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파에서 감자까지]중력파 발견 기념, 주말은 SF 영화로

2016.02.13 08:36

2016년 2월 11일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이 될 거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01년 전에 예측했던 ‘중력파’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날이기 때문이다. 대체 중력파가 뭐길래 이리도 난리들이냐, 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해 진다.

 

● 노벨 물리학상이 상품으로 걸린 ‘중력파 직접 검출’

 

중력파는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속력이 바뀌거나, 방향이 바뀌는 모든 운동)을 할 때 생기는 시공간의 일렁임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면서 시간과 공간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력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물론 이 중력파는 당시 기술력으로는 관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 스스로가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며 엎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파가 있다는 증거는 계속 나왔다. 중력‘파’인 만큼 이 파동도 에너지를 갖고 있다. 즉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일 때 중력파가 발생한다면 물체는 에너지를 잃고 변화가 생긴다(중력파가 에너지를 갖고 멀리 가버리니까!).

 

1974년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조지프 테일러와 러셀 헐스는 마주보고 돌고 있던 중성자별 두 개가 서서히 에너지를 잃으면서 공전궤도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직접 관측은 불가능했지만 이 두 별이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이유를 중력파 말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LIGO 제공
LIGO 제공

중력파에 대해 과학자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는, 이 둘의 연구결과가 어떤 상을 받아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연구로 1993년 테일러와 헐스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간접증거’를 찾았다는 사실로 말이다. 이쯤되면 과학자들이 ‘중력파를 직접 관측하면 당연히 노벨상을 받을 거다!’라고 말하는지 알성 싶다.

 

아인슈타인의 시대에 중력파를 관측할 수 없었던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101년이나 지난 2015년에서야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논문은 2016년에 나왔지만 신호는 2015년에 잡혔다). 미국에 설치된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에서다. 길이가 4km나 되는 이 관측장치는 단순히 장치라고 부르기엔 너무 크다. 심지어 워싱턴 주와 루이지애나 주, 양쪽 두 곳에 있다.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해 중력파가 지나가는 공간의 길이 변화를 측정하는 장치…라고 하는데 정확한 원리는 과학자들에게 맡겨두자. 요는 중력파가 지나가면 시공간이 흔들리기 때문에 길이가 좀 변한다는 거다. 하지만 작은 장치로는 길이가 변하는 것이 중력파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 때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크게 만든 것이다.

 

중력파에 대해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면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킵 손(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 교수)’이다. 라이고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함께한 산 증인이다. 이 노(老)과학자의 이름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왜 기억하는지는 잘 모른 채 ‘그 사람, 영화 감독 아냐?’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끈 SF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역(배우는 아니다!)이니까.

 

● 킵 손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역작, 블랙홀 ‘가르강튀아’

 

‘인터스텔라’는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영화다. ‘다크나이트’시리즈와 ‘인셉션’으로 많은 팬을 거느린 크리스토퍼 놀란의 야심작이었기 때문이다. 놀란 감독은 영화 속 배경이나 세트에 컴퓨터 그래픽을 최대한 안 쓰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영화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놀란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 소개는 단골 메뉴다. 온갖 기묘한 세트를 이용해 촬영을 하기 때문이다. 전작인 ‘인셉션’에서도 움직이는 공간이나 모순(paradox) 공간을 희안한 세트장을 이용해 촬영했다. 그리고 최신작인 인터스텔라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양자 공간’도 컴퓨터 그래픽을 최대한 줄인 채 촬영했다.

 

그런데 그래픽이 아닌 현장 촬영을 고집하는 놀란 감독도 그래픽을 쓸 때는 화끈하게 쓴다. 그냥 쓰는 정도가 아니다. 과학자와 그래픽 디자이너, 기술자를 말 그대로 ‘갈아넣었다’. 중간에 등장하는 블랙홀, ‘가르강튀아’로 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가르강튀아가 등장하는 장면이 ‘인터스텔라’의 백미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그래픽은 단순히 예쁘게만 만든 그래픽이 아니었다. 천체물리학의 대가 손 교수의 역작이다.

  

워너브러더스 제공
워너브러더스 제공

 

가르강튀아에 손 교수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인터스텔라 개봉 후 그의 행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인터스텔라’ 촬영 후 손 교수는 블랙홀 가르강튀아를 그래픽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알아낸 새로운 사실이 있다며 곧 논문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논문은 실제로 2015년 ‘Visualizing Interstellar's Wormhole(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시각화 과정)’이라는 제목으로 미국물리학저널(American Journal of Physics)에 발표했다.

 

손 교수과 놀란은 수식으로 표현된 블랙홀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했다. 거대하고 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과 그 주변을 둘러싼 빛 무리는 (만약 과학과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실제 블랙홀 가까이 가면 보이는 모습 그 자체다. 물론 우리가 살아있는 한 가까이 가서 볼 일 없으니 ‘인터스텔라’에서 실컷 감상해보자.

 

● 우주 쓰레기는 산드라 블록에게 무슨 짓을 했나

 

‘인터스텔라(2014)’가 개봉할 때 사람들이 머릿 속에 동시에 떠올린 영화가 있다. 딱 1년 전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2013)’다. ‘인터스텔라’보다는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운 미래를 그리는 영화며, 거기에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있는 우주인들의 안녕을 다시 한번 기원하게 해준다.

 

시작부터 화려하다. ‘인터스텔라’가 과학자의 느낌을 팍팍 준다면 ‘그래비티’는 우주를 배경으로 예술 영화가 펼쳐진다. 우주 쓰레기 폭풍(?)에 휘말려 우주왕복선을 잃게 되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하나의 씬으로 길게 이어진다. 전문용어(?)로 롱테이크 기법이라고 하는데 무려 20분이나 이어진다. 그리고 남은 70분 동안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주인공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이어진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돌아갈 로켓을 찾는 과정이 지루하다는 평도 있지만 마지막 장면 하나가 이 영화가 왜 ‘그래비티’인지 보여준다. 지구로 귀환한 주인공이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온몸에 가해지는 무거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물가에 엎어진다. 언제나 중력을 느끼고 있을 우리는 결코 느끼지 못할, 그러나 중력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다.

 

● 예부터 감자는 구황 식물이었는데…

 

의식의 흐름을 따르기로 한 김에. 우주 조난이라고 하면 바로 지난 해 개봉한 영화 ‘마션(2015)’을 빼놓을 수 없다. 이젠 지구 근처가 아니라 아예 다른 행성인 화성으로 보냈다. 그만큼 허구가 많이 더해졌고,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의 감상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공돌이다, 공돌이가 나타났다!’라고.

 

‘마션’은 화성을 뜻하는 영단어인 마스(Mars)에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접미어 ‘tian’을 붙인 단어다. 즉, 화성에 사는 사람이란 뜻인데, 화성에 고립된 멧 데이먼(마크 와트니 역)이 무려 화성에서 1년이나 버티기 때문에 그에게 붙인, 존경이 닮긴 별칭이리라.

 

1년이나 지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바가 크다. 화성의 4계절을 모두 겪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비록 멧 데이먼이 원하지 않더라고, 심리적인 문제만 없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말 그대로 ‘화성인’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마션’에 대한 다른 감상과 과학적 지식, 오류 등은 충분히 많을 테니 감자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감자. 왜 하필 감자였을까. 추수감사절 용 감자라는데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음식은 당연히 칠면조가 아닌가! 화성까지 날아가는 오랜 기간 동안 생고기는 오래 버티지 못해서 였을까(참고로 2012년 화성에 도착한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는 화성까지 최단거리로 253일 동안 날아갔다).

 

감자에 주목한 이유는 감자는 예부터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중요한 구황 작물이었다. 재배가 빠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탄수화물은 물론 비타민C와 같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 성분이 대부분 들어있어 ‘감자만 먹어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물론 질리는 건 별도의 문제다). 그런 감자가, 때마침, 식물학자의 손에 떨어졌다!

 

당연히(?) 멧 데이먼은 감자 재배에 성공하고, 이 감자와 남은 우주 식량으로 끼니를 연명해 무사히 동료들과 만나 지구로 귀환한다. 농사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당연히 운동이 되고, 녹색 식물인 감자는 광합성을 하면서 (물론 공기정화장치가 있지만) 신선한 산소도 공급해준다(하이드라진의 연소 속도를 늦추기 위해 공기정화장치를 고장낸 것이 감자를 재배하는데 영향을 준지는 잘 모르겠다).

 

거기에 외로운 사람이 식물을 재배하면서 마음에 위안 받는 심리테라피 효과도 있었다(감자에게 말도 걸고!). 결국, 예부터 배고픔에서 사람을 구해주던 구황식물 감자는 우주 미아도 구해주는 슈퍼 구황작물이었던 셈이다.

 

중력파 관측 성공 ‘뽕’을 맞아 중력파로 시작해 의식의 흐름을 따라 구황작물인 감자 이야기까지 왔다. 이번 주말에는 세기의 관측을 해낸 과학자를 생각하며 근 3년 동안 개봉한 SF 대작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이상 개봉 연도 순)을 느긋하게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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