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는 시 10]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2016.04.09 18:00

비단안개 
                                      김소월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요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 살 때러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마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러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러라.
  첫사랑 있던 때도 그런 날이요
  영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러라.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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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김정식(金廷湜, 1902∼1934). 시인 소월(素月)의 시는 아마도 이 땅에서 가장 많이 노래로 작곡되어 많은 한국인의 애창곡이 되었을 겁니다. 「개여울」, 「부모」, 「못 잊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엄마야 누나야」, 「초혼」, 「진달래꽃」, 「그 사람에게」, 「산유화」, 「비단안개」 등의 소월 시로 만든 노래들을 많은 분들이 좋아할 겁니다. 그중 저의 애창곡은 위의 시 「비단안개」입니다. 이 노래는 이영조 씨가 작곡한 가곡입니다만 저는 대중가요풍으로 부릅니다. 그렇게 부르는 게 소월 시의 감성이 더 잘 살아나는 것 같아서요. 정미조 씨가 담담하게 불렀던 「개여울」을 심수봉 씨가 부를 때 그 청승이 더욱 살아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시는 각 연마다 첫 행에 반복되는 시구(詩句)의 관건을 풀어야 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듯합니다.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말입니다. 무슨 말뜻일까요. 우선, “눈들”은 눈 내린 들녘일 테고, “비단안개”는 마치 비단을 펼친 것과 같은 안개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북한어입니다. 그런데 안개의 색깔은 희뿌열 텐데 왜 화려한 색상이 떠오르는 “비단”이라고 했을까요. 눈 그친 뒤 날씨가 풀려 안개 낀 날에 햇빛이 들판을 비추었을 때, 안개의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무지개가 뜨면 들녘에 비단을 두른 것 같지 않을까요. 그래서 “둘리울 때”는 (띠를) ‘두르다’의 피동사인 ‘둘리다’의 변형어(울음을 울 듯한 뉘앙스)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편 이 첫 행을 중의적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눈[雪]이 아닌 눈[目]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시의 의미의 확장을 위해 시인이 의도적으로 한자어 표시를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눈들”을 눈[目]의 뜻으로 읽으면 “들”이 복수형이기에 한 사람이 아닐 것이고, 그래서 시의 내용상 두 연인의 눈[目]이 되겠죠. 그리고 그럴 때에는 들판의 안개에 뜬 무지개가 아닌, 눈물을 글썽이는 눈동자에 빛을 비춘 햇빛의 스펙트럼 현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슬픈 두 연인의 시선에서 번지는 비단 같은 색깔 말입니다.

 

이렇듯 중의적인 관건의 문빗장을 열면 남은 행들의 시를 읽으며 독자는 이토록 처절하게 아름다운 소월만의 시세계에 한껏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별 후에 다시는 볼 수 없는 애달픈 연인의 구슬픈 노래에 말이죠. 시의 화자인 사내는 “만나서 울던” 날이 지나고 “그리워 미친 날”에 비단안개 속에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내는 “첫사랑”과 이별하자 눈이 녹는(“눈 풀리는”) 나뭇가지에 (조선시대 여자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던 예복의 치맛자락인) “당치마귀”를 잘라 스스로 “목”을 맨 그 여인(“젊은 계집”)을 “차마 잊지 못”합니다. 그러니 사내의 슬픔이 오죽했겠습니까. 그 애절한 마음을 대신하여 자연의 새도 애달파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인이 이승을 떠나는 “그때는 종달새[가 하늘로] 솟을 때”이고 들판도, 바다도, 하늘도 “아지 못할[알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입니다. 그렇게 끝내는 사랑하는 여인과 “영이별”을 하게 된, 시의 화자인 사내는 “홀목숨”을 끊은 여인처럼 자신도 더는 못 살 것 같았겠지요.

 

그러고는 마치 이 시 「비단안개」가 예언이라도 하는 듯, 김소월 시인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합니다. 자신이 쓴 시와 자신의 생이 같다니! 그래서 창백한 ‘하얀[素] 달[月]’, 소월(素月)의 시는 참 지독히 슬픕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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