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세월호 특별기고]고통은 ‘망각’ 아닌 ‘기억’을 통해 치유된다

2016.04.16 10:04

2014년 4월 16일, 인천발 제주행 연안여객선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어린 학생 246명을 포함해서, 모두 295명이 사망했다. 선주의 탐욕, 고질적인 안전불감증 그리고 구조과정에서의 미숙함으로 인해 일어난 기술적 재난은 모든 국민에게 큰 상처와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아직 땅에 뿌리를 내릴 힘이 없는, 어린 영혼들이 짧은 생을 마쳐야만 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 포커스뉴스  제공
세월호 참사 2주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 포커스뉴스  제공

그리고 벌써 2년이 지났다. 단원고 학생 4명과 교사 2명을 포함한 9명의 행방은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이들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상과 진상규명, 인양에 대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사고의 본질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정치’의 문제가 되어버린 세월호 사고를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각종 터무니없는 음모론은 사회의 피로감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 하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그러나 고통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슬픔과 고통은 망각을 통해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서 치유되는 것이다. 절망적인 고통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기억의 축제가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앨런 영(Allan Young)의 말처럼, 개인적 고통은 두려움이라는 형태로 기억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고통은 집단적인 두려움으로 공동체에 기억된다. 고통의 기억은 불쾌하지만, 미래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유용한 진화적 선물이다. 고통의 의미를 상기한다는 것은, 그 주체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간에 삶의 의미와 방향을 규정짓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하지 무렵 모닥불을 피우는 의식을 치른다. 발데르(Balder), 즉 오딘(Odin)의 아들을 기리는 축제이다. 발데르는 북유럽의 신성한 겨우살이를 상징한다. 겨우살이는 스스로 양분을 충분히 합성하지 못해서, 다른 나무의 줄기에 붙어 자라야 하는 특이한 식물이다. 발데르는 신과 인간의 보호를 받았지만, 결국 재앙의 신, 로키(Loki)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 그래서 게르만족은 아직도 강물 위에 배를 띄우고, 그 위에 참나무로 불을 지펴 억울하게 죽은 발데르를 기리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한 노란 겨우살이, 즉 ‘황금가지(The Golden Bough)’를 기억하는 축제이다.

 

북유럽의 하지 축제(억울하게 죽은 발데르를 기리기 위해서, 매년 하지 무렵에 배 위에서 참나무로 모닥불을 피우는 의식을 치른다.) - flickr 제공
북유럽의 하지 축제(억울하게 죽은 발데르를 기리기 위해서, 매년 하지 무렵에 배 위에서 참나무로 모닥불을 피우는 의식을 치른다.) - flickr 제공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에 의하면, 황금 가지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신화적 의미를 품고 있다. 황금 가지가 죽으면, 그들이 붙어 있던 참나무도 곧 죽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295개의 노란 리본은 우리 공동체의 ‘황금 가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년 4월 16일을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또 그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추모하는 날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억울하게 뽑혀져 나간 노란 겨우살이의 슬픔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잊혀지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는 더 큰 파국적 재난을 맞을 것이다. 비극적 재앙이 남긴 엄청난 고통의 기억을 애써 되살리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깊게 병들어 있는 우리 사회를, 스스로 치유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노란 겨우살이,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 http://celestialelfdanceoflife.blogspot.kr 제공
노란 겨우살이,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 http://celestialelfdanceoflife.blogspot.kr 제공

※ 필자소개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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