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너희가 인공지능의 최고라고? 천만의 말씀!

2016.03.11 21:00

‘쎈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연달아 세 번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계 최고수인 이 9단의 낙승을 점쳤던 바둑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많은 사람들도 ‘바둑마저 기계에게 점령당했다’며 서글퍼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사실 알파고의 승리는 기계 대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이 패배했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알파고 그 자체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니까요.

 

구글 제공
구글 제공

●구글, 인공지능 분야 강자로 급부상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가 1국 승리 후 남겼던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는 메시지도 그저 ‘우리 잘났다’는 뜻이 아닐 겁니다. 달이라는 새 영토를 개척했던 아폴로 11호처럼 인공지능이라는, 인간이 탐색해야 하는 새 지평이 열렸다는 선언인 것이죠.

 

어쨌든 알파고를 소유한 구글은 이번 대국으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유한 인공지능의 성능도 검증할 수 있었거니와 전 세계의 미디어에 압도적인 인공지능 기술력을 노출시킬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말~2000년대 인공지능의 대명사가 체스 챔피언을 이겼던 IBM의 ‘딥블루’이었다면 이제 최소 10년간은 그 자리를 알파고가 대신할 겁니다. 고작 상금 100만 달러 투자한 것에 비하면 정말 엄청난 것들을 가져가는 것이죠.

 

데미스 하사비스 트위터 캡처 제공
데미스 하사비스 트위터 캡처 제공

●페이스북 8일 ‘UETorch’ 선보이며 반격 

 

헌데 구글이 알파고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동안 페이스북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메이저 IT 기업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영역을 그냥 구글이 입도선매하도록 손놓고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 리는 없겠죠.

 

마침 지난 8일, 모두가 ‘알파고 vs. 이세돌’라는 빅 이벤트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페이스북이 그간의 인공지능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작지만 의미있는 결과 하나를 조용히 발표했습니다. 마치 ‘너희들만 이 바닥에 있는 건 아니야. 조심해’라는 선언 같다고나 할까요. 바로 오픈소스 ‘UETorch’입니다.

 

UETorch는 Torch라는 딥 러닝 라이브러리를 언리얼 4라는 3D 물리 엔진과 결합한 오픈소스 환경입니다. 물리 엔진은 어떤 가상의 환경에 속하는 모든 사물(오브젝트)를 대상으로, 질량이나 속도, 형태, 마찰과 같은 저항 등의 수치를 바탕으로 일반 역학 모델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자면 물이 흐르거나, 높은 곳에서 물체가 떨어지거나,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이 세계의 모든 물리적 현상을 실제와 가깝게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인 것이죠.

 

딥 러닝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 중의 하나로 알파고도 딥 러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종합하자면, UETorch는 딥 러닝을 활용한 인공지능이 물리 엔진이 구현한 가상의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을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페이스북은 이것이 ‘인공지능이 지각하고 추론하고, 계획을 세우고, 반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 물리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일반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글 ‘바둑’ vs 페이스북 ’블럭쌓기’

 

제가 생각에 이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반적으로 이해한다(generally understand)’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페이스북은 실제 세계의 전반적인 물리적 특성이 대충 어떤지, 바람이 세게 불면 불수록 맞서서 걸어가기가 더 힘들어지고, 물이 흘러오면 가벼운 것은 떠내려가지만 무거운 것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이런 인공지능이 가진 가능성을 굳이 말로 하는 건 입만 아플 일이죠. 페이스북의 미션인 ‘인간을 연결’하는 작업에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을 겁니다.

 

페이스북이 UETorch와 함께 발표한 논문(http://arxiv.org/abs/1603.01312)도 이런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논문은 UETorch를 이용해 가상으로 나무 블록들을 임의적으로 쌓은 후에 이것이 넘어질지 그대로 서 있을지, 넘어진다면 블록들은 어디로 넘어질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학습하게 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컴퓨터가 매우 정확하게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알파고는 바둑을 두는데 고작 블록쌓기라니 허접하구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블록쌓기 놀이는 영유아 아이들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놀이들 중의 하나입니다. 아기들은 블록탑이 쌓이거나 넘어지는 걸 보면서 중력이라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중요한 법칙에 대한 ‘감’을 익히게 됩니다.

 

Cornell University Library 제공
Cornell University Library 제공

이걸 알지 못하고는 결코 실제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페이스북의 논문 속에 나온 인공지능은 언리얼 엔진이 만들어낸 가상 환경 속에서 딥 러닝을 실시함으로써 실제 세계를 이해하는 첫 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알파고가 바둑이라는 반상 위 싸움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면, 페이스북은 인공지능에게 실제 세계의 물리를 이해시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영유아들의 블록쌓기 세계대회가 없기 때문에 이 인공지능과 인간이 대결하는 화려한 이벤트가 벌어지긴 어렵겠습니다만, UETorch가 갖는 함의만은 알파고에 그다지 처지지 않는다고 보여지네요.

 

최근 인공지능과 관련해 구글이 가장 주목받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UETorch 같은 사례를 보면 페이스북을 위시한 다른 메이저 IT 기업들도 이 분야의 잠룡인 것도 확실한 것 같네요. 아직까지 분명하진 않지만 각 기업들의 인공지능 지향점은 조금씩 다르겠지요.

 

이들이 각자 어떤 인공지능을 내놓고 어떤 분야에 가지를 뻗어갈지, 최소 향후 5년 간은 좋은 관전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 필자 소개

최순욱.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IT 전문 매체에서 인터넷, 미디어, 게임 등을 취재했다. 현재는 학교로 돌아와 미디어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미디어와 기술, 제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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