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FBI의 잠금 논란, 마블 코믹스 ‘시빌 워’와 판박이

2016.03.05 13:00

아이폰의 보안기능을 둘러싼 애플과 FBI(미 연방수사국) 간의 갈등이 IT 업계 전체를 넘어 이제는 시민사회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4명이 사망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FBI는 조직적·계획적 테러행위의 여부를 밝히기 위해 애플에 범인이 사용한 아이폰5S의 보안을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지요. 말이 요청이지 실은 아이폰5S의 암호를 뚫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수사에 협조하라는 애플에 대한 행정판사의 명령을 받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명령 취소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연방법원에 아예 소송을 제기해 버렸습니다.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된 프로그램의 코드 자체가 개인의 ‘안전과 사생활’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는, 일종의 발언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코드를 정부가 맘대로 ‘열어라’라고 하는 것 자체가 발언과 출판의 자유를 저해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는 수정헌법 1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죠. 정말 스마트하고도 날카로운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지원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애플쪽인데요, 3일(현지시간)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10여 개 기업들이 애플의 입장을 지지하는 전문가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시민자유연맹(ACLU), 액세스 나우(Access Now)같은 시민단체도 같은 취지의 의견서를 냈구요.

 

FBI쪽이 좀 약해 보이긴 합니다만, 이쪽은 테러 피해자들이라는 강력한 우군이 있습니다. 같은 날 12월 테러사건의 피해자 가족 다섯 명이 FBI를 지지하는 내용의 서류를 법원에 제출했죠. 피해자 가족의 슬픔, 비통함보다 FBI의 입지를 더 강화해 줄 수 있는 장치가 있을까요. 그런만큼 앞으로 FBI, 그리고 피해자 가족과 입장을 같이하는 시민단체가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애플 진영이 강력한 논거를 갖추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최근 잇달아 벌어진 테러, 총격사건으로 인한 미국 국민들의 실질적인 안보 위협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사건의 향방과 그 결과가 미칠 영향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만화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마블코믹스의 ‘시빌 워(Civil War)’입니다.    


2006년에 처음 발표된 시빌 워는 수많은 마블코믹스의 만화책 중에서도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4월에는 이를 원작으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도 개봉(4월 28일 예정)되는데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올해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손꼽고 있지요. 어쨌든 간에 시빌 워의 내용은 마치 작가들이 작금의 사태를 내다봤던 것처럼, 애플과 FBI 간의 갈등을 빼다 박았습니다.

 

4월에 개봉할 시빌 워 원작의 영화 포스터.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으로 각각 대별되는 자유와 관리의 대립을 표현하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4월에 개봉할 시빌 워 원작의 영화 포스터.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으로 각각 대별되는 자유와 관리의 대립을 표현하고 있다.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자신들이 악당을 잡는 장면을 TV로 생중계하는 애송이 슈퍼히어로 팀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로지 인기를 위해 겁도 없이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슈퍼빌런(악당)에게 덤벼들었고, 전투 중에 한 빌런이 초등학교 근처에서 자폭해 버립니다. 결국 히어로들과 빌런들, 그리고 초등학생을 포함한 민간인 600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TV로 생중계되는 지경이 되죠.

 

이 사건은 이른바 ‘초인등록법안’을 낳게 됩니다. 히어로로 활동하기 위해선 정부에 등록하고 정체를 밝히라는 내용입니다. 정부는 등록된 히어로에게 증명사진과 눙력에 대한 설명이 적힌 일종의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겠다고 하죠. 국민들의 안전과 안보를 위해 정부가 히어로들을 강력하게 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슈퍼히어로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도 초인등록법안 찬반을 두고 두 진영으로 완전히 갈라지죠. 찬성 진영의 리더는 아이언맨입니다. 그는 컴퓨터로 아이언맨 수트를 완벽하게 조작하듯 히어로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항하는 반대 측의 대장은 캡틴 아메리카입니다. 그의 주장은 이 대사로 요약됩니다.

 

“정부에서 히어로들을 정해주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빌런이 누구인지까지 정해주게 될 거다.”

 

캡틴 아메리카는 통제가 ‘자유’라는 가치를 억압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었던 전우이자 절친이었던 이 둘은 결국 건널 수 없는 이념의 간극을 확인하고 자신을 따르는 많은 히어로들을 이끌고 서로에 맞서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놀랍지 않나요? 총격사건으로 촉발된 FBI의 아이폰 보안해제 요구는 대참사가 계기가 돼 발의된 초인등록법안에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사생활과 자유를 주장하는 애플 진영에, 아이언맨은 안보와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FBI와 그 지지자들에 대입시켜 볼 수 있겠죠. 사건 피해자들이 아이언맨과 FBI를 지지했다는 것도 똑같습니다. 정말 미래를 내다보는 예술가, 작가들의 선견지명에 놀랄 수밖에 없지요.

 

현실에서 자유와 통제(관리)의 대결은 이제 시작이니 시빌 워가 어떻게 종결되는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욕에서 도시를 대파할 정도의 격렬한 전투를 치를 끝에 캡틴 아메리카는 아이언맨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넣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직전, 삶의 터전이 붕괴된 데 분노한 시민들이 달려와 캡틴 아메리카를 저지합니다. 이를 본 캡틴 아메리카는 싸움에선 이겼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이미 초인등록법안 찬성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가면을 벗고 수갑을 찬 채 체포되고 맙니다. 결국 초인등록법안은 통과되고 미등록 히어로들은 미등록일 경우 잡혀가거나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등록 히어로들은 정부의 관리 아래 활동하게 되었구요.

 

애플 진영과 FBI의 진영의 대립이 과연 시빌 워처럼 끝나게 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그저 휴대폰 하나 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빌 워처럼 안전과 자유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둘러싼 이념투쟁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앞으로 많은 전문가들, 사상가들이 양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고 격렬한 투쟁의 와중에 만화에서처럼 승리자와 패배자, 희생자가 발생하겠죠. 여러분은 어디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이언맨인가요, 캡틴 아메리카인가요? 애플입니까, FBI입니까?

 

답을 하신 분들을 위해 마지막 아이언맨의 고백을 들려드리죠. 시빌 워가 끝난 후 아이언맨은 자신을 한 일을 반추합니다. 많은 동료가 죽거나 다치고, 시민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질서가 지켜졌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지요. 하지만 마지막에 “이 법안이 과연 동지들에게 등을 돌릴 정도로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었나?”라는 질문을 떠올린 아이언맨은 이렇게 무너지며 말합니다.

 

“그럴 만한 가치는 없었어.(It wasn’t worth it.)”

 

 

※ 필자 소개

최순욱. 대학을 졸업하고 전자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IT 전문 매체에서 인터넷, 미디어, 게임 등을 취재했다. 현재는 학교로 돌아와 미디어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미디어와 기술, 제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