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伊 베네치아섬 복원

2003.05.26 09:45
1966년 대홍수는 베네치아에는 차라리 축복이었다. 아드리아해의 거친 파도에 잠긴 베네치아를 보면서 세계는 베네치아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 1500여년간 화석화된 채 세월에 풍화되고 바닷물에 씻겨 내리던 베네치아의 찬연한 문화예술 유적이 그때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문화유적과 예술품 및 베네치아 섬 자체를 복원, 보존하려는 노력을 2회로 나눠 소개한다. 베네치아에 있는 미술관인 아카데미아 갤러리에는 젠틸레 벨리니가 15세기 말에 그린 ‘성 십자가의 전설’이라는 대형 유화가 연작으로 8장 걸려 있다. 그림 속에서 성 십자가를 앞세운 행렬이 성마르코 성당을 출발해 리알토 다리를 건넌다. 십자가가 지나가자 죽어가던 아이가 살아난다. 관람객들은 놀란다. 기적 때문이 아니다. 갤러리 밖의 베네치아가 그대로 그림에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그런 곳이다. 900년 된 산마르코 광장을 돌다가 카사노바나 비발디를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베네치아는 세계에서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물의 도시’다. 567년경 훈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란민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바다도 육지도 아닌,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潟湖·바다 일부분이 떨어져 나와 생긴 호수)에 도시를 건설했다. 이후 무역에 성공하면서 베네치아는 118개의 조그만 섬에 400개의 다리를 연결, 공화국으로 커졌다. 해상무역으로 지중해를 제패한 14∼15세기가 전성기였다. 그때 이미 바늘 하나 더 꽂을 자리가 없을 만큼 도시의 성장이 완성됐다. 그러나 1797년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하면서 공화국의 지위를 상실한 베네치아는 활력을 잃고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잇는 시대의 찬연한 문화 예술 화석으로 굳어져 왔다. 동시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2월19일 베네치아에서 만난 코릴라(CORILA) 연구소의 제인 다 모스토 연구원은 “베네치아의 지반이 갈수록 침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다종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은 스펀지 위에 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은 소금기가 있는 늪지에 나무 말뚝을 1m 간격과 3∼4.5m의 깊이로 촘촘히 박은 뒤 나무판자를 얹고 다시 대리석을 깐 위에 벽돌로 건물을 세웠다. 건물의 무게에 짓눌려 물이 빠져나가면서 지반이 내려앉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물의 공격. 처음 이 도시를 건설한 567년보다 해수면은 1.8m나 상승했다. 바닷물은 벽돌로 스며들었고 물기가 마른 뒤 응결된 소금은 벽돌의 구멍을 헤집었고 벽에 균열을 일으켰다.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베네치아는 그렇게 안에서 바스러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 베네치아를 구원한 ‘십자가’는 1966년 11월4일의 대홍수였다. 넘친 바닷물은 저지대인 산마르코 광장을 덮친 뒤 도시 전체로 쏟아져 들어갔다. 수면이 평균 1.2m나 올라간 상태가 15시간 동안 계속되자 이탈리아 정부는 유네스코에 도움을 호소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복원 프로젝트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베네치아를 구하라’ ‘위험에 빠진 베네치아’ 등 세계 11개국에서 베네치아를 돕기 위한 50개의 민간단체가 앞다퉈 구성됐다. “사람들은 베네치아에 지고 있는 문화적 예술적 부채를 갚을 기회로 생각했던 것이다.” 민간단체들과 유네스코의 협력을 조정하는 위원회의 간사인 존 밀러칩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66년 이래 베네치아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은 한해 평균 300만달러로 3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지금까지 100개가 넘은 문화유적과 1000점이 넘는 예술품이 복원됐다. 여러 단체들이 참여한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 하나 복원하는 데 족히 10년이 걸렸고 400만달러 이상이 소요됐다.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 틴토레토가 그린 마돈다 델로르토도 되살아났으며 베네치아 최고 통치자인 도지(Doge)가 쓰던 궁의 정문과 주랑(柱廊)에 새겨진 고딕 문자들의 원래 모습도 복원됐다. 방치됐던 산니콜로 데이 멘디콜리 교회에는 다시 오르간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다. 복원에는 첨단 기술도 요구된다. 베네치아 프로젝트를 통해 벽돌을 방수처리하는 기법과 그림을 습기와 압력, 공해 그리고 온도 변화로부터 보호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민간단체들은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자신들의 간여가 마치 문화적 제국주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이탈리아유적감독위원회의 복원 요청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유적감독위원회의 홍보담당 로베르토 폰타나리는 “지금은 복원비용의 90%를 이탈리아 정부가 충당하고 있지만 그동안 국제적인 관심과 지원은 잠자고 있던 베네치아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자긍심을 일깨워줬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베네치아에서 확인된 문화유산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협력은 72년 파리에서 세계문화유산 협약이 체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리 파울레 루딜 유네스코 베네치아 지부장은 “베네치아 프로젝트는 유네스코 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동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문화유산 복원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베네치아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밀러칩씨는 “너무 오랜 세월 방치돼 왔기 때문에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며 “우리의 목표는 구체적인 유적도 중요하지만 베네치아의 얼과 결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치아=홍은택 동아일보 기자 ▼다 모스토 백작 "물막이用 기차 등 세계지원 답지"▼ 라니에리 다 모스토 백작(78)은 66년 대홍수가 났을 때 이탈리아 국영방송(RAI)의 베네치아 지국장이었다. 생생한 목격자이자 재난을 이탈리아 전역에 최초로 보도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유명한 탐험가 카 다 모스토(1432∼1488)의 후손. 다 모스토는 1455년 카나리아 제도와 서부아프리카를 탐험해 최초의 여행기를 남겼다. 700년 이상 내려온 귀족 집안 출신의 다 모스토 백작은 지금도 방이 100개가 넘는 궁전에 산다. 인터뷰를 한 응접실에도 천장화가 그려져 있어 전통과 기품의 향기를 풍겼다. ―66년 상황은…. “바닷물이 18세기에 건설한 20km 길이의 부두를 부수면서 밀어닥쳤다. 11월4일 오전 7시 경보가 울리자마자 사무실로 달려 나갔다. 이미 모든 거리는 침수됐다. 전화선도 끊어져 비상전화 1대로 로마에 전화를 걸어 12시간 동안 생방송했다. 전기가 나가 촛불을 켜고 생활했다.” ―세계 각국의 지원은…. “세계 각국의 지원이 답지했지만 그 중에서도 스위스에서 물막이용으로 객차 20∼30량에 바위를 가득 실어 보내 배로 나른 기억이 난다.” ―베네치아공화국은 이미 사라졌는데 백작(count)라는 칭호를 아직도 쓰는가. “베네치아공화국은 가장 민주적이고 효과적으로 조직된 국가였다. 왕과 같은 존재인 도지는 귀족들이 참여해 선출했다. 우리 가문은 베네치아공화국을 세운 3대 가문 중 하나다. 아직도 200개의 귀족 가문이 남아 있다.” ―정부에서 귀족을 인정하는가. “정부의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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