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트, 잉크젯, 레이저…프린터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2016.05.08 08:00

10년 전만 해도 가정에서 PC를 구입할 때는 모니터나 마우스처럼 프린터가 필수품이었다. 이제는 종이에 문서를 찍는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종이에 찍는 인쇄물이 주는 가치는 남아 있다. 어찌 보면 ‘찍어야 할 것’과 ‘안 찍어도 되는 것’에 대한 구분이 뚜렷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근래 프린터 기술은 정체된 느낌이 없지 않았다. 프린터는 잉크를 작은 알갱이로 나누어서 뿌리는 잉크젯 프린터와 토너를 종이에 붙이는 레이저 프린터로 양분된 채 굳어져 버렸다. 프린터는 이제 5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떨어졌고, 인쇄 기술 자체가 ‘낡은 것’으로 치부되면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프린터를 관심 있게 바라본 것도 오랜만이다. 어느새 프린터가 자랑하던 자리는 태블릿이 차지했고, 회사에서는 문서 대신 전자 결재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기삿거리로서의 가치도 예전같지 않다. 하지만 그 사이에 프린터 시장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인쇄 수요는 걱정하는 것만큼 줄어들지 않았고, 프린터 기술은 느리고 잘 보이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따져보면 프린터의 발전은 콘텐츠의 역사이기도 하다. 추억처럼 지나간 프린터 기술의 발전을 되돌아봤다.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


개인이 컴퓨터로 뭔가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개인용 컴퓨터를 좀 오래 썼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프린터의 첫 기억은 ‘찌직~찌직’하면서 글자를 한 줄씩 찍어내는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였다. 해상도나 인쇄 속도같은 생각까지 더듬을 겨를도 없을 때다.

 

EPSON 제공
EPSON 제공

PC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소설이나 우스개 글들을 ‘갈무리’해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로 빼곡이 인쇄해 온 것을 교실에서 돌려보던 때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느린 전화선을 타고 한 줄씩 데이터가 넘어오던 것을 다시 한 줄씩 종이로 찍어내는 과정은 묘하게 닮아 있다.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는 종이 위에 잉크가 묻은 ‘리본’을 놓고 헤드가 특정 점을 핀으로 때려 점을 찍는 방식이다. 먹지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초기에는 한 번에 9개의 점을 찍을 수 있는 9핀 헤드 제품이 많았고, 기술이 좋아지면서 24핀 프린터가 쓰이기 시작했다. 이 핀 수는 해상도와도 관계가 있긴 했지만 그보다도 한번에 더 많은 점을 찍으면서 인쇄 속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핀이 아무리 빨라도 속도에 한계가 있고, 물리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시끄럽다. 지금은 일반 프린터로서는 시장에서 사라졌고, 산업용도로 많이 쓰인다. 은행 ATM 기기나 카드 전표기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성적표에 글자와 등수를 찍어주던 프린터도 이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의 역할이다. 리본 가격이 싸기 때문에 글자를 대량으로 찍는 단순한 인쇄에서는 아직도 쓰이고 있다.

 

 

레이저 프린터


초기 레이저 프린터는 값이 수백만 원씩 나갔다. 워낙 비쌌고 귀한 데다가, ‘레이저’라는 이름 때문에 ‘종이에 레이저를 쏘아서 미세하게 태우는 것으로 글자를 새긴다’는 헛소문이 다 돌기도 했다. 물론 아주 옛날 이야기다.


실제 레이저 프린터의 레이저는 종이에 정전기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어릴적 스케치북에 풀칠을 하고, 그 위에 모래를 뿌리면 그 자리만 모래가 남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레이저가 지나간 자리에는 토너가 달라붙고 그걸 다시 뜨겁게 열을 가한 드럼에 돌리면 토너가 고정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제공

글씨가 또렷하고 번지지 않기 때문에 서점에서 구입한 책과 다를 바 없는 결과물을 찍어낸다. 또한 속도도 빨라서 대량 인쇄에 아주 유리하다. 토너는 비싼 편이지만 한번에 찍을 수 있는 양이 많기 때문에 잉크보다는 인쇄 단가가 저렴한 편이다.


레이저 프린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로 학교에서는 칠판의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다. 노트 대신 이른바 ‘핸드아웃’이라고 부르는 PDF 파일이 뿌려졌고, 이를 인쇄해서 공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기업들도 서류에 손으로 쓰고 복사해서 여러 장의 문서를 만들어내던 문화를 바꾸기 시작한 것도 레이저 프린터가 나오면서부터다. 이제는 복사기와 통합되는 흐름도 어느 정도 정착된 듯하다.


레이저 프린터의 가장 큰 강점은 종이에 관계 없이 글자가 또렷하다는 것이다. 잉크는 미세하게 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잉크 방울을 더 작게 만들고, 잉크가 빨리 마르는 등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레이저 토너는 고체여서 번질 이유가 없다. 반면 액체가 아니기 때문에 컬러 인쇄에는 다소 약하다. 컬러 토너는 잉크처럼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토너도 입자를 아주 작게 만들면 액체처럼 보이는데 이 방법으로 색 표현력을 높이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저 프린터의 강점은 또렷한 흑백 인쇄물이다.


값도 많이 싸졌다. 요즘은 10만원 정도의 레이저 프린터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이 레이저 프린터는 인쇄 그 자체의 기술 발전보다도 소형화가 많이 이뤄지면서 기존의 큼직한 복사기 시장을 대체하고 있다.

 

 

잉크젯 프린터


실제로 가정에 제대로 된 프린터가 깔리기 시작한 것은 잉크젯 프린터가 도입되면서부터다. 30~40대에게 ‘첫 프린터가 뭐였나’라고 물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인 HP의 ‘500k’ 프린터를 이야기하곤 한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연예인의 사진을 인쇄하기도 했고, 어느 순간 필름으로 찍고 사진관에서 인화하던 사진의 프로세스도 디지털로 찍고, 잉크젯 프린터로 찍는 문화로 바뀌기도 했다. 사실 지금의 잉크젯 프린터 기술은 이때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잉크젯 프린터의 기본은 잉크를 작게 만들어 뿌리는 것이다. 작은 노즐에 미세한 잉크 방울을 만든 뒤에 종이에 찍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브랜드에 따라서 잉크젯 외에도 버블젯 같은 브랜드를 쓰기도 했는데 사실 방식의 차이일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hp 제공
hp 제공

일단 잉크젯 프린터는 조용하고,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 또한 잉크를 뿌리기 때문에 색을 쉽게 섞을 수 있다. 인화 수준의 사진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프린터 자체의 가격이 싼 것도 인기 비결이긴 했다. 다만 기술의 핵심이 되는 잉크와 노즐이 보통 잉크 카트리지에 포함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노즐이 막히면 프린터를 못 쓰게 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잉크젯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결과물이 좋았기 때문이다.


노즐을 더 작게 만들고, 잉크를 개선하면서 잉크젯은 계속해서 발전을 해 왔다. 잉크 카트리지 수는 1~2개에서 시작했지만 4색을 넘어 6색, 9색, 11색 등 그 수를 늘려 나갔다. 이론적으로는 3원색을 섞으면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지만 특정 색은 아예 기본으로 잉크를 만들어 넣는 것이다. 심지어 회색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색을 더 세밀하게 표현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잉크젯 프린터도 예전같지는 않다. 프린터의 수익을 책임지는 잉크는 이른바 ‘무한 리필 잉크’의 등장으로 수익에 영향을 받고 있다. 결과물에 차이가 있다지만 시장은 그 차이 대신 비용을 우선적으로 판단하는 듯 하다. 결국 프린터 제조사들은 정품 잉크의 가격을 낮추기도 하고, 직접 무한 리필 잉크 형태의 카트리지를 내놓기도 한다.

 

 

잉크젯 프린터의 진화


잉크젯 프린터는 주로 가정용으로 쓰인다. 반대로 기업에는 당연히 레이저 프린터가 떠오른다. 유지비용의 차이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속도다. 잉크 노즐을 품은 헤드가 종이를 수평으로 지나가면서 한 줄을 인쇄하고, 다시 종이를 조금 내려서 다음 줄을 찍어내는 방식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노즐로 인쇄하기 때문에 잉크젯 프린터의 가격이 낮아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잉크젯 프린터의 속도를 높이려면 이 과정을 빠르게 해야 한다. 따져보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헤드의 크기를 늘려서 한 번 지나가면서 찍을 수 있는 양을 늘리는 방법을 쓴다. 또 다른 방법은 헤드가 움직이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빨리, 더 많이 찍어내는 것이 기술인 셈이다. 주로 기업용 잉크젯 프린터들이 이런 방식을 써서 레이저 프린터와 인쇄 속도 격차를 줄이고 있다.

 

hp 제공
hp 제공

실제로 그 속도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A4 용지 한 장을 찍어내는데 헤드가 서너번만 움직이면 되고, 헤드의 이동 속도도 빨라서 인쇄 속도가 많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헤드 크기를 늘린 프린터도 나온다. 그러니까 헤드가 왔다갔다 하면서 한 줄을 채우는 게 아니라 아예 종이의 가로 한 줄만큼을 노즐로 채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헤드가 움직이는 과정이 줄어들게 된다. 헤드 아래를 종이가 지나가기만 하면 한 장이 인쇄되어 나온다. 어떻게 보면 레이저 프린터와 잉크젯 프린터의 기술이 결합된 듯 하다. 이 기술로 1분에 70장씩 찍어내는 프린터도 나온다.


이 기술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노즐의 수를 늘린 것 뿐 아니라 잉크가 함께 결합된다는 점에 있다. 보통 잉크젯 프린터를 버리는 경우는 잉크가 노즐에 말라 붙으면서 구멍을 막는 것이 대부분이다. 노즐을 늘리면 그만큼 고장날 확률이 높아진다. 게다가 인쇄 속도를 높이려면 잉크가 마르는 시간도 빨라야 한다. 그래서 새 잉크들은 오래 쓰지 않으면 노즐에 보호막을 만들고, 잉크 농도를 진하게 만들어 조금만 뿌려도 진하게 그려지는 등 새로운 기술이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프린터 시장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인쇄 뿐 아니라 종이 시장도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한다. 기업들도 종이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쇄 시장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손에 종이를 쥐고 보는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고, 전자잉크를 쓰는 전자책이나 LCD를 쓰는 태블릿도 여전히 종이를 경쟁자로 삼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이 인쇄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종이가 필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경계는 더 뚜렷해지고 있고, 프린터는 그 시장을 노려 또 다시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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