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or 달팽이? 좀비 달팽이

2016.03.21 08:09

기생충은 다른 동물의 몸에 기생하여 영양분을 빼앗아 생활하는 벌레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요?

 

그런데 몸집이 큰 동물뿐만 아니라 작은 달팽이에도 기생하는 기생충이 있다고 합니다. 흡충(吸蟲)에 속하는 ‘류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Leucochloridium paradoxum, 이하 류코클로리디움)’인데요. 이 기생충이 마지막으로 기생하는 생물은 조류지만 새의 몸 속까지 들어가기 위해 달팽이를 중간 숙주로 이용한다고 하네요.

 

류코클로리디움이 알에서 새의 몸속까지 들어가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달팽이가 흙이나 식물 등을 먹이로 섭취하면서 이 기생충의 알을 함께 먹게 됩니다. 달팽이 몸 속으로 들어가면 알에서 깨고, 자라나면서 달팽이가 가진 두 쌍의 더듬이 중 눈이 있는 큰 더듬이 쪽으로 여러 가닥의 촉수를 뻗습니다. 

 

그러면 달팽이의 큰 더듬이는 가늘고 길었던 본래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모습으로 바뀝니다. 류코클로리디움 몸처럼 알록달록한 점이 생기고, 거기에 갈색과 초록빛 선이 번갈아 나타나게 되지요. 게다가 가늘었던 큰 더듬이가 새가 좋아하는 애벌레처럼 오동통한 상태가 됩니다. 여기에 촉수의 움직임까지 더하면 얼핏봐서는 울룩불룩하게 움직이는 애벌레처럼 보이지요. 결국 류코클로리디움에 감염된 달팽이를 본 새는 “얼씨구나~” 맛있게 잡아 먹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달팽이는 습기가 많고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낮에는 식물의 잎사귀 아래로 몸을 피해 있고 주로 밤에 활동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낮에 활동하는 새들은 어떻게 이 달팽이를 잡아 먹을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류코클로리디움이 달팽이를 최종 숙주인 새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해가 쨍쨍한 대낮에 식물의 줄기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조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비 달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게 아닌가 싶네요.

 

즉 류코클로리디움에 감염된 달팽이는 새에게 잡아 먹히게 되고, 기생충은 최종 숙주인 새에게 무사히 도착해 자기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최종 숙주에게 기생하게 된 이 류코클로리디움은 새의 창자 속에서 성충이 되며 새의 배설물에 그 알이 섞여 배출됩니다.

 

알은 다시 흙이나 식물 등에 섞이고, 새로운 달팽이가 먹게 되지요. 이렇게 류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이 번식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순환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작은 생물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생명은 물론 그 종(種)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 류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에 감염된 달팽이. Gilles San Martin(W) 제공>

※필자소개

민혜영. YBM시사에서 각종 영어 학습 월간지 및 내셔널 지오그래픽 단행본의 에디터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 외신 번역 및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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