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로 요리하는 동물’

2012.11.25 00:00
‘고기를 굽고 채소를 삶고 국을 끓이고….’ 엄마 손을 거쳐 밥상에 차려진 음식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벌건 고깃덩어리는 맛있는 구이, 쓴맛이 돌던 채소들은 맛깔나게 변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기운 없을 때 ‘집밥’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싶어한다. 요리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맛 뿐만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로 요리한 화식(火食)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요리가 인간을 진화시켰을까.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리처드 랭엄 교수가 쓴 ‘요리 본능’에 그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대한 뇌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요리’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나약하지만 지적능력 덕분에 어떤 동물보다 강하다. 이런 지적능력이 ‘거대한 뇌’에서 나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뇌 크기를 비교하면 인간이 침팬지보다 2.4배 더 크고, 뇌신경도 인간은 평균 86억 개로 침팬지(28억 개)의 약 3배에 달한다. 뇌의 무게는 약 1.3kg로 전체 몸에서 2%밖에 되지 않지만 뇌가 쓰는 에너지는 우리 몸 전체가 쓰는 에너지의 20%를 차지한다. 거대한 뇌를 가진 인간이 다른 영장류나 동물보다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실제로 에너지를 만들어 온몸으로 보내줄 인간의 소화기관은 다른 동물보다 작다. 다른 영장류의 소화기관에 비하면 그 무게가 60%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불균형한 구조를 가진 상태에서 우리 조상은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인간답게 진화하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리처드 랭엄 교수는 인간 조상이 고기와 덩이뿌리 채소를 불에 굽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조상인 직립원인(Homo erectus)의 뇌는 약 160만~180만 년 전에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요리 덕분이라는 것. 요리를 하면 음식물이 소화되기 좋은 상태로 변하기 때문에 소화기관에서 칼로리를 더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랭엄 교수팀은 같은 크기의 쥐와 비단뱀에게 날고기와 익힌 고기를 주는 실험으로 ‘동물도 날고기 대신 익힌 고기를 주면 빨리 성장한다’는 걸 밝혔다. 불에 익힌 고기가 날고기보다 소화하는 데 에너지를 적게 필요로 한다는 걸 입증한 것이다. 생식을 위주로 하는 유인원처럼 식사하면서 지낸 ‘진화 식단’ 실험에서도 참가자들의 체중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또 다른 실험에서 생식을 하면 번식 기능도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원시 야생에서 건강하게 후손을 이어가는 데 익힌 음식이 중요했을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익혀 먹자 ‘만물의 영장’이 되다 올해 10월 22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연방대의 수자나 에르쿨라누 호우젤 박사의 논문은 ‘요리가설’을 지지한다. 이 논문은 영장류를 대상으로 커다란 뇌와 몸집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을 계산한 내용인데, 여기에 따르면 음식을 날 것으로만 먹어서는 지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음식을 날 것으로만 먹을 때 뇌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칼로리를 섭취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계산한 결과 고릴라는 8.8시간, 오랑우탄은 7.8시간, 침팬지는 7.3시간, 인간은 9.3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은 ‘날 것을 먹고 영장류가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를 나타낸다. 인간은 요리를 통해 칼로리 섭취에 필요한 시간을 줄였고 지적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뇌를 갖도록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 결국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많은 뇌신경을 가지게 된 것도 요리로 음식물 섭취의 질적인 변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는 랭엄 교수의 주장고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음식을 불로 익히게 되면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조직이 파괴돼 우리 소화기관이 흡수하기 좋은 형태로 바뀌고, 그 덕분에 오랫동안 음식을 소화시키지 않고도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랭엄 교수는 요리가 인간에 준 영향을 뇌로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요리가 성별분업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남성이 고기를 사냥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동안 여성이 요리를 위해 불을 피우고 안정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덩이뿌리 등 식물을 채집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결혼, 사회 등을 이루고 발전하는 데도 영향을 줬다는 게 그의 논리다. 사냥해 온 고기를 함께 요리하고 나눠먹는 조직 속에서 질서와 사회성이 발달했다는 것. 물론 이런 생각은 요즘처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고 세계적인 남성 요리사가 나오는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요리의 등장 이후 인간 사회에 생긴 변화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저자의 주장처럼 인류가 160~180만 년 전부터 불을 사용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발견된 150만 년 전 불 탄 석기 등도 자연 발화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요리가 우리의 거대한 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누군가가 차려준 정성스러운 밥상은 배를 든든하게 채울 뿐 아니라 힘과 용기를 준다. 아주 오래 전 우리 조상도 그런 정성이 담긴 음식 덕분에 조금 더 사람답게 진화했다. 예나지금이나 사랑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사람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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