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탈취제도 없앴어요”… 엄마들 화학제품 공포 확산

2016.05.16 09:44

[동아일보]

“너, 죽고 싶어서 그러니? 가습기 아직 안 버렸어?”

세 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는 이정연 씨(38)는 최근 친정 엄마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크게 다퉜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뒤늦게 재조명되면서 친정 엄마가 가습기를 버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가습기가 아니라 살균제가 문제”라고 설득해봤지만 친정 엄마의 완강한 태도에 포기했다. 요즘에는 가습기를 사용하는 대신 젖은 빨래를 방 안에 널어놓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이 씨처럼 화학제품 전반에 대해 불신과 두려움을 갖는 ‘화학물질 포비아(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살균제 성분이 들어간 생활용품들뿐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효성과 안전성 검사를 마친 의약외품(구강청결제, 모기퇴치제 등)들까지 의심하는 수준이 되고 있다.

특히 탈취제와 방향제는 가정과 식당, 사무실과 차량 등 거의 모든 생활 공간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있어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섬유 탈취제 ‘페브리즈’의 경우 흡입 시 폐에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살균제 성분 ‘제4기 암모늄클로라이드’를 쓰는데도 구체적인 성분을 공개하지 않아 유해성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화학제품 포비아를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영유아(0∼5세)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다섯 살 아들과 세 살 딸을 키우고 있는 윤한주 씨(35·서울 송파구)는 “옥시라는 큰 기업도 거짓말을 했으니 이제는 아무도 못 믿겠다”며 “온라인 카페에서 다른 엄마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화학제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출시된 ‘어린이용’ ‘친환경’ 제품에 대한 불신이 덩달아 커지면서 미국이나 유럽 회사 제품을 온라인 직구를 통해 조달하는 엄마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제 등 살생물제(biocide)를 사용한 국내 329개 제품에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의 물질이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가 위해우려제품으로 관리하는 탈취제와 방향제 등은 유해성 시험을 거치지만, 기존에 이 범주로 분류되지 않았던 제품의 독성이 문제다.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단체 행동에 나서고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옥시의 전현직 외국인 대표이사와 임원을 소환해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436명은 16일 국가와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각지대에 놓인 생활용품의 검증 및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소비자들이 화학제품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강대 화학전공 이덕환 교수는 “주방세제를 먹거나 흡입하지 않고 그릇을 닦는 데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정해진 사용법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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