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는 시 1]“날씨의 절세가인입니다”

2016.02.06 18:00

하늘꽃 
                                       황인숙


날씨의 절세가인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이 텅 비는 것 같습니다
앞서 떨어지는 눈송이들에 걸려
뒷눈송이들이 둥둥 떠 있는
하늘까지 까마득한 대열입니다
저 너머 깊은 天空에서
어리어리한 별들이 빨려들어
함께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빨려들어
어디론가 쏟아져버릴 것 같습니다
모든 상념이 빠져나간 하양입니다
모든 소리를 삼키고
하얗게 쏟아지는 눈 오는 소리
나를 호리는 발성입니다

 

몇 걸음마다 멈춰 서
묵직해진 우산을 뒤집어 털어
길 위에 눈을 돌려줬습니다
계단골이 안 보이도록 쌓인 눈
아무 데나 딛고 올라가려니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옵니다
내 방에 들어서 문을 닫으니
호주머니 속에 눈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제공

<마음을 치는 시>의 첫 문을 엽니다. 그 첫 시는 음력 새해 벽두이니 좀 밝고 경쾌한 시로 골라보았습니다. 丙申年엔 세상의 모든 마음 착한 분들에게 이 시의 함박눈 같은 기쁜 일이 펑펑 내려 그분들이 함박 웃으시길 바랍니다.

 

황인숙 시인 특유의 ‘발랄함’이 가득한 시입니다. 입말로 읽어보면 더 맛깔납니다. 제목이 ‘하늘꽃’입니다. 아득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새하얀 벚꽃 같은 눈들의 소요(騷擾)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지요. 즉 함박눈입니다. 시 속의 현장에서 그 솜뭉치 같은 눈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졌기에 시인은 “앞서 떨어지는 눈송이들에 걸려 / 뒷눈송이들이 둥둥 떠 있는 / 하늘까지 까마득한 대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폭설 속에서, 수직으로 고개를 들어 지상으로 떼 지어 몰려오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시인은 한껏 고무돼 첫 행에서부터 “날씨의 절세가인”이라며 감탄합니다. 세상에서 견줄 데 없을 만큼 가장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 같은 날씨라는 말이지요. 그 절세가인에게 홀린 천공(天空) 너머의 뭇별들 중 일부는 “까마득한 대열”의 군중심리에 이끌려 “함께 쏟아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시인도 이미 그 눈[雪, 目]으로 인해 마음을 빼앗겨 “모든 상념이 빠져나간 하양”의 상태로 텅 비어 시인을 “호리는” (즉, 매력으로 유혹하여 정신을 흩트리는) “눈 오는 소리”만 환청(幻聽)처럼 듣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내려 우산을 받치고 길을 가던 시인은 “몇 걸음마다 멈춰 서”(천천히 걸었겠지요) 너저분한 세상의 온갖 더러움과 슬픔을 하얗게 덮는 ‘하늘꽃’을 지상에 보태줍니다. 그런 느린 보행으로 집에 다다른 시인은 달동네로 오르는 계단이거나, 옥탑 방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서, “계단골”(계단의 층층)이 안 보일 정도로 눈 쌓인 계단을 디디면서, 마치 별스러움도 없는 말끝마다 자꾸 바스스 웃는 시골 아낙네처럼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옵니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서 문을 닫”은 시인은 “날씨의 절세가인”의 바깥 공간과 단절됩니다. 그 공간(“내 방”)은 이제 오롯이 시인 자신만 존재하는 쓸쓸한 공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온종일 밖에서 뛰어놀다 귀가한 천진한 아이처럼 발랄함을 잃지 않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 절정입니다. “호주머니 속에 눈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행이 없었다면 이 시는 그다지 재미없었을 겁니다. 지상을 향해 내린, 하필 시인의 호주머니에 담긴 눈은 곧 물이 되어 하양이 사라지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곧 텅 빌 가득함’을 응시합니다. 다시 그러기에, “호주머니 속에 눈”은 바로 한 움큼의 단단한 ‘시’(詩)가 되는 것입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과학은 유용합니다. 문학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쓸모없기에 문학은 삶을 억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문학은 자유롭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있음’을 꿈꿉니다. 그것이 하등 쓸데없는 문학의 의미이고, 문학의 꽃인 시의 본질입니다. 우연히 얼핏 들은 어떤 노래가 온종일 귓가에 남듯이, 어느 날은 우연히 읽게 된 시 한 편이 우리의 허한 마음을 칩니다. 그 무용한 힘에 간혹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작동합니다. 그런 아이러니한 의미의 생명을 믿어, 시인이 소개하는 시 한 편과 그 시 속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당분간 매주 연재합니다. 마음 놓고 독자인 당신의 마음의 행로를 뒤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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