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에 유독 불놀이를 많이 하는 이유는?

2016.02.21 09:30

정월대보름에는 부럼을 깨물고 오곡밥을 먹고 더위를 팔죠. 여기에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같은 재미있는 불놀이를 합니다. 정월대보름에는 왜 다른 명절과 달리 유난히 불과 관련된 풍습이 많은 걸까요? 보름달보다 환한 불을 밝히며 때로는 위험천만한 사고를 일으키기까지 하는 불놀이를 해왔던 이유는 뭘까요? 정월대보름의 불놀이 풍습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액운도 함께 불살라버리는 ‘달집태우기’


달집태우기는 비교적 이른 저녁 때부터 치르는 축제입니다. 새해의 첫 보름달이 동쪽 하늘에 두둥실 뜨기 시작하면, 풍악을 울리며 달집을 태우는데요. 


달집의 모양은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집’의 형태 보다는 뾰족하게 솟은 산이나 횃불의 모양에 가깝습니다. 대나무 같은 막대기 3개로 기둥을 세운 뒤, 꼭대기를 하나로 모아 묶습니다. 그리고 짚, 솔가지, 땔감 등으로 감싸는데요. 이때 달이 뜨는 동쪽으로는 문을 틔워놓습니다.


달집을 태우기 전에 풍악대와 사람들이 달짚 주위를 맴돌고, 달이 뜨면 횃불로 달집에 불을 붙입니다. 본격적으로 달집태우기를 시작하면 골고루 잘 태우는 게 중요합니다. 고루 잘 타오르면 그 해는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라고 믿었기 때문인데요. 때로는 달집이 타다가 넘어지는 쪽의 마을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치기도 했습니다.


달집이 타오르면 사람들은 달집에 절을 하고, 불길에 헌옷, 속옷, 부적, 머리카락, 연 등을 던져 태우기도 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서 풍요다산의 상징인 보름달을 가까이 느끼며, 올 한해 액운이 불살라지기를 기원했던 것이죠. 

 

달집태우기 - 위키미디어 제공
달집태우기 - 위키미디어 제공

1년에 한번 하는 불장난 ‘쥐불놀이’


논두렁 위에서 작은 불덩이를 깡통에 넣고 휘휘 돌려 원을 그리는 쥐불놀이. 한번쯤 사진으로나마 본 기억이 있죠? 바로 정월대보름날 하는 불놀이입니다. ‘쥐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십이간지에 따라 새해 첫 ‘쥐’의 날(上子日)에 불을 붙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쫓아내기 위해 놓는 불이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정월대보름에 달집태우기를 시작하면 뒤이어 논둑과 밭둑에도 쥐불을 붙이는데요. 한 겨울 동안 마른 풀에 숨어 있는 많은 해충과 그 알을 태워 없애주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 태운 잡초의 재는 논밭의 거름이 되고 풀들이 잘 돋아나 논두렁을 보호해주기도 하죠.


쥐불놀이 역시 불기운을 통해 인간이나 식물을 깨끗이 정화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큽니다. 무엇보다 별다른 놀이가 없던 아이들에게 1년에 한 번 허용된 신나는 불장난이었죠.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쥐불이 해충뿐만 아니라 거미와 같은 익충도 없애기 때문에 병해충 방지에 큰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산불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쥐불놀이 - 위키미디어 제공
쥐불놀이 - 위키미디어 제공

혈기왕성한 남자들의 싸움 횃불싸움놀이


정월대보름의 불놀이 중에 ‘횃불싸움놀이’는 조금 생소하게 들리는 분들도 많을텐데요.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대보름달 아래서 횃불을 든 남자들이 거칠게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풍습이 전해집니다.


정월대보름날에는 한낮부터 마을의 청년들이 싸리나무, 대나무, 볏짚 등으로 홰를 만듭니다. 날이 어둑해지며 농악대가 요란스럽게 농악을 울리고, 보름달 아래 뒷동산에 두 마을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모입니다.


먼저 욕설이 섞인 말싸움부터 거는데요. 한 편이 ‘술렁수~’라고 외치면 다른 편에서는 ‘꼴래꼴래~’ 하는 식입니다.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면 상대의 횃불을 빼앗기 시작합니다. 손에 든 횃불로 서로 때리며 넘어뜨리는 아수라장이 빚어지죠. 더 많은 횃불을 빼앗아 이긴 마을은 그 해 풍년이 들고, 진 마을은 흉년이 든다고 믿었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 싸움구경이라고 하죠. 싸움이 벌어지면 이곳저곳에서 횃불이 번쩍거리며 실로 장관을 이룹니다. 놀이가 심해서 부상자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거친 놀이를 즐겼던 이유는 ‘불’이란 것이 어두운 세력을 물리치고 밝은 것을 가져다주는 신성함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인명사고로 금지된 불축제, 화왕산 억새태우기 


정월대보름에는 산 전체를 불태우는 엄청난 규모의 불 축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2009년까지 열렸던 경남 창년의 화왕산 억새태우기 축제인데요.

화왕산억새태우기 - 동아일보DB 제공
화왕산억새태우기 - 동아일보DB 제공

‘큰 불의 뫼’라 불리는 화왕산에는 대보름 즈음에 불기운이 들면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전설이 이어져왔습니다. 이러한 전설이 축제로 만들어져 정월대보름날 화왕산 해발 757m 정상의 억새들을 한꺼번에 태우는 억새태우기가 진행된 것이죠.


보름달이 두둥실 뜨면 달집을 먼저 태우고, 산등성이에서부터 불을 붙입니다. 산성 주변에서 불잡이들이 동시에 불을 놓으면 5만 6000평에 달하는 화왕산 정상의 억새들이 순식간에 불타올랐죠.

 

축제를 찾은 많은 사람들은 활활 타는 불길에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고 무탈한 새해를 소망하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2009년 2월 9일, 화왕산의 억새태우기 축제가 화재로 돌변해 6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불어온 돌풍과 가뭄으로 거세진 불, 주최 측의 부실한 안전 관리가 원인이었죠.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불놀이가 인명사고로 번지며 1995년부터 계속되던 억새태우기 축제는 6회만에 폐지됐습니다. 

 


 

※필자소개
이종림. IT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최신 IT기기, 게임, 사진, 음악, 고양이 등에 관심이 많다. 세간의 이슈들과 과학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글쓰고 있다.

 

※참고문헌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C200605N008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903N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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