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 계약직 과학자 입니다” ②

2016.05.01 08:00

“2년마다 일자리 고민… 독창적인 연구하다 실업자 될 뻔”

 

물리학을 전공한 K박사는 서울 명문대의 연구교수다. ‘교수님’이라는 호칭도 듣지만, 사실 2년마다 계약을 새로 하는 비정규직이다. 취직에 성공하면 바로 다음 자리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 연구를 고민하는 시간보다 가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이 더 길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지금 그만두는 게 나을지 매일같이 고민이다.

 

K박사에겐 아픈 기억이 있다. 수 년 전, 젊은 혈기로 독창적인 연구를 시도했다가 망한 경험이다. 언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잠자는 시간을 세 시간으로 줄여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국내에 연구자가 없던 분야라 혼자 끙끙대다가 1년 동안 논문을 한 편밖에 못썼다. 다니던 대학에서 계약연장에 실패했다. 몇 달간 월급이 끊겼다. 다행히 주변 교수들이 연구비를 십시일반으로 모아줘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알던 한 동료는 병에 걸려서 학계를 떠났다. 이 바닥에선 무슨 이유로든 논문을 2~3년 못 쓰면 ‘아웃’이다. 이렇게 한번 떠나면 다신 돌아올 수 없다. 국내 물리학계에서 또 하나의 세부 연구주제가 사라졌다.

 

GIB 제공
GIB 제공

“바꾸려고만 하면 바꿀 수 있을 텐데…”

 

과학계에 정규직 일자리가 워낙 적다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연구중심대학에서 교수채용을 담당하는 Y교수는 “1년에 교수를 2명 정도 뽑는데, 지원자가 400~500명”이라고 했다. 이러다 보니 국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해외를 떠도는 과학자도 많다. Y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과학대에서 연구하는 한국인 박사후과정만 60명에 이른다”며 “최상위 저널에 논문을 내는 과학자들이지만, 이들 중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겨우 10%”라고 말했다. 남궁석 충북대 축산학과 연구교수는 “상당한 연구역량을 갖춘 고급인력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두는 건 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라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크게 늘리고 있다. 작년 9월 국정감사 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 전체 연구직 인력 1만8059명의 48.6%인 8776명이 비정규직이다(학·연 학생과 박사후연수생 포함). 신규 고용자만 따지면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다. 2012년부터 2015년 6월까지 출연연에서 뽑은 연구직 인력 5903명 중 무려 71.1%인 4197명이 비정규직이다.


2012년 공공연구노조에서 출연연 연구책임자 4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중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딱히 업무가 달라서 비정규직을 뽑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연구책임자들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연구원의 평균 근속년수는 2.6년으로, 정규직(12.1년)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 연구책임자의 82.5%가 ‘비정규직의 잦은 이직으로 연구효율이 저하된다’고 대답할 정도로 연구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출연연에서 비정규직을 줄이고 대신 정규직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 방법만으론 젊은 과학자들의 고용불안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을 포함한 전체 과학계 차원에서 좀 더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정부가 의지만 가지면 정규직 2500명 고용 가능”

[INTERVIEW] 이성우 공공연구노조 위원장

 

이성우 제공
이성우 제공

- 현재 출연연 비정규직 상황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건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다. 그런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현재까지 출연연 비정규직 중 고작 5%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상황이 오히려 나빠진 경우도 많다.


최근 수년간 일부 출연연은 정규직을 뽑지 않고 비정규직 연구자를 해고해 ‘비정규직 비율’을 낮췄다. 대신 학·연 학생이나 박사후연수생을 많이 뽑았다. 정부는 이들이 비정규직이 아닌 학생이라고 주장하지만, 하는 일은 비정규직과 똑같다.

 


- 정규직을 늘리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정부에 의지가 없다고 본다. 정규직 전환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연구비 운용구조만 바꾸면 된다. 현재 구분돼 있는 내부인건비(정규직 임금)와 외부인건비(비정규직 임금)의 구분을 없애고 업무의 상시지속성을 판단하면 된다. 비정규직의 인건비 수준이 정규직과 비슷하므로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니다. 연구과제에서 인건비 비중을 1%만 높게 반영하면 매년 750억 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고, 약 250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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