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헤모글로빈과 철

2002.02.14 13:53
'임신하셨어요?' 우리 나라에 귀화한 프랑스 아줌마의 광고 멘트다. 우리말에 불어의 억양으로 배어있어 색다른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종종 다른 연예인들도 이 말을 흉내내곤 했다. 배 속의 태아는 엄마에게서 혈액의 원료인 철분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산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철분을 아이에게 주었기 때문에 철분 부족으로 빈혈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광고에서 임신과 빈혈을 연결시킨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철분은 혈액에서 어떻게 사용될까. 혈액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철분은 몸에서 이 단백질이 만들어 질 때 필요하다. 헤모글로빈은 허파에서 조직세포로 산소를 운반하며 조직세포에서 허파로 이산화탄소를 운반해 혈액의 pH를 일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소 분자(O2)는 헤모글로빈의 철과 약하게 결합해서 우리 몸 구석 구석까지 배달된다. 즉 철분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피가 빨개요? 안경 벗어봐! 벗어도 빨개요? 피 색깔? 빨강! 그러면 왜 빨간 색일까. 그것은 헤모글로빈의 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철은 이온 형태로 몸에서 존재하는데 주위 환경에 따라 어떤 이온 형태로 존재하느냐에 따라 다른 색으로 바뀔 수 있다. 피가 붉다고 이야기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동맥에서 나오는 피는 투명하고 맑은 붉은 색이지만 정맥으로 들어가는 피는 파란색을 띤다. 지금 필자는 컴퓨터 키보드 위에 손등을 바라보고 있다. 파란 핏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과학자들은 정맥으로 들어가는 피가 파랗게 보이는 이유로 철(Fe)이 산소가 결합했던 자리를 물분자가 차지하게 되면서 철 주위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피는 모두 빨간 색일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연체 동물이나 갑각류의 피는 청록색이다. 이들 생물에는 헤모시아닌이라는 헤모글로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다. 이 헤모시아닌 속에는 철(Fe) 대신 구리(Cu)가 들어가 있어 피색깔이 청록색으로 보인다. 살아있는 문어나 오징어, 또는 들에서 메꾸기나 방아개비를 잡을 수 있다면 이 녀석들의 피 색깔을 확인해 보라. 우리와 피 색깔이 다르다고 외계에서 온 것은 아니다. 단지 피 속에 철이 들어 있느냐 구리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것뿐 이다. 헤모글로빈의 철과 관련된 몇 가지 흥미로운 주제들 몸 속의 헤모글로빈의 철은 항상 Fe2+로 존재한다. 그런데 피가 몸 밖으로 나오면 산소와 결합해서 바로 Fe3+의 이온 형태로 바뀌어 버린다. 몸 속에 있을 때는 산소와 결합해도 Fe2+의 이온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수수께끼는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숙제가 되었다. 이 사실은 인공 혈액을 만드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산소는 헤모글로빈의 철과 결합해서 우리 몸의 조직 세포로 운반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소와 철의 결합이 쉽게 끊어져야 한다. 만일 산소 분자가 철과 너무 강하게 결합이 이루어져 있으면 산소를 다른 조직 세포로 배달하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로 산소 분자와 비슷한 크기의 일산화탄소(CO)는 산소 분자(O2) 보다 약 25-200배정도 강한 결합력을 가진다. 그래서 일산화탄소가 혈액에 들어가면 산소 대신 헤모글로빈과 강하게 결합해 산소 부족으로 질식 현상이 나타나며 심할 경우 죽게 된다. 예전에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많을 때 가장 흔하게 일어났던 사고가 바로 일산화탄소 가스 중독이었다. 최근 자동차의 증가로 일산화탄소가 급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일산화탄소 농도 이하에서는 아무 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 부분에 의문을 가졌다. 일산화탄소가 산소보다 헤모글로빈의 철에 더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데도 어떻게 인체에서 산소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일산화탄소는 우리 몸에서도 일부 발생한다. 2001년 3월 미국 프린스톤 대학과 루이스빌 대학 연구팀은 이론과 실험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헤모글로빈의 철 이온 주변에 히스티딘(His)이라는 아미노산이 산소와 일산화탄소를 우리 몸이 구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히스티딘은 일산화탄소보다 산소 분자와 더 강하게 수소결합을 하는 것으로 예측됐으며, 일산화탄소가 헤모글로빈의 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수소결합의 역할이 85%정도이며 방해 효과는 15%정도 된다고 말했다. 2000년 11월호 생화학지(Biochemistry)에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 연구팀은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인공 헤모글로빈을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헤모글로빈에 있는 몇 개의 아미노산을 변형시켜 몸 밖에서도 헤모글로빈의 철이온이 Fe3+로 산화되는 것을 방지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인공 혈액은 실용화될 전망이다. 이 연구는 수술시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절대 부족, 수혈에 의한 에이즈 감염, 노령화로 인한 수요 급증으로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병원에서 사용되는 혈액은 전부 헌혈에 의존하고 있다. 사람의 몸은 너무나도 신기하고 오묘하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들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하지만 과학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헤모글로빈의 철에 관한 여러 수수께끼들은 아직도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참고자료] 1. 해외과학기술동향, 2000년 11월호 2. Spiro, T. G.; Kozlowski, P. M. Acc. Chem. Chem. 2001, 34, 13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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