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를 위해서는 SF를 許하라

2013.06.16 23:30

 

아이작 아시모프 - 네이버 제공
아이작 아시모프 - 네이버 제공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는 SF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러시아 태생의 대표적인 과학대중화 저술가이자 SF작가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화학과 생화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과학자 출신이다. 특히 왕성한 저작 활동은 SF소설은 물론 교양과학과 셰익스피어 해설서, 성서 해설서, 역사서 등 다양한 방면에서 500여 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SF 분야에서는 ‘스타쉽 트루퍼스’의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작가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빅 3’로 통할 정도다.

 

  다른 SF 작가들의 작품도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아시모프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영화도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다. ‘바이센테니얼 맨’이나 ‘아이, 로봇’이 대표적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아시모프는 당시까지만 해도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주는 로봇을 친근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로봇의 이미지로 바꾸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로봇공학 분야에서 중요 원칙으로 꼽히는 ‘로봇공학의 삼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제시하기도 했다.

 

  1.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3.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이후 로봇 시리즈를 쓰면서 절대 원칙인 0번 원칙을 추가하기도 했다. 바로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류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실 아시모프가 연작으로 발표한 대하 SF 소설인 ‘파운데이션’은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아시모프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1941년 22살의 나이에 집필을 시작해 1992년까지 쓰여질 정도로 깊은 애정이 담긴 책이다.

 

  아시모프는 파운데이션 초기 3부작으로 그 해 우수한 SF 소설 작가에게 수여하는 휴고상의 1965년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파운데이션 10부작은 전작인 우주 3부작과 로봇 6부작과 연결되는 방대한 내용이어서 막상 책을 들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서도 한 출판사에서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에 번역 출간됐다가 지금은 도서관 깊은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국내에서는 관심 밖이지만, 해외에서는 SF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거쳐가는 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것이 바로 파운데이션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인 폴 크루그먼은 파운데이션을 읽고 경제학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책에서 나오는 심리역사학이라는 학문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에서는 없는 학문이라 가장 유사할 것으로 생각된 경제학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먼 미래의 은하계를 배겨으로 은하제국의 몰락이 진행되는 순간부터 작품은 시작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심리역사학이라는 학문은 1권에 등장하는 수학자 해리 셀던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으로, 기체 분자의 운동역학을 인간 집단에 적용해 미래를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이다. 분자 개개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공기 전체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있듯이, 인간 개개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은하제국은 곧 멸망하게 될 것이고, 그 이후 2만년 간의 혼돈시대를 거친 뒤 제2 은하제국이 건설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이 중간의 암흑기를 1000년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바로 파운데이션을 건설하는 것이다.

 

  인류가 이뤄놓은 모든 성과를 두 행성으로 피난시켜 암흑기를 줄이겠다는 것인데, 제1파운데이션은 터미너스라는 행성에 만들고, 제2파운데이션은 제1파운데이션의 은하게 반대편에 만들어 놓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거대 국가의 몰락과 변화, 성장이라는 유기체적인 사회관과 함께, 인간사회에 대한 깊은 고찰을 느낄 수 있다.

 

  단 주의할 점은 전체 시리즈가 50여년 간 쓰여졌기 때문에 간혹 내용이 급변하는 느낌도 있다. 이 점만 고려한다면 SF 팬이라면 한 번은 읽어야할 작품이 파운데이션이 아닐까 싶다.

 

 대학 시절 읽었던 SF를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되새겨보는 이유는 최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창조’경제 때문이다.

 

  창조와 창의는 자유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요즘 높은 분들이 이야기하는 창조와 창의는 약간은 틀에서 찍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뭘 하든지 일자리만 창출하면 창의이고 창조라는 식이란 말이다. 사실 창의와 창조가 일상화된 나라에서는 SF 작품도 많이 나오고, 대중들의 사랑도 많이 받는 편이다. SF 자체가 현재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SF는 ‘공상’과학소설 정도로 취급받는다. 과학소설이 아니라 공상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덜 자란 성인들의 유희 정도로 취급받게 되고, SF를 이야기하면 ‘이 양반, 뜬구름 잡는 황당한 이야기나 좋아하는 것을 보니 아직 철이 덜 들었군’이라는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다.

 

 이는 일본의 한 출판사가 미국의 과학소설 잡지와 제휴해 만든 잡지를 ‘공상과학소설지’라 이름 붙이면서 이것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SF하며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사실 SF 분야 대표상이라고 하는 휴고상의 경우도 전년도 최우수 과학소설과 환상문학 작품에 대해 수여하고 있으니 SF를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냐고 항의해도 할 수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수상작들을 보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대다수다. 그러니 그냥 허황된 ‘공상’은 아니다.

 

  정부에서도 과학대중화를 이야기한지 벌써 몇 십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과학이 거리감을 주는 이유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사회가 펼쳐질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창조사회를 만들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자유로운 생각에 대해 억압적이고, 현재 기술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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