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원전 생명 연장의 꿈

2012.11.02 00:00
[동아일보]

러시아 출신 프랑스 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는 논문 ‘생명 연장의 꿈(The Prolongation of Life: Optimistic Studies)’으로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불가리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발효유에 들어 있는 유산균이 장에서 활동하는 해로운 균을 억제하고 독소를 줄여 생명 연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사랑과 정치 문제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그가 노년에 담배를 끊고 발효유를 마시며 생명 연장의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구약성경(창세기 6장 3절)을 보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 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최대수명을 4만3200일(약 118년)로 추정하고 있다. 생명과학자들의 의견도 대체로 일치한다. 염색체 끝에 달린 말단소체(텔로미어·Telomere)라는 단백질은 세포분열을 거듭할수록 점점 짧아지는데 사람의 경우 120년 정도면 더이상 세포분열을 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120세 넘게 장수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하느님이 사람에게 준 설계수명은 이론으로나 실제로나 최대 120년인 셈이다. 생명공학자들은 이 한계에 도전한다. 텔로미어를 계속 생산하면 세포분열을 되풀이해서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세포분열을 무한정 반복하는 암세포에서 발견한 효소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를 활용하면 암도 치료하고 노화도 지연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사망 확률이 가장 높은 질병인 암이 생명 연장의 희망을 열어 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수명연장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은 또 있다. 바로 원자력공학자들이다. 이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수명 한계에 도전한다. 설계수명이 30년 정도인 원전을 더 오래 가동하는 기술을 찾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리 1호기가 설계수명 30년을 넘었지만 2018년까지 연장 받은 가운데, 월성 1호기도 20일로 가동 30년을 맞아 수명 연장 심사를 받게 된다. 문제는 원전 생명 연장의 꿈을 메치니코프 논문처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 생명 연장의 꿈이 길몽이 아니라 악몽일 수 있고, 그 악몽도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불길한 조짐은 최근 자주 발생하는 원전의 기술적인 고장에 그치지 않는다. 납품 비리, 뇌물 비리, 마약 투약, 사고 은폐 등 최근 예민한 시점에 빈발하는 ‘원전 스캔들’은 악몽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월성 원전 1호기는 20일로 설계수명을 다하고 정지될 것이다. 이는 ‘연장’도 ‘폐쇄’도 아닌 ‘보류’일 뿐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절차상 문제로 시간을 벌면서 판단을 다음 정부로 넘기게 될 것이다. 월성 1호기는 냉동인간처럼 동면에 들어가 다음 정부에서 소생이냐 죽음이냐 하는 판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식물인간의 경우 생명 연장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 경제적인 문제다. 돈만 있으면 생명을 어느 정도 연장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가늠하느냐 하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가족이 고통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고리 1호기도 그랬지만, 월성 1호기도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경제성을 따지는 것은 뻔해 보인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월성 원전을 보며 고령화사회에 드리워지는 또 다른 공포에 가슴이 섬뜩해진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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