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에 새겨진 ‘GPS’「아름다운 비행」IV

2007.08.13 11:39
철새들의 신비로운 능력 중 하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로 방향을 정확하게 잡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밤에 이동하는 철새들은 지상에 있는 목표물을 보지도 않고 난다. 또 바다를 건너 외딴 섬으로 이동하는 조류들은 중간에 방향을 알려줄 아무런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간다. 조류 학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는 분야는 철새가 방향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레이더나 눈으로 야생의 새를 관찰하거나 포획한 새를 통제된 환경 속에 풀어놓고 실험한다. 1960년대, 조류학자인 스티븐 엠렌과 존 엠렌 부자는 흡묵지를 이용해 깔때기를 뒤집은 형태를 만들고 천장에 그물을 붙여 새들이 도망갈 순 없지만 밤하늘은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실험으로 엠렌 부자는 유리무당새가 밤하늘의 별자리로 방향을 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자들은 철새들이 번식지와 월동지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은 체내에 나침반과 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지도는 현재 있는 장소와 앞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알려주며, 나침반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 수 있다. 실제 철새의 이동경로를 조사한 결과,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일직선으로 그은 선과 실제 경로의 방위는 15~30도가 다르며 주행거리도 최단 코스보다는 5% 이상 길었다. 가장 ‘빠른’ 길보다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는 얘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을 모르는 어린 새도 목적지를 척척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튀빙겐대학의 클라우스 슈미트 코에닝 박사는 ‘벡터항법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새는 예정된 시간과 비행 방향을 타고 난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동하는 새들도 유전자에 새겨진 정해진 이동 시간과 정해진 이동 방향을 따른다는 설명이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르면 낙오되지 않는 한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 중요한 점은 이들 방향 정보는 이동길이 같은 모든 개체에게 새겨져 있다는 것. 이는 길 정보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새가 첫 이동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기본 지도를 갖게 된다. 가본 적이 있는 곳과 현재의 위치를 분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지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지도는 한 번 가봤던 코스나 장소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철새의 이동은 3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서는 정해진 시간 동안 목적지를 향해 벡터항법이나 시간과 거리 프로그램에 따라 이동한다. 목적지에서 수백km 내에 도착하면 자기장과 냄새를 기준으로 한 체내 지도에 따라 목적지 근처까지 날라 가는 2단계가 이어진다. 마지막 3단계는 지형의 특징을 탐지해 번식지나 월동지가 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철새가 이동을 한 번 완수하고 나서 여행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알아야만 작동하기 시작한다. 경험을 바탕으로 이동을 능숙하게 해내는 원리다. 여건 따라 지표 바꾸며 이동 철새의 나침반이 지구 자기장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 생체시계가 오전과 오후에 달라지는 태양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의 종류에 따라서 길잡이의 요소와 중요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별빛에 주로 의지하여 길을 찾는 휘파람새는 구름이 잔뜩 낀 밤에는 헤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철새의 방향 지료를 하나로 국한하지 않는다. 자기장 외에도 냄새, 태양, 일몰, 별 등 여러 가지 지표가 등장했다. 이러한 지표를 읽기 위해 철새는 몸의 각 기관을 수신기로 사용한다. 눈은 태양이나 별의 위치, 편광면을 본다. 콧속의 화학물질을 느끼는 수용기나 그것과 연결된 신경은 냄새 지표를 탐지한다. 머리나 목, 또는 양쪽 모두에는 자기장을 느끼는 부위가 있다고 알려졌다. 일부 학자는 전서구의 두개골에서 발견된 자철광에 이동의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 새들이 소리로 방향을 분간하며 수백km 밖에서 들려오는 지극히 낮은 주파수의 소리, 바다의 파도소리 등을 감지한다는 주장도 있다. 철새가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자료가 서로 상반되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가설이 세워져도 다른 증거가 이를 뒤집는다. 철새의 이동은 앞으로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야할 중요한 주제이다. 1970년대 말 뉴욕주립대의 켄 에이블 박사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다양한 지표를 사용하는 종들은 그것을 순차적으로 선택하여 이용한다”고 밝혔다. 별, 태양, 자기성, 바람, 냄새의 지표를 읽어낼 수 있는 새는 여건과 필요에 따라 지표를 바꿔서 이용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흐린 날에는 별이 안 보이고 자기 폭풍이 일거나 자기 이상이 생기면 자기장은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야행성 철새들에게 야간 비행 직전에 자기장을 걸어 줬더니 대부분 길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다음날 밤에는 다시 바른 길을 찾아냈다. 이는 해가 지는 방향을 보고서 자신의 나침반을 보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철새들이 지표를 유연하게 이용한다는 사실은 철새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그대 상황에 맞춰 행동을 변화해 가며 적절한 시기에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으로 이동을 완수한다고 볼 수 있다. 지형지물 이용하는 비둘기 철새는 아니지만 귀소성이 강한 비둘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역시 철새가 ‘똑똑하게’ 이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팀 길퍼드 박사는 위성위치측정시스템(GPS)을 이용하여 비둘기들이 어떻게 집을 찾을 수 있는가를 추적했다. 연구팀은 비둘기들이 집에서 10km 이내를 오갈 때 태양의 위치나 지구 자기장을 파악해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도로, 강, 철도 등의 지형지물을 따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직선 경로가 아닌 경우에도 습관적으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말해 비둘기는 자신들이 기억해 둔 선모양의 경로에 의존하여 집을 찾는다는 것. 똑똑한 철새도 기상 변화 앞에선 대책이 없다. 강풍 때문에 해상 멀리까지 날려가 육지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짙은 안개 속에서 헤매다 불이 켜져 있는 등대나 고층건물과 충돌하기 일쑤다. 1904년 미네소타주 남서부와 아이오와주 북서부에 큰 눈보라가 닥쳤을 때는 이동 중이던 긴발톱할미새 75만 마리가 두 호수의 얼음판과 도시 일원에 떨어져 죽었다. 학자들은 계절적으로 생기는 태풍의 피해는 이보다 더욱 클 것으로 추측한다. 철새가 비행기처럼 두 점의 최단 코스를 이용하지는 않는 것도 기상 변화 때문이다. 철새들은 강풍이 부는 곳에서는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진로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나는 방향을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바꿔주는 것. 이동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순풍이나 혹은 역풍을 고려해 직선 코스를 정한다는 얘기다. 계속. 참고문헌 : 「GPS만큼이나 정확한 철새의 비행」, 최성우, www.scicencetimes.co.kr, 2004.12.17. 「비둘기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오나」, 내셔널지오그래픽,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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