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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는 시 7]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2016년 03월 19일 18:00

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보리암에서 남해를 향한 풍경 - wikimedia 제공
보리암에서 남해를 향한 풍경 - Pediagaller(w) 제공

14년 전 여름, 10년간 재직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쪽으로 뻗은 텅 빈 길로 차를 몰았습니다. 진주에서 지내던 시인 친구를 만나 하룻밤 곯아떨어지게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 다시 초행길을 내달려 도착한 곳이 최종 목적지 ‘남해금산’(南海錦山)이었습니다.

 

위의 시 제목과 동일한 『남해금산』은 제가 대학생 때 처음 읽고 급체한 듯 며칠을 내내 먹먹한 가슴으로 살았던 시집입니다. 그 후 이십여 년이 지나 비로소 그 시의 현장에 가보았던 겁니다. 그렇게 늦은 연유는 저의 게으름 탓이 크겠지만, 이성복 시인의 다른 시 「서해」에서처럼 “내 다 가 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정작 그 대상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의 태도라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사랑도 옛일이 되었을 때, 문득 그 추억의 현장을 찾는 이의 마음으로, 시에 대한 제 첫사랑 같은 ‘남해금산’에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습니다, 왜 시인이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라고 했는지를. 남해금산의 명소 ‘보리암’(菩提庵)에서 풍경을 바라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그곳은 기암괴석으로 둘러진 절경입니다. 그중 제가 본, 바다를 향한 어떤 암석은 마치 합장을 하고 서 있는 옛 여성 같았습니다. 물론 제가 익히 이 시를 알고 있었기에 그런 생각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모든 좋은 시가 그렇듯, 알 듯하면서도 손에 쥐어지지 않지만 마음에 체증을 일으키는 이 시를 읽노라면 참 속절없습니다. 엇갈리는 인연의 사무침 앞에서 슬픈 블루 이미지의 선명한 속절없음. 즉 시 말미의 하늘빛과 바다 빛깔이 이 시의 바탕색입니다. 이 시의 계절이 (제가 그곳을 찾았을 때처럼) 여름이기에 금산(錦山)은 초록으로 푸르렀겠지만, 시인의 시선은 쌀알의 색채인 미색(米色)의 여인상 같은 어떤 암벽 그리고 하늘과 동일한 색채인 바다를 오고 갔겠지요.

 

그러고 시는 시작합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라고요. 사실 이 시는 이 첫 행이 전부가 아닐까 합니다. 그 다음에 이어진 여섯 행은 마치 남해금산 아래의 고요한 복곡저수지에 던져진 돌멩이에서 시작한 파문과 같습니다. 저절로 번져나간 이야기이죠. 그 신화 같은 이야기에, 어떤 독자는 시인을 따라 “돌 속에 들어갔”을 겁니다.

 

이 시의 이야기는 은유적 실제 사연이거나 신화적 상상일 겁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전자로 읽는다면,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으로 들어갔네”라니, 시인을 사랑한, 문학을 사랑한, 문학의 결석(結石)인 시를 사랑한 “한 여자”를 따라 시인은 연애 감정이든 동질적 세계관이든 “그 여자”와 손을 맞잡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 비 많이” 오던 날, 웬일인지 “그 여자 울면서” 운명을 함께한 시인을 돌연 떠납니다. “떠나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다니 “그 여자”는 무난한 세상살이를 하지 않았을까요. 반면 시인은 “떠나는 그 여자”가 묻혀 있었던 “돌”이 마주하던 “하늘가”를 서성이고, “돌”이 내려다보던 “바닷물 속에” “혼자” 잠깁니다. 고수하는 것이죠.

 

사람의 만남이 연애든 동지애든 ‘사랑의 이름’으로 시작했더라도 서로 삶의 태도가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면 결국엔 살아가는 길이 갈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 시의 이야기가 상상적 내러티브이더라도 시의 화자가 말하려는 바는 다르지 않을 겁니다.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해와 달이 끌어주”는 무난한 삶으로 향하는 것과 첩첩의 암벽 같지만 그럼에도 그 고난의 길을 선택한 인생은 다를 테니까요. 이 시는 ‘사랑과 삶의 선택과 엇갈림’에 대한 아프고 쓸쓸한 은유의 “돌”입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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