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침팬지, 앵무새와 대화하고 싶다고?

2012.11.12 00:00
“안녕” “아니야” “좋아” 수년 전 텔레비전 한 프로에 소개돼 유명해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 있는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에 대한 연구결과가 최근 생물학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논문의 제목은 ‘사람 발성을 모방하는 아시아코끼리’. 한국에 말하는 코끼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를 느낀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인지심리학과 앙겔라 슈퇴거 박사팀이 코식이를 직접 관찰하고 음성을 녹음해 분석한 결과가 실린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코식이가 말하는 장면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이 듬직한 22살짜리 '청년'이 말하는 것을 보지 않고 듣기만 하면 사람이 말한 것처럼 착각할 정도다. 앵무새나 구관조가 말할 때는 신기하기는 하지만 ‘새소리같다’는 느낌이 강한데 코식이 발음은 다르다. 논문에 따르면 코식이가 말하는 단어는 '안녕, 앉아, 아니야, 누워, 좋아' 이렇게 다섯 가지다. 연구자들은 코식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 16명에게 녹음한 코식이의 말을 들려준 뒤 받아쓰게 했다. 그 결과 ‘안녕’이 56%로 인지도가 가장 높았고 ‘아니야’가 44%, ‘누워’가 31%, ‘앉아’가 15%로 뒤를 이었다. 반면 ‘좋아’에 대해서는 38%가 ‘보아’로, 23%가 ‘모아’로 들었다. ●자음보다 모음 모방 잘 해 연구자들은 코식이가 모음에 대해서는 유사도가 67%에 이를 정도로 흉내를 잘 냈지만 자음은 21%에 불과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석했다. 사람 언어의 근본적인 음향 요소를 포먼트(formant)라고 하는데 이를 ‘모음의 구성 요소’로 번역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내는 말소리의 특징을 규정하는데 모음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자들은 코식이가 한국어의 포먼트와 기본 진동수를 세밀하게 모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 공저자로 에버랜드동물원 직원이 두 명 올라가 있지만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 현상을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주도해 연구하지 못하고 머나먼 오스트리아와 독일 과학자들에게 ‘헌납’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코끼리 발성분야의 전문가들로, ‘사이언스’ 올해 8월 3일자에는 코끼리의 저음 발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싣기도 했다. 코끼리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범위인 주파수 20헤르츠 미만의 저음을 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그 발성 메커니즘을 두고 두 가지 설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처럼 폐에서 공기를 내보낼 때 성대가 떨려 소리를 낸다는 가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양이의 가르랑거리는 소리처럼 성대근육을 씰룩거려 소리를 낸다는 가설이다. 연구결과는 사람과 같은 메커니즘이었다. 다만 주파수가 훨씬 낮았는데 이는 성대의 크기와 관계가 있다. 즉 성대가 클수록 주파수가 낮고(저음) 작을수록 높다(고음). 당연히 코끼리는 사람보다 훨씬 크므로 저음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코식이는 어떻게 사람 목소리의 주파수 영역에서 자음과 모음이 분절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X-선 촬영을 하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코식이가 코를 말아 입의 오른쪽 방향에서 코끝을 입안에 밀어 넣은 뒤 혀를 눌러 소리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마치 사람이 손가락을 입에 넣어 주파수가 높은 휘파람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코식이는 자기가 내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까. 코식이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수화하는 침팬지 대화하는 앵무새 사람과 동물의 의사소통, 특히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주제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가끔씩은 이들과 정말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나 고양이는 어렵겠지만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는 침팬지라면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바람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침팬지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를 두고 침팬지 성대의 구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이 부분 근육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부위의 신경회로가 원시적이기 때문에 미묘한 조절이 불가능해 사람의 발성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아무튼 말하는 침팬지 프로젝트가 실패한 뒤 과학자들이 택한 건 수화였고 꽤 성공을 거뒀다. 최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수화력을 구사했던 침팬지의 전기(!) ‘님 침스키’가 번역출간됐다. 1973년 태어나자마자 바로 사람의 가정에 입양돼 사람처럼 길러진 님은 100가지가 넘는 수화 단어를 익혔고 단어 서너 개를 조합해 의사표시를 해 스타가 된 침팬지다. 이 침팬지의 이름 ‘님 침스키(Nim Chimpsky)’는 저명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이름을 패러디한 것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허버트 테라스 교수는 “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촘스키의 주장을 뒤집기 위한 ‘님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아예 이름까지 이렇게 지어준 것이다. 책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며 자신도 사람이라고 느꼈을 게 분명한 님 침스키가 어떻게 수화를 배워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했고, 그럼에도 점차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지면서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가 돼 가면서 4년 만에 버려지게 된 과정을 세밀히 추적하고 있다. 결국 다른 침팬지들과 함께 우리에 갇힌 신세가 된 님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화로 내보내달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지만 수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친다. 이 장면을 읽다보면 누가 사람이고 누가 짐승인지 되묻게 된다. 코식이가 사람 말은 하지만 뜻은 몰랐고 침스키가 뜻은 통하지만 말은 못했다면 아프리카회색앵무새 알렉스(Alex)는 사람 말을 하면서 그 뜻도 아는 존재였다. 보통 앵무새나 구관조는 단순히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 브랜다이스대 이렌느 페퍼버그 교수는 1977년 한 살짜리 아프리카회색앵무새를 대상으로 조류언어실험(Avian Language EXperiment, 즉 ALEX)을 시작했다. 해가 지날수록 알렉스의 어휘력과 대화능력을 놀랄 정도로 향상됐고 사람과 동물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됐다. 2007년 알렉스가 31살의 나이로 죽자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부고기사가 실렸을 정도였다. 30년간 알렉스와 동고동락했던 페퍼버그 교수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는데 마음을 추스르고 알렉스를 추억하며 이듬해 펴낸 책이 ‘알렉스와 나’다(한글판은 2009년 나옴). 그런데 코식이는 왜 뜻도 모르는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려고 했을까. 연구자들은 코식이의 삶에 주목했다. 1990년 한 동물원에서 태어난 코식이는 1993년 에버랜드에 왔는데 당시에는 암컷 아시아코끼리 두 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95년부터 혼자가 돼 2002년까지 다른 코끼리를 보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코식이가 사람 소리를 흉내내게 된 건 유대와 발달에 중요한 시기에 동종으로부터 격리된 환경에서 사람만이 유일한 사회적 접촉대상이었기 때문”이라며 “발성 학습이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한 방편이었던 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코끼리는 윗입술이 코에 들러붙어 킨 코로 진화했기 때문에 사람처럼 입술을 오므릴 수도 없고 성대가 커 높은 톤을 낼 수도 없다. 결국 숱한 시도 끝에 찾아낸 게 코끝을 입에 넣어 구강구조를 변형시켜 사람 소리를 내는 방법이었다. 한편 님 침스키나 알렉스의 경우는 사람들(과학자)이 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고된 훈련으로 언어를 학습시킨 결과다. 이 과정을 훌륭하게 소화한 두 동물은 대중매체를 통해 스타가 되기도 했지만 이들의 삶이 행복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님은 27살에 심장마비로 죽었고 알렉스는 30살에 급사했는데 둘 다 아직 20년은 더 살 나이였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환호성을 올리고 추켜세웠지만 결국 이들이 원한 건 고등한 대화양식이 아니라 안정적인 관계와 따뜻한 관심, 즉 마음의 교류가 아니었을까. 코식이 동영상을 보며 ‘신기한 일이네…’하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외로운 어린 코끼리가 자신도 사회의 일원이 되겠다고 절박하게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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