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의 거짓말

2002.02.25 15:50
지난 2월6일 덴마크의 닐스 보어 문헌보관소(NBA)는 보어(1885~1962)가 1941년 9월 코페하겐으로 찾아온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와 주고 받은 대화의 내용을 소상히 기록해둔 문서를 공개했다. 보어 가족들은 이 문서를 2012년까지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었으나 나치의 원자탄 개발에 참여했던 하이젠베르크의 역할을 놓고 전개되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일정을 앞당겨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태생의 하이젠베르크는 26살이 되던 1927년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해 양자역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노벨상을 받고나서 1939년 여름 미국을 방문한 그는 역시 노벨상을 받았으며 그와 동갑인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페르미로부터 미국으로의 망명 권유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미국 친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독일로 돌아간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다. 1942년부터 미국과 독일은 원자폭탄 개발경쟁을 벌인 결과 미국은 1945년 우라늄과 플루토늄으로 만든 두 개의 폭탄을 일본에 투하해 항복을 받아내지만 나치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고 연합군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1942년 당시 우라늄 연구에서 미국에 결코 뒤지지 않은 나치가 원자탄 개발에서 실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지적된다. 히틀러가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에 원자탄 개발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고, 미국은 맨해튼 계획처럼 거대한 계획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나치는 그렇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에서는 나치가 핵무기를 만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로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독일 과학자들의 은밀한 방해 공작을 꼽는다.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태업을 했기 때문에 나치가 핵무기 개발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인품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더러 하이젠베르크 자신도 그러한 주장을 했다. 가령 1957년 출간된 독일의 문명비평가인 로버트 융크의 저서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의 핵개발에 소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이젠베르크는 확실히 존경받을 만한 과학자이자 사상가였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보어의 편지에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이젠베르크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에서 보어는 1941년 옛 스승을 찾아와서 원자무기 개발에 자신감을 피력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다. ◇ 참고자료 △닐스 보어 문헌 보관소 홈페이지(www.nba.nbi.dk) ※ 이 내용은 '한겨레신문'에 '이인식의 과학나라' 코너로 연재된 칼럼입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이 기사 어떠셨어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
    *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명확인 과정을 거쳐야 댓글을 게시하실수 있습니다.
    * 실명 확인 및 실명 등록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 (2020. 4. 2 ~ 2020. 4. 14) 동안에만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