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이 좋아하는 세입자로 산다는 것

2016.01.30 18:00

3년여 전이었다. 일산 변두리의 아파트 집을 팔았다. 집 동네에 작은 맥줏집을 차리는 데 필요한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시세보다 약간 비싼 가격으로 매물을 내놓았다. 발코니 공간을 확장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 집은 깨끗했다.


건축 후 6년의 세월이 흐른 흔적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내의 깔끔한 손이 지나다닌 집 안 어디든 진때나 곰팡이 하나 핀 곳이 없었다. 생활용품들도 수납이 잘 되어 실제 평수보다 좀 더 넓어 보였다. 하지만 정남향도, 로열층도 아닌 점이 매물 가치로서는 단점이었다.


집을 보러 온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중 여러 사람들이 갈등한다는 말을 부동산 중개인에게 들었지만 그런 말이 내왕하면서 한두 계절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집이 팔렸다. 매수인은 집이 깨끗한 게 마음에 들었단다.


곧바로 우리 가족은 같은 단지 옆 동으로 이사했다. 비교적 값싼 가격의 전세였다. 우리처럼 집주인이 6년을 거주하다가 이사하게 되어 내놓는 집이었다. 로열층이었고, 정남향이었고, 구조 확장도 해놓은 집이었다. 그런데 집 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다. 집주인은 전세 만기에 맞춰 집을 팔 예정이라고 했다. 당시에도 전세난 때문에 세 들 집도 많지 않았지만, 전세금이 낮아 계약했다.

 

 

임대인이 좋아하는 세입자로 산다는 것 -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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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만 거주할 집을 아내는 습관대로 매일 닦았다. 만기 3개월 전, 집주인은 예고한 대로 집을 매물로 내놨다. 방문한 부동산 중개인은 예전의 우리 집처럼 말끔해진 집 안을 보고 놀라는 기색이었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여러 번 방문했고 어렵지 않게 어느 날 집이 팔렸다.


우리는 또 다른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전세난은 가중됐지만, (같은 중개인의 소개로) 다행히 쉽게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 아이들이 진학한 학교 근처의 아파트였다. 우리는 시세보다 무척 낮은 액수로 계약했다. 값싼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은 담보 대출금에 비례한 금액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입자가 집을 무척 깨끗하게 사용한다는 이유의 우대 조건이었다.


그동안 오른 시세로 같은 평수로 이사하려면 4천만 원은 더 마련해야 했던 나는 계약을 마친 그날 밤 뜻밖의 횡재에 기뻐 망해가는 맥줏집 문을 조금 일찍 닫고 귀가해 막 잠들려는 아내를 일으켜 앉혔다. 가게에서 포장용 페트병에 담아 온 생맥주를 마시며 아내는 나를 따라 여러 번 웃어주었다.


나의 외갓집 동네에도 폐가가 있었고, 아내의 고향 집 옆에도 있다. 사람이 떠난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허가 돼 버린다. 여름이면 잡풀이 우거지고 가을이 깊어지면 거의 자연으로 돌아간다. 공동주택인 아파트라도 명절 연휴 때 며칠만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침잠한 공기가 가득 차 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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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집에 다시 사람이 찾아와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해 널면 노란 햇볕에서 말라가는 빨래들처럼 집은 환하게 생기를 되찾는다. 그렇게 마른 빨래들은 개킬 때 보송보송한 손맛을 주듯이, 집도 자주 청소하고 수리할 때 비로소 상쾌한 주거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간 세상이 침울하고 화나고 슬픈 일들로 가득한데, 옷이나마 자주 빨아 입고 집이나마 깨끗이 청소하며 지내지 않으면 그 어떤 삽상함으로 인생을 살겠는가.

 

 

※ 저자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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