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보는 세상]⑨사이코패스, 뇌과학 연구로 다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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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용어가 이슈가 됐던 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무차별 살인행각을 벌였던 ‘유영철 사건’ 이후다. 이 사건은 최근 ‘추격자’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유영철 사건’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한 돌연변이에 의한 사고라고 애써 현실을 도피하고, 그 공포를 잊어갈 무렵 우리는 강호순이라는 새로운 엽기적인 살인마를 만났다. 언론 매체를 통해 공개된 그의 얼굴은 우리가 늘 일상에서 만나는 얌전해 보이고 지극히 순박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애써 스크린 속에 가둬 놓았던 ‘괴물’이 우리들의 모습으로 진화해 내 주위로 출현한 것이다. 공포와 불안 속에 우리들의 뇌는 괴물에 대한 끊임없는 왜곡을 시작한다. 괴물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갔다. 이런 왜곡의 가장 큰 피해자가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거나 받아야 하는 환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에 정신과 의사로서 이런 소동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죄책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반복적인 폭력과 범죄 행위를 일삼기도 한다. 인구의 1%가 사이코패스 해당된다고 할 정도로 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또 사이코패스들은 다른 정신질환자에 비해 비교적 유사한 특성을 지니며, 이런 특성은 소아기 때부터 나타나 성인기에까지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사이코패스와 혼동하기 쉬운 정신과적 질환이 바로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와 ‘행동장애(Conduct disorder)’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행동장애에 비해 더 전반적인 감정적, 행동적 장애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분열병, 자폐증과도 다른 특성을 가진 질환으로 구분된다. 모든 정신질환이 그렇듯이 사이코패스 역시 뇌 기능의 장애로 나타난다. 환경적 요인과 더불어 유전적 요인도 관련된다고 알려져 있다. 2005년 영국에서 3600쌍의 쌍둥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사이코패스의 성향에 유전이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됐다. 사이코패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 기능의 저하나 장애가 상당히 중요하다. 뇌의 신경해부학적 위치로 보면 편도체(amygdale)와 복내측전전두엽(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를 포함한 전전두엽 장애가 가장 일관되게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특히 편도체의 기능이상이 가장 핵심적이다. 편도체는 공포와 즐거움 같은 감정과 관련이 있다. 편도체의 기능은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과 벌에 의한 학습을 통해 도덕적 틀이 형성되는 것이 바로 편도체의 기능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감정적인 자극에 대한 편도체의 반응이 떨어진다고 보고돼 있다. 특히 최근 뇌에서 도덕성, 윤리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전두-측두-변연회로계의 특정 부위(흑질)가 보통 사람보다 얇아져 있다는 것이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로 측정됐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자가진단 설문지가 인터넷에 떠돌면서 많은 이들이 혹시 나도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들 안에도 내재된 공격성이 있다. 행동으로 표출하진 못하지만 살면서 가끔씩은 그 분노를 억누르려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이는 공격성은 대부분 어떤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사이코패스는 공격성이 목적을 이루거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큰 차이다. 이런 경향은 외국 연쇄살인범에서도 흔하게 관찰된다. 많은 선진국들이 국가 차원의 범죄 예방 정책의 일환으로 뇌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뇌 연구도 이 같은 맥락으로 활발히 진행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지금까지 나타난 사이코패스에 대한 뜨거운 국민적 관심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뇌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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