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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깔대기, 아니 겸손의 아이콘 여기 있소이다

2012년 11월 27일 00:00
‘한주종택’은 마을의 가장 위쪽인 영취산 산기슭에 위치한다. 다소 급경사로 올라가는 주거지의 가장 뒤쪽에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 집은 영조 43년(1767)에 이민검이 창건했고, 고종 3년(1866)에 이민검의 증손자인 한주 이진상이 중수해 현재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진상의 호를 따 한주종택이라 부르지만 안주인이 상주의 동곽 출신이라 ‘동곽댁’이라고도 불린다. 이진상은 조선 말기 정치가 문란해지자 국가제도의 개혁안을 제시한 ‘묘충록’을 저술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반대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1876년 운요호사건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려다 화의 성립으로 중단했고, 주자와 이황의 주리론을 중심사상으로 이일원론(理一元論)을 주장하며 제자들과 함께 한주학파를 형성했다. ●한주종택의 검소한 대문간, 겸손한 주인 닮아 한주종택은 한개마을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집이며, 골목과 담장 주위의 노송이 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특히 담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마을에서 이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집은 동쪽 ‘문간채’에 있는 대문간을 통해 들어가는데 대문간 옆에 하인들이 들어가던 작은 문도 있다. 문간채는 보통 양반집과 같이 규모가 큰 살림집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하인들이 머물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간혹 규모가 작은 서민살림집에서도 문간채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족이 늘어나면서 식구들이 기거할 공간을 만드는 경우다. 문간채는 바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기 때문에 창고나 외양간을 붙여 농사일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게 기본이다. 특이한 것은 대갓집인데도 불구하고 대문간이 매우 검소하다는 점이다. 양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높이 솟은 솟을대문이 아니라 평대문이다. 원래는 문간채에 초가지붕을 이어서 지금보다 더 소박했다고 한다. 남들은 억지로라도 솟을대문을 만들려고 안달이던 때인데, 그러지 않은 것이다. 한주 이진상의 학문은 높았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아 자신의 본분에 맞게 평대문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3량가·맞배지붕으로 지은 안채, 스스로 낮추는 소박함 한주종택은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공부와 연구 공간을 위한 ‘한주정사’가 있고 거주 공간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있다. 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종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구성이다. 안채는 가장 간단한 3량가로 마을 가옥의 안채 배치 중 가장 완전하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남향 ‘ㅡ’자의 정침과 좌측에 동향 ‘ㅡ’자의 3칸 고방채, 우측에 서향 ‘ㅡ’자 3칸의 아랫채, 그리고 정침과 마주보는 남쪽에 7칸 ‘ㅡ’자의 중문채 등 4동이 ‘튼ㅁ’자를 이루어 안마당을 감싸고 있다. 이런 구조는 모든 활동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배치한 것이며 이 지방에 전해지는 건물 배치다. 한주종택에서 안채를 3량가로 만든 것은 역시 파격적인 일이다. ‘량가’란 지붕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른 설명인데 3량가는 우리나라에서 시공되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간단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3량가 건물은 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종도리(서까래가 받치는 횡부재)를 설치하고, 지붕의 앞뒤 양쪽 가장자리에 두 열의 처마도리(외벽의 상부에 있으며 서까래 등을 받치는 보)를 두어 세 열의 도리가 서까래를 받치는 구조다. 일반적인 양반 건물은 5량가이며 더불어 원형기둥은 일반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1고주5량가, 2고주7량가 등의 구조도 있는데, 이는 툇마루를 둬 지붕 높이가 변하는 것에 대비해 안쪽에 고주(高柱, 여러 기둥 중에 특별히 높은 기둥)를 사용한 경우다. 당당한 양반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안채를 3량가로 건설한 것 역시 자신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라 한주종택은 대가집인데도 불구하고 평민집을 연상시키는 사각기둥을 사용했다. 북비고택에 양반 건축에서 사용하지 않는 원형기둥을 쓴 것과 대조적이다. 또 양반집은 대체로 안채를 팔작지붕으로 만들고, 사랑채를 맞배지붕으로 만든다. 한주종택에서는 이 역시 한 단계 낮춰 안채와 사랑채 모두 맞배지붕으로 지었다. 이 역시 대갓집의 위품을 스스로 낮춘 것이다. 이처럼 한주종택은 소박한 개념으로 건설한 집이다. 하지만 본채의 마루방, 부엌 앞에 있는 광과 마루방은 고서로 가득 채워 성리학의 대학자의 집임을 한껏 보여준다. ●학문을 닦던 공간, ‘한주정사’ 한주종택이 한개마을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10년 한주정사라는 정자와 연못이 있는 구역이 건축된 이후다. 한주정사에는 안채를 구분하는 사잇담에 있는 작은 협문과 일각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주정사는 집의 권위와 위계가 보이도록 기단을 2개의 층으로 나누어 쌓았다. 집안이 보이지 않도록 한 효과와 조망을 위한 방법이다. 이곳은 당대의 문인들과 성리학을 강학하던 장소로 ‘조운헌도제(祖雲憲陶齋)’라 현판했다. 성리학의 비조(鼻祖)인 주희와 퇴계 이황의 학문을 이어 받든다는 뜻의 현판에서 이진상의 학문적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옥마을』, 신광철, 한문화사, 2011 『성주 한개민속마을』, 성주군, 2012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한필원, 휴머니스트, 2011 「[古宅은 살아있다] <25>성주 한개마을」, 정창구, 매일신문, 2012.06.20 (11-6에 계속)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에 이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를 연재합니다. 전통마을은 사상, 문화, 전통, 역사 등 인문학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지역입니다. 유교 사상인 성리학을 질서로 따라 마을과 구성원이 살아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백 년 동안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마을 구성원이 합리적이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성된 곳이기도 합니다. 더사이언스는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조상들의 과학지식이 잔뜩 담겨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전통마을에 대한 기사를 더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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