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인류학자

2008.03.04 10:00
“극적으로 달라진 자아와 세계는 상담실이나 사무실에서 관찰한다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이런 자세로 하얀 가운을 벗고 병원을 등진 채 25년 동안 환자들의 실생활을 관찰했다. 한편으로는 희귀 생명체를 대하는 박물학자의 심정으로, 또 한편으로는 현장에 나선 인류학자 내지는 신경인류학자의 심정으로.”세상에 의사는 많다. 병원 일손은 부족해도 하여튼 의사는 있다. 그들은 병을 고친다. 사람을 치료한다. 하지만 환자 혹은 인간을 이해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의사를 포함한 과학자들은 그렇다. 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의 대상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이것은 세상이 과학자에게 가지는 오해일 수도 있다. 원인은 과학자에게도, 세상의 시각 자체에도 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먼저 과학자가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봤다. 인간을 외부에서 관찰하기보다 내부로 들어가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느냐고 묻기보다는 병한테 어떤 사람을 덮쳤느냐고 물어야 한다.”(윌리엄 오슬러 캐나다 의학교수) 저자는 학문의 벽을 넘어 그 오해를 깨기 위해 시도한다. 저자는 미국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 임상신경학 교수다. 과학자임에도 소설, 영화 시나리오 등 여러 분야에서 집필 활동을 했다. ‘의학계의 계관 시인’ ‘신경정신학 분야의 칼 세이건’이란 별명도 지녔다. 신경과학자지만 저자는 연구실에서 현미경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해답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인간 자체의 본성을 연구하는 한편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다각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봤다.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소개한 7명의 환자―저자로선 인류라고 보는 게 맞다―를 살펴보자. 자폐증과 기억상실증, 투렛증후군, 전색맹, 측두엽 간질 등. 흔히 환자와 가족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뇌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병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의 존재가치가 가득한 사람으로 접근한다. “병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생활에 한계가 생기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거의 모두가 어떤 문제를 만났건 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딛고, 심지어 자신이 처한 상황의 도움을 받아 삶을 향해 나아갔다.” 스스로를 ‘화성의 인류학자’라 부르는 한 여성을 보자. 유명한 동물학자인 그는 어려서 자폐증을 앓았다. 놀라운 기억력과 창의성으로 학문적 성과를 내놓지만 ‘사랑’이나 ‘배려’ 같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그에게 사람은 외계인이다. 외딴 행성에 혼자 떨어져 그들을 관찰하는 인류학자인 셈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는 또 다른 이방인이 아니다. 뇌신경이 일반인과 약간 달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할 뿐이다. 그 대신 그는 엄청난 지적 능력과 도덕성을 보유했다. 뇌질환은 정신병이나 장애가 아니라 ‘특성’이다. 한 명의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화성의 인류학자’가 가진 매력은 이를 보여 주는 방식에 있다. 의학적 기초를 바탕으로 인류학적 고찰, 그리고 그 속에 환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담겼다. ‘차가운 뇌와 따뜻한 심장의 조화.’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가 이 책을 “신경학과 의학, 인류학의 만남을 통해 신경성 질병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탁월한 인문학적 보고서”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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