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씻겨진 칼에서도 DNA가 검출된다

2016.02.03 17:00

전북청 과학수사대는 피 묻은 칼을 며칠간 저수지에 담가놓은 뒤 꺼내서 유전자를 분석하는 실험도 했다. 여기서 꽤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물에 넣은 지 열흘 지난 칼에서 개인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동안 물속에서 꺼낸 증거물엔 유전자가 남아있지 않다는 게 일선 경찰들의 통념이었다. 아예 유전자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실험을 주도했던 이창선 경사 역시 결과가 잘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는 물에 녹잖아요. 당연히 모두 사라질 거라 생각했죠.”

 

피 한 방울에 들어있는 DNA, 수중 유전자


결과가 좋게 나온 건 미토콘드리아DNA(mtDNA) 분석법을 사용한 덕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소기관인데, 세포핵의 DNA와 별도로 자신의 DNA를 가지고 있다. mtDNA는 핵DNA에 비해 개수가 많다. 세포 하나 당 2개(한 쌍)에 불과한 핵DNA와 달리, 세포 하나 당 200~1700개나 있다. 그래서 세포가 산산이 분해되는 와중에도 비교적 오랫동안 멀쩡한 mtDNA가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핵DNA 분석법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일반적인 현장에선 잘 쓰지 않는다. 보통은 시체에서 부패가 많이 진행돼 핵DNA를 검출하기 어려울 때 mtDNA를 사용한다. 쉽게 말해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를 mtDNA로 분석했다. 수중 증거물에서도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유전자가 묻어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그동안 아무도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전북청 과학수사대는 이번 실험으로 mtDNA의 활용
목록에 ‘수중과학수사’를 올려놓은 셈이다.


이 경사는 “수중 증거물에서 유전자를 채취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수중과학수사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물 한 방울에도 DNA가 씻겨나갈 수 있으니 증거물 인양과정에서 세포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 경사는 앞으로 타액이나 정액도 수중 증거물에서 실험을 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북청 과학수사대에서 실시한 수중 지문실험 사진. 지문을 묻힌 칼 40개를 저수지에 담가놓고 매일 2개씩 꺼내 분석했다. - 전북청 과학수사대 제공
전북청 과학수사대에서 실시한 수중 지문실험 사진. 지문을 묻힌 칼 40개를 저수지에 담가놓고 매일 2개씩 꺼내 분석했다. - 전북청 과학수사대 제공


물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름기, 수중 지문

 

우리나라 경찰의 지문인식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전 국민의 지문이 데이터베이스화 돼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헌데 육지와 달리 수중 증거물에서 지문을 찾는 기술은 아직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지문이 물에 들어가면 쉽사리 없어지는 탓이다.


지문은 대부분이 물로 이뤄진 자국이다. 여기에 땀샘에서 나온 아미노산, 단백질, 젖산 등 유기화합물과 나트륨, 칼륨 이온 등 무기화합물도 소량 섞여있다. 손가락에서 나온 유·무기화합물의 특성을 이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지문(잠재지문)도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플라스틱이나 금속, 유리, 비닐 표면에 묻은 지문을 검출할 때는 주로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쓴다. 접착제 성분의 이 물질은 잠재지문에 남은 수분이나 젖산염 이온과 만나 중합반응을 일으킨다. 그 결과 융선 모
양이 하얗게 드러난다.

 

나노 SPR 분석법을 사용해 칼날에서 지문을 검출한 모습. - 전북청 과학수사대 제공
나노 SPR 분석법을 사용해 칼날에서 지문을 검출한 모습. - 전북청 과학수사대 제공

 


수중 증거물에서 지문을 채취할 때는 방법을 잘 고민해야 한다. 특히 지문 중 ‘물에 녹지 않는 성분’을 노려야 한다. 스페인 발렌시아대 법의학과 페르난도 베르두 교수팀은 물에 잠겨있던 물체에서 지문을 검출할 때 지질성분에 달라붙는 ‘소립자 시약(SPR)’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2013년 학술지 ‘과학과 정의’에 발표했다.


소립자 시약은 이황화몰리브덴이나 이산화티타늄 같은 미립자를 계면활성제와 섞은 시약이다(계면활성제는 친수성기와 소수성기를 모두 가진 물질이다). 비누가 때에 달라붙듯 시약의 소수성기가 지문의 지질성분에 달라붙는다. 이때 소수성기의 반대편인 친수성기에 붙은 미립자를 통해 지문을 검출할 수 있다. 다른 시약들은 물에 잠긴 지 5~7일이 지난 지문부터 검출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SPR은 15일이 지난 지문도 선명히 검출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지질을 염색하는 화합물인 ‘오일-레드-오’와 ‘수단 블랙’도 적합하다고 밝혔다.

 

일반 과학수사에서 많이 쓰는 자성형광분말법으로 지문을 채취하는 모습. - 전북청 과학수사대 제공
일반 과학수사에서 많이 쓰는 자성형광분말법으로 지문을 채취하는 모습. - 전북청 과학수사대 제공

 


유속과 수질에 따라 지문이 사라지는 속도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1년 9월 미국 조지메이슨대 브론윈 데브린 연구원은 유속이 빠른 곳에 놓은 증거물일수록 지문이 빨리 사라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연구결과지만, 그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에 착수해 수치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북청 과학수사대는 수질에 따라서 지문검출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저수지 수심 3m 지점에 담가놓은 칼에서는 7일 이후부터 미생물 오염으로 지문이 선명하게 검출되지 않은 반면 증류수는 14일까지 문제없이 잘 보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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