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 밀린 기자, 밥 먹고 살 수 있을까요?

2016.03.20 07:00

인공지능 바둑 기사(?)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롯이 인간의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직관과 통찰의 영역도 사실 기계가 할 수 있고, (충분한 데이터와 분석 능력만 갖추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했다는 점이 가장 충격적입니다.


우리가 ‘직관’과 ‘통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축적된 데이터와 적절한 알고리즘이 있으면 얼마든지 기계적으로 분석, 추론, 예측할 수 있지만, 기술이 부족해 지금까지 하지 못 했던 일들에 대한 ‘인간중심적’ 명칭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이 불편하더군요. 이런 철학적 불편함은 곧 우리의 생업의 미래 전망에 대한 매우 현실적 불편함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갑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기계에 대체되지 않을까요? 변호사나 판사나 의사는 안심할 수 있을까요? 이미 언론에서는 ‘미래에 사라질 직업 1위는?’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로봇, 저널리즘에 발을 들이다


제가 종사했던 저널리즘 분야는 사실 ‘기계의 공습’이 이미 시작된 영역입니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데이터를 수집해 매끈한 기사를 만들어내는 로봇 저널리즘이 이미 낯설지 않은 세상입니다.


로봇 저널리즘의 사례들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지진이 잦은 미국 서부 지역을 주무대로 하는 LA타임스는 지진 발생 보도에 로봇을 활용합니다. 미국 지리조사청(USGS)가 지진 정보를 감지하고 이 데이터를 API 형태로 제공하면, 신문사의 ‘퀘이크봇’이 진도와 발생 시각, 지점 등 기본 데이터를 바탕으로 즉시 기사를 씁니다.


사람 기자는 최종 확인만 하고 ‘발행’ 단추를 누르면 됩니다. 2014년 3월 로스앤젤리스에서 강도 4.4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LA타임스는 8분만에 속보를 낼 수 있었습니다.

 

LA QuakeBot 제공
LA QuakeBot 제공

미국의 뉴스 통신사 AP는 2014년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Automated Insights)라는 회사와 제휴해 기업 실적 발표 기사를 로봇 기자에게 맡겼습니다. 분기 실적이 공시되면 해당 데이터를 받아 자동으로 기사를 생산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 사업 소개나 향후 전망 등도 기사에 포함시키도록 개선됐다고 합니다. 온라인 경제 매체의 공시 담당 기자들이 하던 역할을 자동화한 것입니다. 이듬해 1월이 됐을 때, AP의 로봇 기자는 분기에 3000개의 기업 실적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Automated Insights 제공
AP통신 제공

시카고 트리뷴은 이미 2012년에 로봇이 작성한 뉴스를 제공하는 ‘저너틱(Journatic)’이란 회사로부터 기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포브스도 저너틱의 고객사입니다. 저너틱에 자동 기사 작성 소프트웨어를 판매한 것은 내러티브 사이언스(Narrative Science)라는 회사입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구팀이 스포츠 경기 결과를 수집해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로 성과를 거둔 후 2010년 창업한 회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지 파이낸셜뉴스가 올해부터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증권 시황 기사를 내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경기 결과를 바탕으로 자동으로 스포츠 기사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준환 서울대 교수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사 유통 주도권도 로봇이?


기사 생산뿐 아니라 기사 유통에도 로봇의 입김이 세지는 일이 생길까요? 뉴욕타임스는 최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협업 메신저 ‘슬랙’에 미국 대선 기사를 자동으로 쏘아주는 ‘NYT 대선 봇(NYT Election Bot)’을 선보였습니다. 슬랙 대화 채널에 이 봇을 추가하면 대선 상황에 대한 실시간 뉴스를 전달해주고, 사용자가 입력한 궁금증을 뉴욕타임스 편집국에 전달해 주기도 합니다.


아직은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메신저 앱에 자동으로 기사를 쏘고 간단한 피드백을 받는 정도의 기능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앞선 일부 매체들은 이미 어떤 기사를 사람들이 많이 클릭하고, 기사에 얼마나 머무는 지, 연관 기사를 얼마나 보는 지 등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언제 어떤 기사에 ‘좋아요’가 많이 눌리고, 어떤 기사가 바이럴을 타고 널리 공유되는 지도 정밀히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NYT Election Bot 제공
NYT Election Bot 제공

이런 정보들을 모아 최적의 시간대에 최적의 기사를 적절한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과정이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뉴욕타임스와 슬랙 이야기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작년에 사내 슬랙 채널에 ‘블라섬(Blossom)’이라는 봇을 만들어 설치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기사들이 인기를 얻고 있고, 이중 어떤 기사를 골라 뉴욕타임스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을 때 큰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직원들에 알려줍니다. 소셜미디어 운영자라는 직업이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자동적으로 기사를 쏴 주는 이런 ‘봇’들은 이미 메신저 앱에서 ‘친구’ 형태로 많이 존재합니다. ‘라인’ 같은 메신저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이나 이코노미스트 같은 매체들이 자사 기사를 친구들에게 톡 형태로 보내줍니다. 지금은 에디터가 선정한 기사에 간략한 설명과 링크를 붙여 보내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들 봇이 인공지능에 힘입어 각각의 사용자에 맞는 맞춤형 기사를 보내주는 일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겁니다. 좋아할 만한 주제의 기사뿐 아니라 기사를 전하는 시간대, 알림을 주는 방식, 톡의 말투까지도 세밀하게 개인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모바일 시대이고, 모바일 환경의 가장 기본적 인터페이스가 ‘메시징’이란 걸 생각해 본다면 이 메시징 환경에 맞는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는 언론계에서도 조만간 현실화될 것입니다. 메신저 환경은 결국 친구와 대화하는 환경이고, 사람이 아닌 친구는 ‘봇’의 형태를 띤다면 이 봇을 최대한 자연스러우면서도 친근하고 유용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려면 인공지능이 접목되어야 할 것이고요. 이 과정에서 ‘봇’은 단순히 메신저에서의 사용자 접점 역할을 넘어 실제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구현되는 진짜 ‘봇’으로 진화하지 않을까요?

  

미국의 유서깊은 잡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이 만든 경제 전문 온라인 매체 쿼츠(Quartz)가 최근 모바일 앱을 내놓았는데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참신한 접근법을 택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마치 시사박사 친구가 문자로 뉴스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느낌입니다.


아직은 에디터가 사전 지정한 시나리오대로만 대화가 진행되지만, 이렇게 메시징 환경에 익숙해진 후에는 인공지능 봇이 사람마다 다른 시나리오대로 상대방에 실시간 대응하며 뉴스를 전달하는 날이 오리라 봅니다.

 


기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렇게 기사 작성과 유통 과정에 인공지능의 개입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과연 언론인의 미래는 어떨까요? 기자들의 일자리는 없어질까요? 스카이넷이 만든 로봇 기자 R-1000과의 경쟁에서 무력하게 패하게 될까요?


우선 단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조하게 사실을 전하는 기사, 이른바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기자에 대한 수요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들은 “스트레이트 기사는 기사의 기본”이라며 초년병 시절부터 강하게 작성법을 훈련받습니다만, 아무래도 기계보다 더 많이, 더 잘 쓰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스포츠, 증권, 기업 실적 등은 데이터가 정형화돼 있고, 충분히 많이 쌓여 있을 뿐 아니라 기사 형식이 제한적이라 로봇이 기사 쓰기 좋은 분야입니다. 현재는 스트레이트 기사 중심입니다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보다 복잡한 기사도 자연스럽게 쓰게 될 것입니다.


결국 사람 기자는 이런 단순 기사 작성은 로봇에 맡기고 보다 깊이 있는 분석, 풍부한 스토리, 성찰과 감동이 담긴 이야기들을 찾고 만들어내는 일에 매진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잘하고 비슷비슷한 보도자료 처리에 치여 정작 중요한 기사는 쓰지 못 하는 현대의 기자들에게 로봇은 오히려 좋은 보조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단계에 이르기 전에 희생은 어쩔 수 없겠지요. 시카고 트리뷴은 저너틱과 제휴하며 기자 20명을 정리해고했습니다. LA타임스가 로봇 저널리즘에 관심 보이는 것도 인건비 부담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요.

 


과연 인간이 더 잘 할 수 있나?


더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인간이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석이나 통찰 중심의 기사에서도 로봇이 놀랄만큼 빨리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점입니다. 경험과 데이터가 더 쌓이고, 분석 기법이 발전하면 지금 기계가 쓰기에는 너무 복잡하거나 비정형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서도 로봇이 좋은 기사를 뽑아내는 순간이 오겠죠.


통찰이나 분석은 많은 경우 과거 사례와 경험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 이슈를 해석할 때 나타나곤 합니다. 그런데 로봇은 수많은 과거 사례와 데이터를 모두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고 잊어버리는 일도 없습니다. 사람 기자가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의 깨알같은 글자들에 눈이 아파 집중력이 떨어질 때, 로봇은 이번 분기 스마트폰 판매 실적을 3년 전 이맘 때 데이터와 즉시 비교해 특이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데이터의 추세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는 이를 감지해 기사 작성의 주요 포인트로 삼아라는 식으로 알고리즘을 가르칠 수 있겠죠.


앞서 소개한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는 최근 자사 기사 제작 소프트웨어를 ‘워드스미스’란 이름으로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했습니다. 데이터에 맞춰 적절한 단어나 문장을 집어넣거나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 구조의 논리를 바꾸거나 여러 개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내러티브 사이언스의 기술은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설명서를 자동으로 생성하거나 회계법인이 방대한 업무 데이터 중 복잡한 금융 규제 규정에 어긋나는 사항은 없는지 등을 감지해 관련 내용을 알려주는 데에 쓰이기도 합니다. 데이터만 있으면 그중 의미있는 것을 골라 이야기를 만들고 시각 자료까지 만들어냅니다.  


물론 이들 회사가 제공하는 것은 ‘기술적’ 글쓰기의 자동화입니다.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를 골라,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이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내는 일은 앞으로도 상당히 사람의 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로봇은 사람을 직접 만나 취재하기는 힘들겠죠.


하지만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훑으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상당히 정교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오고 가는지, 어디에서 돈을 쓰는 지 등의 정보를 세상 모든 곳에 흘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 방대한 데이터들을 잘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내는 기사는, 인간이라면 불가능했을 그 데이터에 대한 해석만으로도, 베테랑 인간 기자의 기사만큼이나 통찰을 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처음에는 알파고의 수를 ‘실수’로 치부하다 나중에 수십 수 앞을 내다본 새로운 접근법이었음을 깨닫고, 기존에 신봉하던 ‘정석’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 미래의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로봇 기자가 쏟아내는 수준 높은 분석 기사와 베테랑 사람 기자가 한땀 한땀 만들어내는 고품격 스토리를 함께 소비하게 될 듯 합니다.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좋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기자라는 직업은, ‘기레기’라를 모멸을 당하는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고 나면, 오히려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살아남을 유망 직종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경쟁은 지금 못지 않게 어려울 것 같고요,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기자실 옆자리 기자가 아니라 로봇일 것입니다.

 

∴ 언론인의 미래 생존 가능성 ★★☆☆☆

“살아남은 소수는 지금 기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명예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들은…? 제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 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꽤나 비극적이 될 겁니다.”

 

※ 필자소개
한세희. 연세대를 졸업하고 전자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인터넷, 소셜 미디어, 모바일 등의 분야를 열심히 취재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 속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크다. 기술과 세상의 변화를 따라다니며 쉽게 풀어쓰고 싶어한다. 요즘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잉여 인간 체험 중이다.

 

편집자주: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결과를 내놨습니다. 대국 전 예상과 달리 인공지능 알파고의 압승으로 끝났지요. 알파고의 승리 의미는 단순히 뛰어난 바둑 인공지능이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왔다는 신호탄입니다. 동아사이언스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앞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보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글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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