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의학]“미래 먹거리 新藥개발, 천문학적 비용 들어 정부지원 필수”

2016.03.30 09:26


[동아일보] “R&D·연구용역 등 세제 혜택 필요”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 강조
지난해 대박 터뜨린 한미약품도 “은행빚으로 투자… 직원들 고생 많았다”
통상 10∼15년 걸쳐 1조 원 들어…약가 인상·정책 지원 등 뒷받침 있어야

“신약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정부의 폭넓은 지원이 필요하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66)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효령로 한국제약협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약협회가 신약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세제 지원을 정부에 공식 요청한 것이다. 한국제약협회는 국내 201개 제약사가 가입한 최대 제약단체다.

이 회장은 간담회에서 “약 개발의 마지막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임상 3상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며 “R&D를 지속하기 위해 연구시설을 운영하거나 외부 연구용역을 줘야 하는데 여기에도 돈이 많이 든다. 이런 분야에 대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약협회가 이처럼 공식적으로 정부에 목소리를 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이 한국의 제약 산업이 수출 주력 산업으로 도약할 적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부 국내 제약사들은 대형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국내 제약업계로는 최대 규모인 5조 원대의 당뇨병 치료제 기술 이전 계약을 프랑스의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와 맺은 것을 비롯해 일라이릴리와 베링거인겔하임, 얀센 등 다국적 제약사들과 8조 원에 가까운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

녹십자도 지난해 주력 사업인 백신 부문에서 독감, 수두 백신의 수출이 51.5%나 늘었다. 이 때문에 녹십자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전년도보다 27% 증가한 2054억 원을 기록했다. 녹십자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의 2016년 남반구 의약품 입찰에서 3200만 달러(약 389억 원) 규모의 독감 백신을 수주하기도 했다.

정부 지원 없이는 신약도 없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정부의 뒷받침이 없다면 앞으로 이러한 성과가 계속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 제약사들의 현재 매출로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제품으로 만들기 이전에 기술 수출 등을 하는 이유는 임상 3상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성과들도 어떻게 보면 운도 많이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신약 개발은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실패 가능성이 높은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분야다. 통상적으로 개발에 10∼15년의 기간과 1조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제약사 중 1조 원이 넘는 연 매출을 올린 곳은 한미약품(1조3175억 원)과 유한양행(1조1209억 원), 녹십자(1조478억 원) 정도다. 수천억 원의 연구개발(R&D) 비용을 꾸준히 투자할 수 있는 업체가 몇 안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대박을 터뜨린 한미약품조차 수출에 성공하기 전 힘들었던 속사정을 털어놓은 바 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76)은 “제약회사는 R&D가 생명인데 투자 여력이 없다. 은행에서 계속 돈을 빌려 투자해야 했다. 직원들 고생을 많이 시켰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2014년 매출의 20%인 1525억 원을, 지난해에는 1871억 원을 R&D에 쏟아부었다.

업계는 신약 개발이 수출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가 R&D 비용만큼은 세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신약 개발 전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에 대한 혜택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보통 임상 1, 2상보다 임상 3상에 규정된 시험대상이 훨씬 많아 비용이 배 이상 들기 때문이다. 임 회장도 “신약을 개발할 때 임상 마지막 단계에 드는 비용이 전체 개발비의 절반이 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또 신약을 개발해도 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면 그 국가에서 다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이 비용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부도 뒤늦게 제약 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제약업계 단체장들과의 자리에서 “정부가 제약과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고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진출을 도울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약가 정책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연구개발 비용 이외에 국내 제약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또 있다. 바로 신약의 가격 문제다. 제약사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신약에 대한 1차 평가를 받은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을 한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약 가격이 해외보다 낮은 수준에 형성된다고 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또 약이 여러 질병 치료에 효과를 보여 사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 약가를 미리 깎는 ‘사전 약가인하제도’도 있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약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가의 44% 정도다. 과거에는 제약업체들이 복제약 위주로 생산해 국내에서만 경쟁을 하다보니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도 큰 불만이 없었다. 문제는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성공하고 해외 시장에 뛰어들면서 발생했다. 약을 수입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최대한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데 이때 한국 내에서 낮게 책정된 약가가 기준이 돼 신약을 수출해도 돈을 벌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낮은 약가 때문에 수출이 백지화된 경우도 있었다. 한 국내 제약사는 2011년 국내 최초로 고혈압치료제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18년 동안 510억 원을 투입한 결과였다. 당장 해외에서 반응이 나왔다. 터키와 중남미의 몇몇 국가에서 약을 테스트한 의사들이 신약에 높은 점수를 준 것. 일부 중남미 국가에서는 실제로 수출 계약이 체결되기도 했다.

이 업체는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유럽의 관문인 터키 시장부터 노렸다. 2011년 말 연간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현지 1위 제약 업체와 500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첫 대형 수출이라 마진을 많이 줄였기 때문에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시작이라는 생각에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 년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터키 제약사가 수출 단가를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까지 낮춰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수출 계약을 백지화했다. 터키 제약사가 요구한 가격으로 수출하면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가격으로 수출할 가능성이 커져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연구개발과 신약 바람이 부는 지금이 정책을 손볼 적기”라고 말한다. 이경호 제약협회 회장은 “낮은 약가 탓에 수출에서 수익이 안 나면 신약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며 “약가를 다소 높게 책정한 뒤 수출을 통해 번 수익의 일부를 보험 재정으로 돌려주는 방식을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모바일서비스 바로가기][☞오늘의 동아일보][☞동아닷컴 Top기사]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