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멋에 푹 빠져 풀려나질 못해요”

2008.03.10 09:50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는 색다른 디자인의 건물이 속속 생겨난다. 하지만 방송통신대 뒤편엔 세월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이 있다. 2003년 11월에 생긴 쇳대박물관. 이 건물은 유명 건축가인 승효상 씨의 작품이다. 벌겋게 녹슨 강판이 외벽 전체를 덮어 쇠의 육중한 무게가 느껴진다.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전혀 딴 세상이다. 곳곳에 만든 채광장치 사이로 6층 건물에 따뜻한 햇살이 비친다. 최홍규(51) 관장은 “사람들은 쇠가 차갑고 단단하다고 생각하죠. 제게는 철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소장품 4000여 점 중 350여 점 전시 쇳대는 방언이다. 경기 전라 경상 충청 강원 등 많은 지역에서 열쇠를 쇳대라고 부른다. 쇳대박물관에는 열쇠도 있지만 주종은 자물쇠다. 최 관장은 “서양은 열쇠의 문화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은 자물쇠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4층에 자리 잡은 상설전시관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전통 자물쇠 35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열쇠 꾸러미의 일종인 열쇠 패는 쇳대박물관의 자랑이다. 조선시대 상류층이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다는 혼수용 열쇠 패는 당시 별전(別錢·주화의 본보기나 기념 화폐로 만든 엽전)을 화려한 금속공예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가치가 높다.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100여 개의 혼수용 열쇄 패 중 20여 개가 이곳에 있다. 철물장이의 젊음과 열정의 집대성 스스로를 ‘철물장이’라고 부르는 최 관장은 “쇳대박물관의 탄생은 콤플렉스 덕분”이라고 했다. 1970년대 중반 대학 진학에 실패한 그는 재수를 하면서 학원비라도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서울 중구 을지로의 철물점에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일생의 스승인 권오상(작고) 사장을 만났다. 그는 권 사장을 닮고 싶었다. 철물을 만들어 팔고 전시하고 수집하며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풀었다. 친구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는 철물을 찾아 황학동이나 인사동을 돌아다녔다. 자물쇠를 주로 수집한 이유는 크기가 작고 기능적인 데다 디자인이 다양해 공부가 됐기 때문. 하나 둘씩 30여 년간 모은 자물쇠가 4000여 점이나 된다. 전시하지 않은 3000여 점은 수장고에 보관한다. 최 관장은 “사명감을 갖고 박물관을 만들진 않았지만 시작하고 보니 우리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널리 알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돈 버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싶어 2003년 처음 박물관을 열었을 때 최 관장은 흑자를 목표로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최 관장은 “빵이 해결되지 않고는 문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립 박물관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1월 최가문화㈜를 설립했다. 직원 4명이 박물관의 해외 홍보와 해외 초청 전시회를 전담한다. 올해 9월부터 3개월간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민예관에서 쇳대박물관 초청전을 열고 내년에는 뉴욕 3개 대학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최 관장은 1989년 강남구 논현동에 ‘최가철물점’을 설립해 사업가로 성공했다. 철물점에 설립자의 성씨를 붙여 화제가 됐던 이 철물점은 국내 처음으로 철물에 디자인의 개념을 도입했다. 최 관장은 “작은 사고의 전환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며 “흑자를 보는 박물관을 만들어 다른 사립 박물관의 모범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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