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기자 친구의 술 체질 허와 실

2016.02.26 17:00

바야흐로 대학 신입생 환영회 시즌. 잔디밭에 둘러앉아 수건 돌리기를 하고, 못 마시는 척 쓰러져 점 찍어둔 남학생과 귀가하는 아름다운 상상을 하고 있다고? 꿈 깨. “술은 마시면 는다, 마셔라!”는 말을 입에 달고 후배의 군기를 잡으려는 선배들을 만나게 될 것이야. 뭐? 옆집 순이는 그렇게 억지로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주량이 늘었다고? 과연 진짜일까? ‘술 체질’은 유전자가 결정하는데? 10년간 주당 자리를 놓치지 않은 이 언니가, 아니 언니 친구가 술 체질을 둘러싼 말들을 과학적으로 짚어준대. 허술한 말에 휩쓸려 과음하지 말고 주량껏 즐기시길.



※ 편집자 주
주의할 점 하나. 기사에서 인용한 연구 대부분은 알코올 중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다. 반대로, 이런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알코올 중독 환자가 되는 건 아니다. 최인근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코올 중독 같은 정신질환은 관련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실제로 발현될 확률은 최대 70%”라고 말했다.

 

● 평소 채소가 달게 느껴진다
    ↳ 마셔도 되지만 그러다 중독될라


“오늘은 소주가 단데?” “너, 오늘 적당히 마셔야겠다.”


술을 좀 마신다는 ‘꾼’들은 내 몸이 술을 잘 받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 누군가에게 쓰기만 한 술이, 그들에겐 실제로 달게 느껴지거든. 다시 강조하지만, 언니 얘기 아니다. 언니 친구 얘기야. 이렇게 술을 달게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술을 자주, 많이 마실 확률이 높아.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감각평가센터의 존 헤이스 박사팀은 술 맛을 좋아하는지 여부가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유전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학술지 ‘알코올중독: 임상과 실험 연구’ 2014년 10월호). 사람의 게놈에는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감칠맛 등 5가지 맛과 관련된 유전자가 있거든. 지금까지 단맛과 감칠맛에 관련된 유전자 2개, 쓴맛과 관련된 유전자 25개가 밝혀졌어. 연구팀은 이 중에서도 쓴맛을 느끼게 하는 TAS2R38과 TAS2R13, 그리고 톡 쏘는 느낌에 관련된 TRPV1이라는 유전자의 SNP(단일염기다형성)에 주목했대. SNP란 개인별로 DNA의 특정 위치에 나타나는 염기 변이인데, 이 변이의 형태에 따라 각 맛을 느끼는 민감도가 달라져.


유럽계 성인 남녀 93명을 대상으로 술 맛을 평가하게 한 뒤 유전자를 검사했더니,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두 개의 SNP 모두가 쓴맛에 민감한 유형인 사람이 술을 가장 쓰다고 평가했대. 반면 두 개 모두 민감도가 낮은 사람은 술을 덜 쓰다고 평가했어. 하나만 민감한 사람은 그 중간이라고 평가했고. 다시 말해서, 쓴맛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술, 즉 알코올 맛을 느끼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거야.


이런 사람은 실제로 술을 많이 먹어. 2004년 11월 같은 학술지에 실린 미국 코네티컷대 발레리 더피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두 개의 민감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1년 동안 평균 134회 술을 마신 데 비해서 두 개 모두 민감하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같은 기간 동안 289회 술을 마셨대.


쓴맛에 민감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당연하게도 브로콜리나 녹차, 콩 제품 등 쓴 채소류도 잘 먹지 않아. 반대로 얘기하면, 쓴 채소를 잘 먹는 사람이라면 알코올 맛도 상대적으로 달게 느낄 가능성이 큰 셈이지. 브로콜리 좋아한다고? 너, 끼 있다, 얘. 본격적으로 술 마시기 시작하면, 꼭 한번쯤은 섭취량을 점검해 봐. 다 같이 모여서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면 본인이 얼마나 먹었는지 알기가 쉽지 않거든. 참고로, 한국인의 20% 정도가 쓴 맛을 잘 못 느끼는 유전자를 가진 걸로 추정된대.

 

● 담배 피우면 술 생각이 난다
    ↳ 니코틴이 술 마신다


같은 이유로,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 술을 잘 마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2008년 조사에서, 쓴맛에 덜 민감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하루에 피우는 담배 양이 더 많고 니코틴 의존성도 더 높다고 밝혀졌어. 담배 맛도 덜 쓰다고 느끼기 때문이지.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니코틴이 알코올을 직접 당기기도 해. 알코올 의존증 환자 85%가 니코틴 의존증을 동반하는 이유지. 꼭 환자가 아니더라도 흡연자라면, 술을 마실 때 평소보다 유독 더 담배 생각이 나는 걸 경험해 봤을 거야. 맞다고? 언니도 알지 않냐고?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냐고? (입 다물어, 얘.) 어쨌든, 미국 미주리대 의대 마헤시 타카르 교수팀은 담배의 니코틴이 술
마실 때 느껴지는 쾌감을 더 촉진하면서 졸음까지 방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어(2015년 8월 31일 학술지 ‘신경화학’).


연구팀은 쥐에 수면기록 장치를 붙이고 네 그룹으로 나눴어. 각 그룹별로 알코올, 알코올과 니코틴, 니코틴과 물, 그리고 물을 투여했지. 관찰 결과, 알코올이 투여된 쥐는 심하게 졸았대. 당연하겠지. 사람도 그렇잖아. 신기한 건, 니코틴이 같이 투입된 쥐들은 덜 졸았다는 거야.


타카르 박사는 보도자료에서 “알코올의 부작용 중 하나가 졸음”이라며 “니코틴이 각성제와 쾌감 촉진제로 작용해 술을 더 마시게 만들고, 술을 더 마실수록 담배를 더 찾게 된다”고 밝혔어.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 들어봤지? 이 경우에는 ‘니코틴이 술을 마신다’고 해야겠네.

 


● 마셔도 마셔도 얼굴은 멀쩡
    ↳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술 체질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유전자는, 뭐니뭐니해도 알코올 분해 유전자야. 알코올은 ADH라는 효소에 의해 가장 먼저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분해되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바로 술을 마셨을 때 나타나는 홍조나 빠른 심박동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이야. 그 뒤에 ALDH라는 효소가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무독성의 최종 산물(아세트산, 물, 이산화탄소)로 분해해야 비로소 해독 끝.


ADH 효소를 잘 만드는 유전자(ADH2-2, ADH3-1)를 가진 사람은 술을 조금만 마셔도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빨리 만들어져. 아시아인과 이스라엘 사람, 그리고 마오리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구에서 이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술을 마실 때 얼굴이 시뻘개지는 등 후유증이 큰 것으로 나타났어. 한마디로, 주당이 아닌 거지. 반면 ADH 효소가 부족한 사람은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잘 분해되지 않아서 얼굴이 빨개지지 않아. 타고난 주당이야. 하지만 체내에 알코올이 오래 머무르기 때문에 뇌 신경이 망가질 가능성이 더 커.


ALDH는 반대야. ALDH 효소를 잘 만드는 유전자(ALDH2-1)를 가진 사람은 체내에 쌓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무독성의 최종 산물로 빨리 분해하기 때문에 술을 많이 먹고도 금방 회복해. 반면, ALDH 효소를 잘 못 만드는 유전자(ALDH2-2)를 가진 사람은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분해되지 않고 혈액 속에 쌓이지. 술 마시는 내내 얼굴이 시뻘겋고 머리가 아프니까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해. 알코올 의존 환자가 될 가능성도 낮아.


최인근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한국인의 약 25%가 ALDH 기능이 떨어지는 유전자형을 갖고 있어서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 먹는다고 밝혔어(2007년 12월 5일 학술지 ‘인간분자유전학’). 최 교수는 “알코올과 관련된 또 다른 유전자를 찾기 위해 후속 연구를 했는데, 아시아 사람들에서는 결국 ADH와 ALDH 유전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알코올 중독 환자들에게 ALDH 유전자를 방해하는 마이크로 RNA를 주입해 술을 잘 못 마시는 체질로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어. 마이크로 RNA의 기능이 100% 밝혀지지 않아 아직 사람에 적용할 수는 없대. 만약 그 날이 온다면 내게, 아, 아니 고주망태 내 친구에게 술을 가르친 그 선배 놈의 유전자를 가장 먼저 바꿔버리겠어(이글이글).

 

● 술 마시면 욱한다
    ↳ 그러다가 개 될라


겉으로 알 수는 없지만, 뇌 신경전달물질과 관련된 유전자도 술버릇을 결정해. 알코올 의존증은 대뇌보상회로와 충동조절회로의 작용으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예를 들어, 중독 물질이 들어와 보상회로에 작용하면 즐거움이 생기고 ‘긍정적 재강화’를 일으켜 계속 중독물질을 찾게 한다는 거지. 알코올은 긍정적 재강화 물질이야. 주로 뇌의 복측피개 지역의 도파민 활성을 증가시키지.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그 도파민 말야.


핀란드 헬싱키대 의료센터 연구팀은 알코올 중독 환자들이 술을 마셨을 때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유를 찾기 위해 환자와 그 친척의 신경전달물질과 관련 유전자를 조사했어. 그 결과, 세로토닌 2B 수용체 돌연변이가 있으면 술을 마셨을 때 자기 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대(학술지 ‘중개정신의학’ 2015년 11월 17일자). 이 수용체는 지나친 감정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억제하는데, 관련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으면 세로토닌 2B 수용체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거지. 연구팀은 “핀란드 전체 인구의 약 2.2%가 세로토닌 2B 수용체 돌연변이를 타고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어. 자, 어때? 이제 너의 술 체질을 알 것 같아? 완전 체질이라고? 지금 마시러 가자고?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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