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망상과 환각…조현병(정신분열증)의 원인은?

2016.05.23 17:27

흥미로운 사실은 발생초기에 손상이 일어났음에도 비정상적인 행동은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 패트리시오 오도넬, 화이자 신경과학 정신 및 행동 장애 분과장


지난주 강남역 부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소위 ‘묻지마 살인’이라는 게 자신보다 힘이 약한 여성이나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여성혐오’라는 낯선 콘셉트까지 나오는 데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용의자 김모씨가 심각한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올해 서른넷인 김씨는 청소년 때부터 발병해 증상이 심해진 2008년부터 올해 1월까지 여섯 차례나 입원치료를 했다고 한다. 여성혐오 역시 ‘여성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망상은 환각과 함께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일찍이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들어 우울증과 비만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사실 우울증뿐 아니라 조현병도 환자가 상당한 정신질환이다. 조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인구의 1%에서 조현병이 발병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울증은 당사자가 고통을 당하지만(물론 가족도 힘들다) 조현병은 이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증상이 심해지면 제3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과거에는 정신질환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울증은 나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한 때 우울증으로 고생했다는 얘기를 하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스트레스가 만연한 현대인들이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조현병은 여전히 언급을 꺼리는 질병이다.


이는 과학분야도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활발히 연구가 진행된 반면 조현병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왔다. 특히 ‘조현병 유전자’ 같은 민감한 주제는 최근에야 손을 대고 있다. 그럼에도 2014년 학술지 ‘네이처’에서 특별부록으로 조현병을 자세히 다루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네이처’ 특별부록과 최근 연구결과 등을 종합해 조현병의 현주소를 진단해본다.

 

네이처 2014년 4월 3일자에는 조현병(정신분열증) 연구의 현주소를 담은 특별부록이 실렸다. 실제 조현병을 앓았던 화가 수 모간(Sue Morgan)이 당시 심리상태를 형상화한 그림을 부록의 표지 이미지로 썼다. - 네이처 제공
네이처 2014년 4월 3일자에는 조현병(정신분열증) 연구의 현주소를 담은 특별부록이 실렸다. 실제 조현병을 앓았던 화가 수 모간(Sue Morgan)이 당시 심리상태를 형상화한 그림을 부록의 표지 이미지로 썼다. - 네이처 제공

환경보다 유전 영향 더 커


‘유전이냐 환경이냐’는 질병이나 성격을 논할 때 사람들을 흥분시킨 물음이었지만 지금은 한풀 꺾였다. 유전과 환경이 대립적인 측면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인식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즉 ‘우울증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표현은 틀렸고 ‘우울증에 취약한 유전자형을 지니고 있다’가 올바른 표현이라는 말이다. 평온한 삶을 살면 아무 일도 없지만 어느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겪으면 이런 유전자형인 사람은 발병할 위험성이 높다는 말이다.


아무튼 조현병 발병에서 유전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일란성쌍둥이 가운데 한 사람이 조현병일 경우 다른 사람도 조현병이 나타날 가능성은 40%가 넘는다. 또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조현병이면 13%가, 두 사람 다 조현병이면 거의 50%가 발병한다는 결과도 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조현병을 앓는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진 노벨상 수상자 존 내쉬의 아들 역시 조현병으로 고생했다.

 

2002년 개봉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인 수학자 존 내쉬는 조현병으로 30여 년 동안 고생했다. 그의 아들 가운데 한 명도 조현병이 발병해 수학자로서의 경력이 중단됐다. - Peter Badge 제공
2002년 개봉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인 수학자 존 내쉬는 조현병으로 30여 년 동안 고생했다. 그의 아들 가운데 한 명도 조현병이 발병해 수학자로서의 경력이 중단됐다. - Peter Badge 제공

‘유전 대 환경’에서 ‘유전과 환경’으로 프레임이 바뀌면서 거부감이 줄어들자 과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조현병 유전자 사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네이처’ 2014년 7월 24일에 마침내 전환점이 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운데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이 3만6989명)의 게놈(정확히는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분석한 결과 게놈에서 조현병과 관련된 자리 108곳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83곳은 이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연구자들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현병 발병에 관여도가 큰 부분부터 조사할 경우 조현병 유전자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즉 유전자의 변이로 발병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년 반이 지나 올해 2월 11일자 ‘네이처’에 마침내 조현병 유전자의 실체를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즉 C4A와 C4B라는, 게놈에서 서로 나란히 있는 두 유전자다. 이 유전자들은 개인에 따라 복제수변이가 있고 복제수가 많을수록 발현량이 많다. 분석 결과 C4A 유전자가 많이 발현될수록 조현병에 걸릴 위험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두 유전자는 뉴런 시냅스의 가지치기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즉 뇌의 발달과정에서 뉴런 사이에 시냅스가 새로 생기거나 기존의 것이 사라지면서 뇌의 회로가 정교하게 완성된다. 그런데 이 조율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될 경우 가지치기가 잘못돼 회로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2014년 과학자들은 게놈을 분석해 조현병과 관련된 자리 108곳을 찾았다. 최근 그 가운데 한 곳에서 뉴런 시냅스의 가지치기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C4A와 C4B의 복제수(copy number)가 개인마다 다르고 그 결과 유전자의 발현량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4A가 많이 발현될수록 조현병 위험성이 높다. - 네이처 제공
2014년 과학자들은 게놈을 분석해 조현병과 관련된 자리 108곳을 찾았다. 최근 그 가운데 한 곳에서 뉴런 시냅스의 가지치기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C4A와 C4B의 복제수(copy number)가 개인마다 다르고 그 결과 유전자의 발현량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4A가 많이 발현될수록 조현병 위험성이 높다. - 네이처 제공

오메가3, 예방 및 치료 효과 상당


조현병에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동서고금(1908년 정신분열증(schizophrenia)라는 병명이 나온 뒤 각국의 조사결과를 봤을 때)을 막론하고 어느 수준의 비율로 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즉 후진국의 시골이나 선진국의 도시나 일정 수준의 환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환경이 발병 유무나 시기와 증상의 경중에 미치는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임신했을 때 겪는 상황이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 즉 이 시기의 영양 결핍이나 약물 복용, 심지어 인플루엔자 감염 여부 등도 아이의 조현병 발병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또 인종에 따른 차이도 보이는데 이 경우 신체 특성과 거주 환경이 어긋날 경우 더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미국 북부나 캐나다 같은 북미 고위도 지역에 사는 흑인의 경우 백인에 비해 조현병 위험성이 서너 배 더 높은데 이는 체내 비타민D 수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비타민D는 뼈뿐 아니라 뇌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흑인이 햇빛이 부족한 고위도에 살 경우 체내 비타민D 합성이 제대로 안 돼 뇌발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 결과라는 말이다.

 

조현병의 발명 메커니즘. 과거에는 도파민 뉴런(빨간색)의 지나친 흥분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본격적인 연구결과 글루타메이트(흥분성 신경전달물질) 뉴런(파란색)과 가바(GABA,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뉴런(회색)이 함께 개입하는 복잡한 네트워크의 장애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중격핵(nucleus accumbens)에서는 도파인이 넘쳐 환각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에서는 도파민이 부족해져 불안과 사회관계 위축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 네이처 제공
조현병의 발명 메커니즘. 과거에는 도파민 뉴런(빨간색)의 지나친 흥분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본격적인 연구결과 글루타메이트(흥분성 신경전달물질) 뉴런(파란색)과 가바(GABA,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뉴런(회색)이 함께 개입하는 복잡한 네트워크의 장애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중격핵(nucleus accumbens)에서는 도파인이 넘쳐 환각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에서는 도파민이 부족해져 불안과 사회관계 위축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 네이처 제공

한편 영양상태도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생선에 들어있는 오메가3지방산의 경우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발병 위험성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12주 동안 오메가3 캡슐을 하루 네 개씩 먹은 그룹은 5%만 발병한 반면 가짜약을 먹은 그룹은 28%가 발병했다. 오메가3가 뇌 뉴런의 세포막을 이루는 주성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결과다. 오메가3는 세포막의 구성성분일 뿐 아니라 항염증, 항산화 효과도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대 폴 앰밍거 교수는 “사람들은 나에게 오메가3지방산이 약물만큼 효과가 있는지 묻곤 한다”며 “그런데 내가 보기엔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앞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조현병은 대부분 청소년이나 성인 초기에 처음 발병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19세 전에 발병하는 경우가 남성은 40%, 여성은 23%에 이른다. 그런데 조현병은 발병이 되기 수년 전부터 조짐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때 선제적인 치료를 하면 발병을 막을 수 있거나 늦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인 환청이 처음 들릴 때(대부분 10대 중반에)는 이게 환청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3분의 1이 3년 이내에 발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지고 인지력이 떨어지면서 결국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짐이 있을 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즉 선제적인 약물복용과 비타민D와 오메가3 섭취를 포함한 영양요법, 인지행동요법(CBT) 같은 행동치료를 병행하면 큰 도움이 된다. 인지행동요법이란 자신의 상태를 마치 제3자가 바라보듯 들여다보면서 행동을 교정하는 심리치료법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를 음해하려든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힐 경우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사람의 행동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 누군가를 죽이라는 목소리가 들릴 때 이를 환청이라고 무시하는 훈련도 해야 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 존 내쉬가 회복기에 환청을 무시하는 장면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조현병 환자의 뇌(오른쪽)는 건강한 사람의 뇌(왼쪽)에 비해 뇌의 수축이 더 빠르게 일어난다. 그림에서 빨간 부분이 수축률이 높은 영역으로 환자의 전두엽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 Elsevier Science Publishing/Tyrone Cannon 제공
조현병 환자의 뇌(오른쪽)는 건강한 사람의 뇌(왼쪽)에 비해 뇌의 수축이 더 빠르게 일어난다. 그림에서 빨간 부분이 수축률이 높은 영역으로 환자의 전두엽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 Elsevier Science Publishing/Tyrone Cannon 제공

선진국 도시 환자가 증상 더 심각


보통 질병에 걸리면 의료체계가 잘 돼 있는 선진국의 도시인들이 경과가 좋기 마련이다. 에볼라의 치사율이 40%나 되는 것도 의료후진국인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현병은 그 반대다. 즉 대다수가 도시거주자인 선진국의 조현병 환자가 여전히 농경사회가 대다수인 후진국의 환자에 비해 대체로 병의 증상도 심하고 회복될 가능성도 낮다고 한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의 용의자도 이런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WHO는 ‘조현병 역설’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이 실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개도국의 완쾌율이 평균 37%인 반면 선진국은 15.5%라는 결과를 얻었다. 몇몇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농어촌 거주자가 많은 개도국의 경우 자연과 함께 하는 환경과 아직 정이 남아 있는 주변 사람들의 존재가 회복에 도움을 줬을 거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무튼 선진국의 도시 환경이 조현병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문득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 전 3~9세인 아이들이 하루에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미국은 두 시간인 반면 우리나라는 34분에 불과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청소년들도 그 경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 대다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선진화된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조현병이 발병에 최적인 환경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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