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石器)의 재조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은 정말 ‘도구일까’

2016.03.21 17:45

요리가 먹을거리에 있는 박테리아와 기생충을 줄여주고 소화효율을 높이는 등 많은 이득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턱근육과 치아크기의 축소에 요리가 필요했던 건 아니고 육식의 도입과 고기 및 뿌리채소의 기계적 가공의 효과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이다.

- 다니엘 리버만, ‘네이처’ 3월 9일자(온라인) 논문에서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도구사용과 직립보행이 인류진화를 상징하는 두 가지 특징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도구의 위상이 떨어진 감이 있다. 침팬지나 까마귀처럼 머리 좋은 동물이 도구를 사용하는 건 물론이고 TV다큐멘터리에서는 해달이 배영 자세로 누워 돌멩이로 조개를 깨는 장면도 나온다. 즉 도구사용이 인류만의 발명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색이 바랬다.

 

게다가 미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의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불을 이용한 요리가 진정한 인류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요리가설’을 내놓으며 요리인류학 붐을 일으켰다. 불의 힘을 빌림으로써 음식을 먹기가 쉬워졌고 소화효율도 높아져 뇌가 팽창하고 소화기가 들어있는 몸통이 작아질 수 있었다. 즉 호모 에렉투스의 체형이 현생 인류와 가깝게 바뀐 게 요리 때문이라는 말이다. 고고학적 증거에 논란이 있지만 랭엄 교수는 호모 에렉투스가 요리를 시작한 게 1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봤다. 아무튼 도구와 불의 사용이 요리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똑똑한 인류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케냐에서 발굴한 330만 년 전 인류가 만든 석기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발굴된 몸돌로 박편을 떼어낸 흔적이 선명하다. - MPK-WTAP 제공
지난해 케냐에서 발굴한 330만 년 전 인류가 만든 석기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발굴된 몸돌로 박편을 떼어낸 흔적이 선명하다. - MPK-WTAP 제공

돌도끼 제대로 만들려면 300시간 연습해야

 

그런데 최근 도구, 즉 석기의 사용이 인류진화의 원동력이었음을 보여주는 글이 미국의 과학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4월호에 실렸다. 2007년 랭엄 교수의 논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요리가 인류진화의 원동력이라며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인간)에게 ‘요리하는 인간’, 즉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라는 학명형식의 별명까지 지어준 필자에게는(‘과학동아’ 2007년 12월호 특집 ‘호모 코쿠엔스, 인류 진화의 원동력 요리’ 참조) 반갑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수년 전 TV에서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서 석기가 쉽게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타제석기, 즉 구석기인들이 만든 돌도끼 같은 도구는 고사하고 몸돌에서 박편도 제대로 떼어내지 못했다. 대충 돌을 깨 만든 건 줄 알았던 타제석기도 보통 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즉 동물의 도구와 구석기인의 도구는 차원이 다른 얘기라는 말이다.

 

여기서 잠깐 구석기에 대해 알아보면 오늘날 칼의 역할을 하는 박편을 주로 만들던 시대를 ‘올도완 문화’라고 부르는데 26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주먹도끼처럼 진일보한 타제석기를 만들던 시대를 ‘아슐리안 문화’라고 부르는데 17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5월 21일자)에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기보다 무려 70만 년이나 더 오래된 330만 년 전 석기가 케냐 서부에서 발견됐다는 논문이 실리면서 인류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물 대다수는 몸돌과 모루, 돌망치 등이고 박편은 많지 않았지만(반면 올도완 유물은 박편이 대부분이다), 몸돌과 거기서 떼어낸 박편이 함께 출토되는 등 단순히 돌을 이용해 견과류를 깨먹는 수준(침팬지도 하는)을 넘은 수준이다. 즉 올도완 문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4월호에 실린 글은 미 에모리대에서 구석기기술실험실을 이끌고 있는 인류학자 디트리히 스타우트 교수의 기고문이다. 스타우트 교수는 필자가 글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한동안 도구사용이 인류진화에 미친 영향력이 과소평가됐다면서도 다른 이유를 들었다. 즉 복잡한 사회관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뇌가 진화해 인지능력이 좋아졌다는 소위 ‘마키아벨리적(교활한) 지능’ 또는 ‘사회적 뇌’ 가설이 득세하면서 도구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설명이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가 우세하던 1990년대 스타우트 교수는 우연히 석기의 제작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알게 됐고 스스로 석기를 만들어보다가 너무 어려워 당황했다. 즉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은 석기 디자인이라는 추상적 사고가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만드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몸돌에서 칼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박편을 떼어내는데도 돌망치를 내려칠 때 정교한 힘조절과 각도조절이 필요했다. 수많은 박편을 떼어내 만드는 손도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인류의 진화는 도구제작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따라서 스타우트 교수는 호모 에렉투스에게 ‘호모 아티펙스(Homo artifex)’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아티펙스는 라틴어로 기교, 창의성, 장인정신을 뜻한다.

 

인류의 인지능력 진화에서 도구의 중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스타우트 교수는 도구를 제작할 때 뇌의 활동을 측정했다. 그 결과 박편(올도완 석기)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된 사람의 뇌에서 공간적인 환경에서 몸의 위치를 인식하는데 관여하는 측두엽의 모서리위이랑의 활동이 컸다. 한편 손도끼(아슐리안 석기) 같은 고난이도의 작업을 수행할 때는 전전두엽의 우측 하전두엽이랑도 활성화됐는데 어려운 과제 사이를 오갈 때 인지적 조절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부분이다.

 

스타우트 교수의 구석기기술실험실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100시간짜리 손도끼 제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기서 1주일에 20시간 씩 5주는 배워야 손도끼라고 부를만한 석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스타우트 교수는 300시간을 연습한 뒤에야 아슐리안 석기제작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손도끼를 만드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 과정은 무척 지루하고 진이 빠지는 과정이라 상당한 동기부여와 자기통제력이 없으면 마스터할 수 없다고 한다.

 

석기제작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는 사실상 기술을 습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슐리안 석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간단해 보이는 올도완 석기도 그렇다. 따라서 도구제작 과정에서 가르침을 주고받으며 인류는 언어구사능력을 진화시켰다고(공진화) 스튜어트 교수는 주장한다. 지난해 1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실험참가자들은 몸돌에서 박편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즉 남이 만들어놓은 박편을 보고 혼자 작업하는 경우, 옆의 숙련자가 하는 걸 보고 작업하는 경우, 기본 가르침(손으로 손도끼를 제대로 잡게 해주는 등 약간의 도움을 줌)을 받는 경우, 몸짓으로 가르침을 받는 경우, 말로 가르침을 받는 경우다.

 

184명이 만든 6000개가 넘는 박편을 분석한 결과 쓸 만한 박편을 만든 비율이 뒤로 갈수록 높아졌다. 즉 말로 가르쳤을 때 가장 빨리 완성도가 높은 석기를 제작했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올도완 석기 문화가 70만 년 가량 정체된 채 아슐리안 석기로 넘어가지 못한 것도 언어구사능력의 진화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박편 같은 간단한 석기를 만드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박편을 만드는 작업을 할 경우 말로 가르침을 받을 때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박편 같은 간단한 석기를 만드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박편을 만드는 작업을 할 경우 말로 가르침을 받을 때 완성도가 가장 높았다(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제공

음식 사전 가공만 해도 씹는 일 한결 편해 져

 

학술지 ‘네이처’ 3월 9일자(온라인판)에는 또 다른 측면에서 도구사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논문이 실렸다.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즉 랭엄 교수의 동료다) 다니엘 리버만 교수는 랭엄 교수의 ‘요리가설’을 반박하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즉 호모 에렉투스가 식생활에서 요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50만 년 전보다 훨씬 이전부터 현생인류의 해부적 특징, 즉 턱과 치아, 저작근육, 소화장기가 작아진 게 확실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다른 원인이 있고 리버만 교수는 바로 육식비중의 증가와 도구를 써서 식재료를 가공한 게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리버만 교수는 실험참가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조건의 먹을거리를 내놓았다. 먹을거리는 뿌리채소(얌, 당근, 비트)가 칼로리의 3분의 2, 육류(염소고기)가 3분의 1을 차지한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대신 염소고기를 택한 건 육질이 과거 인류가 사냥한 야생동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험참가자들이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상태의 음식을 먹는 경우와 칼로 썬 음식을 먹는 경우, 으깬 음식을 먹는 경우, 구운 음식을 먹는 경우에 따라 음식을 삼킬 때까지 씹는 횟수와 씹을 때 들어간 힘을 측정한다. 즉 각각은 도구를 전혀 쓰지 않는 상태, 침팬지 수준의 도구 사용(으깨는 경우), 올도완 석기를 쓰는 수준(자르는 경우), 불을 쓰는 수준을 나타낸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뿌리채소의 경우 자르는 건 별 효과가 없었지만 으깬 경우 그대로 먹을 때에 비해 씹는데 힘이 덜 들어갔고 염소고기의 경우 으깨는 건 별 효과가 없었지만 자르는 건 씹는 횟수와 씹는데 들어가는 힘이 꽤 줄어들었다. 구운 경우 둘 다 가장 효과가 좋았지만 으깨거나(뿌리채소) 자른(고기) 경우와 큰 차이는 없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하루 2000칼로리를 섭취하고 그 가운데 3분의 1을 고기에서 얻을 경우를 보면, 가공하지 않은 뿌리채소만을 먹을 때에 비해 씹는 횟수가 13% 줄어들고 들어가는 힘은 15%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뿌리채소를 으깨 먹고 고기를 썰어 먹을 경우 씹는 횟수가 17% 줄어들고 들어가는 힘은 26% 줄게 된다. 또 삼킬 때 고기 조각이 41%나 더 작아 소화효율이 더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즉 육식의 도입과 도구(칼 역할을 하는 박편) 사용으로 턱과 치아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적인 진화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뒤에 불을 이용한 요리를 발명하면서 저작의 부담이 더 줄어들고 소화효율이 더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진화요인은 도구사용을 통한 식재료의 가공이라는 말이다.

 

논문에 인용된 참고문헌 30편 가운데 리버만 교수의 논문이 여러 편이고 랭엄 교수의 논문도 여러 편 있지만 두 사람의 공저는 한 편도 안 보였다. 같은 과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학계의 라이벌이 확실한 것 같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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