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의 두 얼굴: 호기심은 인간을 이롭게 만들까, 아니면 해롭게 만들까?

2016.04.19 20:00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열렬한 호기심이 있을 뿐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각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 ‘숫타니파타’에서


올해 초 중력파 검출 성공 발표는 한 사람의 지적 호기심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하는 사건이었다. 사실 ‘동아사이언스’ 사이트에 하루에도 몇 건씩 소개되는 과학뉴스 역시 과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결과다. 호기심이 없다면 과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호기심에 이런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부여하는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쓸데없는 호기심이 화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숫타니파타’ 같은 불교 경전을 보면 호기심을 억제하라는 구절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호기심은 많은 문학작품에서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데, 십 수 년 전 ‘중국현대단편선’인가 하는 책에서 본 단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시대 배경은 1940년대 초 제국주의 일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다. 화자인 장교는 젊은 여성으로 하루는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몸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유심히 주위를 살피다 벽의 틈새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발견한다. 천을 두르고 잽싸게 나가 허겁지겁 도망치는 사람을 잡았다. 얼굴을 보니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소년병이다.


감히 장교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본 사병에게 “영창에 처넣겠다”며 길길이 날뛰던 화자가 왜 그랬냐고 묻자 소년은 “여자의 몸이 너무 궁금했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문득 소년의 얼굴에서 고향에 있는 막내 동생이 떠올랐고 순간 안 됐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 실컷 봐라”며 천을 젖히려는 순간 소년은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며 오열한다.


이렇게 소년을 보낸 뒤 마음이 무거웠던 화자는 며칠 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그 소년병이 전사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모르는 척 하는 건데...’ 작품은 되먹지 못한 어른들 싸움에 엮여 성(性)을 알았지만 향유해보지도 못하고 죽은 소년병을 통해 시대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서구에도 호기심을 테마로 한 이야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판도라의 상자’다. 반반한 얼굴 덕분에 부자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된 판도라는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남편이 집안 한쪽에 모셔놓은 항아리의 뚜껑을 절대 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것. 항아리 뚜껑에 ‘꽂힌’ 판도라는 결국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서 뚜껑을 열었고 그 순간 죽음과 질병, 미움과 질투 등 모든 해악이 사방으로 퍼졌다. ‘판도라의 항아리’(훗날 ‘판도라의 상자’로 바뀜)는 호기심의 백해무익함을 상징하는 문구다.

 

Pandora - Nicolas Régnier 제공
Pandora - Nicolas Régnier 제공

불확실성 보다는 손해 보더라도 확실한 쪽 택해


학술지 ‘심리과학’ 최신호에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이런 이야기를 통해 경계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의 참기 어려운 심리인지 확인한 논문이 실렸다. 즉 알아야 모르는 것 보다 나을 게 없는 상황임에도 사람들은 호기심을 충족하는 쪽으로 행동할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이다.


네이버국어사전을 보면 호기심을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심리학의 정의는 좀 더 고급스럽다. 즉 호기심은 ‘정보를 향한 욕망’으로 호기심의 충족은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과정이다. 즉 좋을 게 없는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눈앞에 있는 상자를 열어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다.
 

미국 시카고대 크리스토퍼 시 교수는 이런 경향을 ‘판도라 효과(Pandora effect)’라고 부른 뒤 위스콘신대 박사과정 보웬 루안과 함께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먼저 판도라 효과가 정말 나타나는지 알아보는 실험으로 사람들이 중립 또는 부정적인 결과가 확실한 경우와 절반은 중립 절반은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불확실성 가운데 어느 쪽 상자를 더 많이 여는지 알아봤다.


연구자들은 자리에 앉은 피험자에게 수분 뒤 실험을 진행할 거라며 책상 위 볼펜은 앞 실험에 쓰인 거라고 얘기한다. 피험자는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그룹에 속한 경우 빨간 딱지가 붙은 볼펜이 다섯 자루, 녹색 딱지가 붙은 볼펜이 다섯 자루가 있다. 볼펜의 버튼을 누를 경우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순간 고통스런 전기충격(감전)이 온다. 빨간 딱지 볼펜은 건전지가 들어 있고 녹색 볼펜은 빼놨다. 한 편 두 번째 그룹은 노란 딱지가 붙은 볼펜 열 자루가 있는데, 이 가운데 반이 건전지가 들어있다고 알려준다.


가짜 실험을 기다리며 피험자들은 볼펜을 만지작거리다 버튼을 누기기도 한다. 즉 그 횟수를 기록하는 게 진짜 실험이다. 분석 결과 확실한 상황인 경우 볼펜의 버튼을 평균 3.04회 눌렀다. 1.3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녹색 볼펜, 1.74회는 감전을 일으키는 빨간 볼펜의 버튼은 눌렀다. 한편 불확실한 상황의 경우 평균 5.11회 볼펜 버튼을 눌렀다. 즉 결과가 좋을 게 없음에도 정보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즉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노란색 볼펜의 버튼을 더 많이 눌렀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판도라 효과를 좀 더 직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세 가지 볼펜이 같이 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즉 빨간 볼펜, 녹색 볼펜, 노란색 볼펜이 각각 열 자루씩 놓여 있는 상태에서 피험자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확실히 감전이 되는 빨간 볼펜의 버튼을 누른 횟수가 평균 1.03회, 확실히 아무 일도 없는 녹색 버튼을 누른 횟수가 1.69회인 반면 눌러봐야 아는 노란색 볼펜의 버튼을 누른 경우가 4.16회로 확실히 더 높았다.


연구자들은 소리자극에 대해서도 실험을 수행했다. 즉 모니터에 세 가지 버튼이 뜨는데, 손톱이라고 쓰인 버튼을 누르면 손톱으로 칠판을 긁을 때 나는 소리가 4초 동안 들린다. 물이라고 쓰인 버튼을 누르면 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물음표가 있는 버튼을 누르면 손톱 긁는 소리와 물소리가 반반의 확률로 난다. 사전 조사에 따르면 손톱 긁는 소리는 불쾌하다고 느끼고 물소리는 불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다고 평가했다.


모니터에는 버튼 48개가 뜨는데, 첫 번째 그룹은 44개가 물음표이고 2개가 손톱, 2개가 물이다. 두 번째 그룹은 22개가 손톱, 22개가 물, 4개가 물음표다. 피험자들은 5분 동안 마음에 내키는 대로 아무 버튼이나 누르면 되는데,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배경음으로 ‘반짝 반짝 작은 별’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고 있다(유쾌한 소리). 실험결과 불확실성이 큰 조건(물음표 44개)에서는 평균 39개의 버튼을 누른 반면 확실성이 큰 조건(물음표 4개)에서는 평균 28개의 버튼을 눌러 역시 판도라 효과가 작용했다.


끝으로 혐오스런 곤충 5종(빈대, 지네, 바퀴벌레, 모기, 좀)을 놓고 비슷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버튼에 곤충 이름이 쓰여 있을 경우 평균 9회 클릭한 반면 물음표일 때는 16회였다. 어차피 물음표를 클릭해봐야 혐오스런 5종 가운데 하나가 나올 뿐임에도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에 거의 두 배나 많이 누른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충족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정보화시대에 무작정 정보를 추구할 때 일어나는 위험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인터넷과 SNS 덕분에 도처에 놓여 있는 판도라 상자를 쉽게 열 수 있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우울함과 자기불만도 더 높아졌다는 최근 연구결과들은 쓸데없는 호기심의 충족이 정신건강에 그다지 좋을 게 없다는 수천 년 전 선인들의 가르침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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