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에게도 현생인류 피가 흘러들어갔다

2016.03.07 17:37

고게놈학이 일상적인 연구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인류학 분야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연구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해독되면서 아프리카를 제외한 사람들에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종 사이의 혼혈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끝났다. 같은 해 역시 고게놈 연구로 데니소바인이라는 미지의 인류의 게놈이 해독됐고 동아시아와 특히 오세아니아 사람들에게 이들의 피가 섞였다는 놀라운 사실도 밝혀졌다.

 

게놈서열을 바탕으로 추정을 하자면 먼저 현생인류의 조상과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의 조상이 55만~76만 년 전에 갈라졌고 그 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38만~47만 년 전에 갈라졌다. 데니소바인은 치아와 손가락뼈밖에 없지만 외모는 현생인류보다 네안데르탈인에 가까울 것이다.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에는 오늘날 루마니아 지역의 3만 7000~4만 2000년 전 현생인류의 게놈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실렸는데, 놀랍게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6~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인 게놈의 1~3%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이 게놈의 주인공은 불과 4~6세대 위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는 약 4만7000년~6만5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현생인류로 흘러들어갔다는 추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왼쪽)과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오른쪽). - 위키미디어 제공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왼쪽)과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오른쪽). - 위키미디어 제공

게놈에서 0.1~2.1% 차지

 

이런 결과들을 보면서 필자는 ‘그럼 현생인류의 피도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에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들 서로 다른 종의 남녀 사이에 로맨스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납치나 강간을 통해 피가 섞였을 텐데, 네안데르탈인에게 납치당한 현생인류 여성이나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 주거지를 공격할 때 강간당한 네안데르탈인 여성이 임신을 해 아이를 낳은 경우 네안데르탈인에게도 현생인류의 피가 섞여들 수 있기 때문이다(데니소바인도 마찬가지다).

 

학술지 <네이처> 2월 25일자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알타이 지역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에서 현생인류의 유전자 흔적이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진화유전학과 세르지 카스텔라노 박사팀과 미국 코넬대 생물통계학 및 계산생물학과 애덤 시펠 교수팀은 알타이 지역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유럽 스페인과 크로아티아의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현생인류의 게놈과 면밀하게 비교분석한 결과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에서 현생인류의 피가 0.1~2.1%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또 혼혈이 된 시기는 대략 10만 년 전이라고 추정했다.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의 네안데르탈인과 대략 11만 년 전에 갈라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번 결과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즉 유럽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가운데 일부가 간빙기를 맞아 동진해 중동으로 진출했고 그 뒤 일부가 알타이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에게 피를 나눠준 현생인류는 누구일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에서 현생인류의 흔적이 발견됐다. 이들은 약 10만 년 전 중동 지역에서 현생인류와 혼혈이 된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고게놈 연구로 밝혀진 혼혈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빨간색 화살표가 현생인류에서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으로 간 유전자 흐름을 나타낸다. 이 현생인류는 약 20만 년 전 갈라진 부류로 사라지거나 숫자가 미미해져 정작 현대인의 게놈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네이처 제공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에서 현생인류의 흔적이 발견됐다. 이들은 약 10만 년 전 중동 지역에서 현생인류와 혼혈이 된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고게놈 연구로 밝혀진 혼혈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빨간색 화살표가 현생인류에서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으로 간 유전자 흐름을 나타낸다. 이 현생인류는 약 20만 년 전 갈라진 부류로 사라지거나 숫자가 미미해져 정작 현대인의 게놈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네이처 제공

정작 현대인에게는 거의 영향 못 준 듯

 

필자는 최근 심란 세티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Bread Wine Chocolate’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 제목의 세 가지에 더해 커피, 맥주, 문어 등 여섯 가지 기호식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다. 서론을 읽고 나서 제일 관심이 가는 커피를 먼저 읽었는데, 그 가운데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커피나무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는 그 외의 전 세계 지역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다양한 커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이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예를 들어 콩은 원산지인 한반도에 다양한 야생종이 분포한다.

 

따라서 현생인류의 다양성도 아프리카가 단연 높을 것이고 또 실제 그렇다. 논문의 일러스트를 봐도 그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즉 현생인류 가운데 아프리카의 산족과 요루바족, 유럽의 프랑스인, 아시아의 한족, 오세아니아의 파푸안족의 계통도를 보면 약 20만 년 전 산족이 가장 먼저 갈라졌다. 연구자들은 여러 통계기법을 통해 알타이 네안데르탈인과 혼혈된 현생인류가 산족이 다른 아프리카인들과 갈라진 시점을 전후해 갈라진 인류라고 추정했다.

 

즉 이들이 최소한 12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동으로 진출했고 이곳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접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생인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지거나 숫자가 미미해 현대인의 유전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아마도 이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에 밀려 몰락했을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최근 현생인류가 생각보다 앞서 아프리카를 벗어났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네이처>에는 중국 남부 후난성의 푸얀동굴에서 발굴된 현생인류의 치아를 분석한 결과가 실렸는데, 그 연대가 8만~12만 년 전으로 추정됐다. 그때까지 중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현생인류의 흔적은 4만 년 전 것이었다. 참고로 유럽은 4만~4만5000년 전의 현생인류 증거가 가장 오래됐다. 따라서 일찌감치 아프리카를 떠난 현생인류가 새로 도착한 지역에 살고 있던 다른 인류와 혼혈됐을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앞으로 고게놈학에 기반한 또 어떤 놀라운 연구결과가 나올지 기대된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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