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비가역적이다

2016.04.14 22:00

※ 필자 주: 이공계 관련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비유와 개그가 튀어나오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공계 관련자들만이 공유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자는 2014년 과학동아에서 연재했던 ‘김주황의 이공계 언어 사전’ 연재를 동아사이언스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연재에 앞서, 과학동아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과학동아에 실렸던 ‘김주황의 이공계 언어 사전’을 매주 선보입니다. 많은 사랑부탁드립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뒤가 마려운 기분을 알 겁니다. 식은땀이 나면서 아랫배는 점점 묵직해지는데 주변엔 화장실도 없고, 휴지를 살만한 편의점도 없다면…?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체험하게 되겠지요. 살면서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감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매월 13일 즈음이면 항상 이 기분을 느낍니다. 책상 양쪽으로 잔뜩 쌓은 논문과 모니터에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빈 문서 1 - 한컴오피스 글’이 주는 압박감은 보이지 않는 화장실과 편의점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지난 마감 끝났을 때 놀지 말고 미리 쓸 걸….’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을 돌릴 순 없겠죠. 우리 조상께서는 아주 멋진 속담을 남겨주셨습니다. 바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입니다. 참 쉽죠?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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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거꾸로 가지 않는다


대학교 시절이었을까요. 그 때도 역시 아주 신나게 놀다가 2, 3일을 밤을 새가며 과제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동아리방에 갔습니다. 30분 자고 일어난 뒤 잠이 덜 깬 상태로 자학하는 제게 물리를 전공하던 친구가 점잖게 한 마디 하더군요. ‘그러게. 시간은 비가역적이라니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요. ‘비가역적’이라니, 뭔가 있어 보입니다! 비가역은 ‘반대로 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즉 시간은 거꾸로 갈 수 없다는 말을 저렇게 근사하게 표현한 거지요.


사실 비가역적이라는 말은 열역학 제2법칙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항상 일정하게 고정돼 있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물이 든 용기와 찬물이 든 용기를 딱 붙여놨을 때 벌어지는 현상을 생각해 봅시다. 뜨거운 물은 열을 잃고, 찬 물은 그만큼 열을 얻어 둘 다 점점 미지근해 집니다. 에너지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 총량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반대 경우는 가능할까요? 찬물은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열 에너지를 뜨거운 물에 전달해서 더 차가워지고, 뜨거운 물은 이 에너지를 받아 더 뜨거워지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비가역성’이라고 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이런 비가역성을 설명하는 법칙입니다. 에너지의 이동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①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흘러가며 ② 열을 ‘모두’ 일로 바꾸는 장치는 존재하지 않고 ③ 이 때문에 효율이 100%인 제2종 영구기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④ 고립된 계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겁니다.


비가역성은 ‘시간의 흐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시간 역시 거꾸로 되돌리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이용해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연구가 나오고는 있습니다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도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서 온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혹시 주변에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까칠한 호관씨’에게 제보해주세요.

 

어쨌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후회하면 너무 늦습니다. 그렇다면 후회하기 전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겠지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사실은 지금 또다시 원고가 늦어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들기는 중입니다. 하얗던 ‘빈 문서 1’이 채워지니 마음이 참 안정되네요. 독자 여러분들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주변을 한번 되돌아 보고 후회할 것 같다면 미리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김주황이었습니다.

 

☞ [김주황의 이공계 언어 사전 2]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시간은 비가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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