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여행上] 해남 고천암호,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서 지금을 보다

2016.05.12 15:00

※ 뷰레이크 타임 (View Lake Time) :  누군가를 챙기느라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당신에게 걸고자 하는 시간이다. 호수여행을 하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본다. 그동안 소홀했던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 안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고! 하기 전> 고천암호 뷰레이크 타임 코스  
코스 ☞ 고천암호 → 고산 윤선도 유적지  

 
엄마께 여행을 가자고 할 때마다 엄마는 거절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연 그럴까. 가족을 챙기느라, 하루하루 바쁘게 사느라 여행을 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건 아닐까. 뷰레이크 타임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엄마였다. 이번 여행만큼은 엄마와 꼭 가고 싶었다. 오랜 설득 끝에 드디어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뷰레이크 타임의 열 번째 질문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에 대한 물음을 안고 전라남도 해남으로 향했다. 

 

해남 고천암호에서 하루가 저무는 시간을 함께 보다. - 고기은 제공
해남 고천암호에서 하루가 저무는 시간을 함께 보다. - 고기은 제공

☜고!☞ 고천암호에서 뜻밖의 선물에 웃다 


강릉에서 해남까지는 무려 508km. 새벽에 출발해도 점심 때쯤에나 도착하는 거리다. 서둘러 출발했다. 부모님과 필자. 이렇게 셋이서만 떠나는 여행은 세 살 이후로 처음이다. 그래서 어느 여행보다도 들떴다. 하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전 이상징후를 보이던 아빠 차가 결국 말썽을 부리고 말았다. 예정에 없던 정비소가 첫 목적지가 되었다. 조마조마했다. 수리하는데 며칠 걸린다고 하면 어쩌지. 여행이 물거품이 될 위기다. 2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는 답변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영화 <서편제>,<청풍명월> 속 갈대밭이 바로 이곳 고천암호다.호수의 둘레는 약 22km. - 고종환 제공
영화 <서편제>,<청풍명월> 속 갈대밭이 바로 이곳 고천암호다. 호수의 둘레는 약 22km. - 고종환 제공

여행은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부터가 진짜 여행이라고 했다. 차도 수리했으니 불안했던 마음도 정비한다. 어느덧 3시가 넘었다. 해남에 도착할 때쯤엔 해가 저물 무렵이다. 첫 여행지는 고천암호가 되었다. 일몰을 놓쳐서는 안 될 장소이기 때문이다. 

 

새를 관찰하고, 갈대를 감상할 수 있는 자연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 고종환 제공
새를 관찰하고, 갈대를 감상할 수 있는 자연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 고종환 제공

고천암호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11월에서 2월 사이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온다. 특히 전 세계에서 서식하는 가창오리의 열에 아홉이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해 질 무렵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단연 하이라이트. 해남팔경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봄엔 그 명장면을 볼 순 없다. 대신 또 다른 명장면이 숨어 있었다. 호수 옆으로 드넓은 청보리밭이 보인다. 바람의 지휘에 따라 초록 물결이 넘실거린다. 청보리밭의 군무다. 뜻밖의 선물이다. 

 

순탄치 않았던 여정의 고단함을 씻겨주던 청보리밭 풍경 - 고종환 제공
순탄치 않았던 여정의 고단함을 씻겨주던 청보리밭 풍경 - 고종환 제공

풍경에 마음이 빼앗겨서일까. 한사코 사진 찍는 걸 거부하던 엄마가 카메라 앞에 섰다. 소녀 같다는 말에 수줍어하는 엄마. 오랜만에 행복해하는 엄마를 본다. 환하게 웃는 미소에 덩달아 웃는다.

 

웃는 엄마를 앞으로 더 많이 카메라에 담고 싶다. - 고기은 제공
웃는 엄마를 앞으로 더 많이 카메라에 담고 싶다. - 고기은 제공

엄마는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엄마의 일상이 오버랩된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게 문을 연다. 시계의 분침처럼 재봉틀이 돌아간다. 손님이 오면 재봉틀 소리는 잠시 멈춤이 된다. 이불을 사러 오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시장에 장을 보러왔다가 잠시 들르는 손님도 있다. 단골손님에겐 해우소가 되어 준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엄마의 손은 쉬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엄마는 바쁘다. 타지에 있는 딸들에게 보낼 반찬을 만든다. 혹여 밥을 거르지는 않을까. 자신의 피곤함보다 자식 걱정이 늘 먼저다. 엄마의 하루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난다.


엄마의 하루에서 엄마는 없다. 누군가를 챙기는 것으로 시작해 누군가를 챙기는 것으로 끝이 난다. 거울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는 엄마. 그런 엄마가 카메라 속 자신을 보는 모습은 낯설었다. 여행에 와서야 비로소 자신을 보는 여유를 찾는다. 

 

일몰 포인트 장소인 연곡교(왼쪽), 봄과 가을이 함께 머물러 있는 듯하다.(오른쪽) - 고기은 제공
일몰 포인트 장소인 연곡교(왼쪽), 봄과 가을이 함께 머물러 있는 듯하다.(오른쪽) - 고기은 제공

해가 저물어 간다. 아빠는 일몰을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그러다 셋이 입을 모아 ‘여기’라고 외친 곳을 발견한다. 위치를 확인해보니 연곡교다. 그곳에 서면 국내 최대 갈대군락지라는 말을 실감한다. 여전히 작년의 가을을 붙잡아 두고 있는 듯하다. 곳곳에 갈대가 무성하다. 

 

함께 바라본 일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다. - 고종환 제공
함께 바라본 일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다. - 고종환 제공

봄과 가을이 공존하는 가운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해남에서 일몰을 보는 건 처음이다. 아빠도 처음. 엄마도 처음이다. 지금이 더없이 소중하다. 언제 또 이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혹여 날씨가 흐렸다면 볼 수 없었을 일몰. 맑은 날씨인 것에도 감사하다.

 

아주 잠시라도 좋다. 하던 일을 멈추고 지금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 고종환 제공
아주 잠시라도 좋다. 하던 일을 멈추고 지금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 고종환 제공

해가 저물어가는 풍경을 몇 번이나 보며 살아갈까.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괜스레 뭉클해진다. 함께 바라본 일몰은 필자의 마음뿐 아니라 아빠와 엄마의 마음에도 화석처럼 새겨진다.

 


☞스톱!☜ 꿀팁 2큰술 


<①큰술>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고천암로 752 (또는 ‘고천암방조제’ 검색)
<②큰술> 일몰 촬영 포인트 장소는 연곡교다. 호수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중간 쯤에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가 연곡교다. 혹시 못 찾을 경우 ‘해남 연곡교’를 검색하면 된다.

 


☜고!☞ 지금을 쓰고 그리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원래 예정대로라면 해남에 도착해 첫 번째로 찾을 여행지였다. 돌발상황으로 인해 다음 날 찾게 되었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는데 또 다른 돌발상황을 맞았다. 녹우당을 기대하고 왔건만 녹우당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종가의 사정으로 개방하지 않는다는 답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어초은 사당과 고산사당 역시 문이 닫혀 있다. 1년에 한 차례씩 제사 때에만 개방한다. 아쉬움이 컸지만 그 덕분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을 좀 더 세심하게 볼 수 있었다.

 

녹우당 고택과 그 앞을 지키는 은행나무 - 고종환 제공
녹우당 고택과 그 앞을 지키는 은행나무 - 고종환 제공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대충 보면 손해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작품을 비롯해 600년 이상 해남 백련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해남윤씨 어초은공파의 역사유물이 전시돼 있다. 4600여 점에 이른다. 국가지정문화재도 수두룩하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니 <공재 윤두서 일가의 풍속화와 진경산수화> 기획특별전이 한창이다. 이를 통해 공재 윤두서 선생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으로 향하는 길 - 고종환 제공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으로 향하는 길 - 고종환 제공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특별전시실, 제1전시실, 제2전시실, 영상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고종환 제공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특별전시실, 제1전시실, 제2전시실, 영상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고종환 제공

공재 윤두서는 고산의 증손자다.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문인 화가다. 국보 제240호인 <공재 윤두서 자화상>이 대표 작품이다. 이 전시를 통해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석양수조도>라는 작품을 기점으로 자신의 일상적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농부, 시골 아낙네, 석공의 일상생활을 그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초로 백성들의 삶을 화폭을 담아내며 풍속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나물을 캐는 두 아낙네를 주인공으로 한 <채애도>가 인상 깊다. 그 당시 사회상을 고려한다면 과감한 작품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무심코 지나친 그날그날의 일상 풍경이 그의 손에선 작품이 되었다. 그에게서 일상을 허투루 보지 않는 자세를 배운다.

 

전시관 입구로 들어서면 공재 윤두서 일가의 풍속화와 진경산수화 작품을 먼저 만나본다. 내부 촬영은 할 수 없다.(왼쪽) 공재 윤두서의 가전고화첩 기념엽서로 눈으로만 담아야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가격은 각 2,000원.(오른쪽) - 고종환, 고기은 제공
전시관 입구로 들어서면 공재 윤두서 일가의 풍속화와 진경산수화 작품을 먼저 만나본다. 내부 촬영은 할 수 없다.(왼쪽) 공재 윤두서의 가전고화첩 기념엽서로 눈으로만 담아야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가격은 각 2000원.(오른쪽) - 고종환, 고기은 제공

공재 윤두서가 그림으로 일상을 담았다면, 고산 윤선도는 글로 일상을 담았다. 어부의 사계절을 담아낸 <어부사시사>.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벗으로 표현한 <오우가> 가 그렇다. 효종실록을 보면 고산 윤선도는 세상 사람들이 청탁하고 끌어주고 하는 꼴을 본받지 아니하고, 시골에서 본분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윤선도의 강직함과 올곧은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총 40수로 이루어진 어부사시사. 이 중 대표적인 춘사 4, 하사 7, 추사 2, 동사 8을 새겨 놓은 시비다. - 고기은 제공
총 40수로 이루어진 어부사시사. 이 중 대표적인 춘사 4, 하사 7, 추사 2, 동사 8을 새겨 놓은 시비다. - 고기은 제공

이로 인해 관직에 있던 세월은 10년이 채 되지 못한다. 20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을 땐 해남과 완도 보길도에서 은거했다. 그곳의 자연과 벗하며 풍경을 세심하게 보았다. 그는 평소 천문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고도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느끼고, 밤하늘을 보며 별을 헤는 모습에서 그는 순간순간의 지금을 느끼며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고산사당은 매년 음력 6월 11일 기제사를 지낸다. 수령 300년된 해송이 그 옆을 지키고 있다. - 고종환 제공
고산사당은 매년 음력 6월 11일 기제사를 지낸다. 수령 300년된 해송이 그 옆을 지키고 있다. - 고종환 제공

바깥으로 나서니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녹우당 앞을 지키고 있다. 가까이에선 카메라에 한 번에 담지 못할 정도의 높이다. 500살이 넘은 나무다. 어초은 윤효정이 아들들의 진사시 합격을 기념해 심은 나무다. 세월을 켜켜이 쌓아 이곳을 지키는 나무가 되었다. 잠시 나무 아래에 선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지금을 느껴본다.

 

녹우당을 돌아보지 못한 건 못내 아쉽지만, 그만큼 더 찬찬히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 고종환 제공
녹우당을 돌아보지 못한 건 못내 아쉽지만, 그만큼 더 찬찬히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 고종환 제공

☞스톱!☜ 꿀팁 5큰술 


<①큰술>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0
<②큰술> 관람시간 : 09: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③큰술> 관람요금 : 성인 2000원, 청소년, 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④큰술> <공재 윤두서 일가의 풍속화와 진경산수화> 기획특별전은 8월 31일까지 열린다. 이와 함께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 서헌강 선생의 <사진으로 보는 녹우당>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⑤큰술> 녹우당을 꼭 봐야 할 경우, 관람이 가능한지 문의전화를 해보길 권한다.
(061-530-5548, 061-533-4445)  


 

고천암호 뷰레이크 타임, 못다 한 이야기


여행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에 대한 답을 찾기에 앞서 ‘지금을 잘 살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보게 했다. 일몰을 바라보는 시간,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돌아본 시간은 지금을 생각하게 했다. 지금을 살지만 지금을 잘 살고 있진 못했다. 지난날의 후회로 지금을 또 후회로 남기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감정 때문에 지금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 누군가를 챙기느라 나의 지금을 챙기지 못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의 물음은 전남여행 다음 편에서도 계속된다.

 

 

필자소개
고기은. KBS, MBC 방송구성작가, 소셜커머스 쿠팡 여행 에디터를 거쳐 현재는 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길을 잃고 뜻밖의 풍경, 인연을 만날 때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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