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는 시 11]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2016.04.16 18:00

멍게 
                                      성윤석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Sean Smith(F) 제공
Sean Smith(F) 제공

다산 정약용에게는 네 살 위의 형이 있습니다. 다산이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정약전(丁若銓)이지요. 그는 동생 정약용과 지기(知己)인 실학 사상가였지만, 긴 유배 생활 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 서적을 집필하였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자산어보』(玆山魚譜)입니다. 총 3권으로 집필된 이 책에는 각종 해양 동식물에 대한 명칭, 형태, 습성, 분포 등의 생태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학문 영역으로 구분하면 그는 인문학자이자 자연과학자였던 셈입니다.


이처럼 모든 학문은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심사’에서 시작될 겁니다. 그런 관심과 탐구가 모든 공부의 첫걸음인 거죠. 문학도, 시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학과 시의 기원이 레토릭(rhetoric, 수사학)이든 노래이든 ‘세상을 보고 인간을 보고 쓴 미사여구’ 역시 세상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살핌에서 출발한, 복잡한 감성의 말이 아닐까 합니다.


2년 전 이맘때, 국내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의 오래된 전통 어시장인 ‘마산어시장’ 한복판에 창원시립마산박물관 주최로 ‘마산어시장 시(詩)전’이 열렸습니다. 위의 시가 수록된 성윤석 시인의 시집 『멍게』가 갓 출간됐던 시기에 개최한, 한 계절 내내 지속한 큰 시전(詩展)이었습니다. 만약 시인이 마산어시장에서 일하는 ‘잡부’가 아니었다면, 이런 특별한 기획전은 없었을 겁니다. 사업에 망해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시인이 그곳에 내려와 2년간 잡부로 일하면서 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묶었는데, 많은 제목들이 위의 시를 비롯한 바닷물고기 이름입니다.


시인은 정신노동이 필요 없는 고된 노동의 연속인 ‘잡부’로 살지만, 자신의 삶의 태도를 버릴 수 없기에 위의 「멍게」와 같은 시들을 짬짬이 냉동고의 박스 종이나 간이영수증 이면에 썼답니다. 물론 그 시들은 마치 정약전처럼, 시인이 다루고 있는 바닷물고기들에 대한 ‘관심과 살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씁니다.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라고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실제로는, 자웅동체인 멍게는 뇌가 없을뿐더러 성장이 멈춰 번식을 마치면 곧 천천히 죽어가는 퇴화의 경로를 밟지만, 시는 자연과학이 아니기에 시인은 그 비슷한 현상에 대해 다르게 썼습니다.


왜 시인은 멍게가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고 썼을까요? 그 이유는 첫 구절 이후에 곧바로 따라 나옵니다. “어물전에선 / 머리 따윈 필요 없어”라며 그저 육체노동만 강박하는 어시장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역설인 것이겠죠. 그중 하나인 “중도매인 박 씨는” 그곳 생활을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관찰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타박(“내 안경을 가리키고”)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인은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 살펴”봅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삶을 되돌려 자학적으로 말합니다.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라고요.


그 “거대한 입들”은 결국 실패로 끝난 자신의 사업을 삼켜버린, 오로지 ‘돈’만 좇는 자본주의 경제사회를 일컫는 듯합니다. 그것은 마치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먹어버리고도 허기에 시달려 결국 자기 몸까지 먹어치운 끝에 자신의 얼굴만 남긴, ‘키르티무카’(kirtimukha)라는 이름의 인도 신화 속 괴물처럼 우리 사회의 핍박함을 은유로서 성찰하고 지적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거대한 입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라는 첫 구절로 독자를 회귀시킵니다.


그러고는 시인은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이라며 분노의 손가락질을 멈추고 고즈넉한 심성으로 자신 같은 저물녘 어시장의 한 장면을 바라봅니다(그렇지 않으면 괴로움만 가득할 테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그해 봄, 어느 주부가 마산어시장에 장보러 나왔다가 우연히 ‘마산어시장 시(詩)전’ 막사에 들러 시인의 이 시를 읽고는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에 석양처럼 붉은 멍게 몇 마리가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천천히 귀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는 쌉싸래한 식감으로 입안의 잔맛을 개운하게 청소하는 멍게를 목련 꽃잎 같은 접시에 펼쳐 ‘농후한 삶’의 저녁상을 차려놓았을지도 모릅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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