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유해성 사전 알았을수도

2016.02.11 09:24


[동아일보] 원료납품社, 유해물질로 분류한 뒤… 해당자료 제조-판매社로 넘긴 정황
설명서에 ‘흡입하지 말라’ 경고도… 수사팀, 업무상과실치사 적용 검토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손상으로 임산부와 영유아 143명이 잇따라 숨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팀이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이 살균제 원료로 사용된 화학물질(PHMG)의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은 살균제 원료를 제조한 SK케미칼이 작성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화학물질 취급설명서)에 유해성을 경고하고 유해물질로 분류한 사실을 확인했다. 물질안전보건자료에는 “이 제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흡입하지 말라”는 경고가 들어 있었다. SK케미칼은 PHMG를 구성 원료로 한 물질(SKYBIO 1125)을 업체에 판매했다.

검찰은 이 자료가 ‘SK케미칼→약품 유통업체→가습기 살균제 제조납품업체→판매업체’로 전달된 정황도 파악했다. 이 정황은 검찰 수사에 앞서 진행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에도 일부 포함됐다. 검찰은 최근 공정위에서 관련 자료를 추가로 넘겨받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옥시레킷벤키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상당수에 대해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알고도 판매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다. 수사팀은 위험물질인 PHMG가 아무런 제한 없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된 만큼 관련 부처의 직무상 위법성 유무도 확인하기로 했다.

특히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 겉면에는 “살균 99.9%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쓸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까지 담겼다. 검찰은 허위로 안전성을 강조한 문구를 담은 업체에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저울질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들은 “법률상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보관할 의무가 없어 관련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웠고 PHMG가 유해물질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거나 “극히 낮은 농도에서의 흡입독성은 문제되지 않고 쥐를 이용한 실험 결과를 사람과 연결하기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쥐를 이용해 실험을 한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를 법정에서 증거로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률적 검토도 병행하고 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본격 수사에 나서게 된 것은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철저 수사 지시에 따른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4층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 현판까지 내걸렸다. 부장검사를 포함해 형사2부 소속 검사 6명이 특별수사팀에 모두 배치돼 설 연휴도 반납하고 수사에 매진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이번 수사가 모기향이나 방향제, 탈취제 등 일상생활에 쓰이는 화학물질의 안전성과 유해성에 대한 제조업체의 주의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관석 jks@donga.com·김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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