도 훌륭한 귀감이 된다.

 

 

※ 필자소개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선임연구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부교수로서 영장류학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대학교 학부생 시절 일본원숭이가 눈싸움 하는 동영상을 보고 너무 신기해서 원숭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꿈을 키웠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