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산불도 피해가는 마을 있다

2013.01.08 00:00
강원도 강릉시 선교장에서 ‘99칸’ 집이 무엇이라는 것을 맛본 후 ‘과학이 있는 한국 전통마을’의 마지막 종착지인 남한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왕곡마을로 향한다. 왕곡마을은 1988년 한국에서 처음 ‘전통가옥 보존마을 1호’로 지정됐고, 2000년 ‘중요민속자료 235호 고성왕곡마을’로 지정됐다. 그만큼 의미가 깊은 마을인데 정확한 위치는 고성군 죽왕면 오봉1리다. 오봉리라는 이름은 다섯 개의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했다. 이들 산은 두백산, 공모산(골무를 닮았다고 하여 골무산이라고 부름), 순방산, 제공산, 호근산(송지호 갯가와 닿았다 해서 객사산이라도 함) 등이다. 주산은 오음산이고, 두백산·공모산이 좌청룡, 순방산·제공산·호근산이 우백호에 해당하는 형국이다. 호근산을 안산(案山, 주택이나 묘택이 있는 혈(穴) 앞의 낮고 작은 산)으로 인식한다. 왕곡마을은 천혜의 은닉장소라는 데서 특별함이 찾을 수 있다. 송지호해수욕장에서 1km 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마을 입구에 이르기 전에는 그 존재를 예상하기 힘들다. 이 마을은 동해안과 설악산을 찾아왔다가 특별한 명소가 없어 문화적인 향취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향취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다른 전통마을보다 조금 이른 고려 말 14세기부터 형성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왕곡마을은 함씨와 최씨의 집성촌이다. 함씨의 입향조는 고려 말 두문동 72인 중 한 사람인 함부열이다. 그는 조선왕조 건국에 반대해 이 마을 근처에 은거했다. 그의 형인 함부림은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 3등에 올랐지만 고려 말 예부상서와 홍문관 박사 등을 지낸 아우 함부열은 조선왕조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함부열은 공양왕이 강원도 원주로 추방당하자 은밀히 뒤따라가 2년간 모셨다. 그러다 왕이 다시 유배되자 간성읍 금수리로 옮겨 생을 마감했다. 그의 손자인 함영근이 조선의 눈길을 피해 은둔한 자리가 지금의 왕곡마을이다. 이후로도 거의 600년 이상 그의 후손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함부열이 근거를 잡은 곳은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서쪽에 고개가 너무 높아 낮선 땅 같다’고 쓴 간성 땅이다. 그의 손자는 오지 중의 오지에서도 산으로 둘러싸인 우묵한 곳을 찾아 최종적인 은신처로 선택했다. 왕곡마을은 일제시대에도 화를 피했는데, 이는 일제가 동해안 쪽으로 새로운 국도(7번)를 만들면서 왕곡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일제가 폐쇄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마을이 무분별하게 변형됐음에도 왕곡마을은 일제의 개발에서 비켜남으로써 오히려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광복되자 38선의 북쪽에 있던 왕곡마을은 북한 영토로 편입됐다. 마을에서 불과 30여 km 거리에 있는 월비산(금강산 남동쪽의 산)에서는 동부전선 최대의 격전이 벌여졌다. 휴전 직전 한국전쟁사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고성군 일대는 많은 피해를 입었고, 특히 왕곡마을을 지나가는 7번국도 주변의 마을이 대부분 파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곡마을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도 마을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함포 사격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을 ‘병화불입지(兵禍不入地)’ 곧 전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곳이라고 굳게 믿는다.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지자 남측 땅이 됐고 지금까지 전통마을로 유지됐다. 왕곡마을이 남다른 마을임을 보여주는 일화는 최근에도 있었다. 1996년 4월 거대한 산불이 나 강원도 지역이 초토화됐고 2000년 4월에도 산불이 일어나 마을이 두 차례의 무지막지한 화마를 입은 적이 있다. 당시 주변 야산은 온통 숯덩이로 변했지만 정말 믿기지 않게도 왕곡마을의 집들은 상한 데 없이 멀쩡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우리고향산책』, 김선규, 생각의나무, 2002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창비, 2003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1)』, 김봉렬, 돌베개, 2006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한필원, 북로드, 2007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한필원, 휴머니스트, 2011 『한옥마을』, 신광철, 한문화사, 2011 『낙안읍성』, 송갑득, 순천시, 2012 「한옥」, 최준식, 네이버캐스트, 2010.01.18 (16-2에 계속)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에 이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를 연재합니다. 전통마을은 사상, 문화, 전통, 역사 등 인문학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지역입니다. 유교 사상인 성리학을 질서로 따라 마을과 구성원이 살아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백 년 동안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마을 구성원이 합리적이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성된 곳이기도 합니다. 더사이언스는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조상들의 과학지식이 잔뜩 담겨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전통마을에 대한 기사를 더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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