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많이 마셔 간 안좋으면 ‘똥물’ 마셔라?

2012.09.29 00:00
많은 이들이 초가집은 단점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단점도 알고 보면 장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초가집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불평 중의 하나는 ‘굼벵이 배설물’ 소위 ‘굼벵이 똥물’이다. 초가집 어디에나 굼벵이가 사는데, 비만 오면 이 배설물이 녹아 내려 까맣게 흘러내리곤 한다. 초가집에 사는 주민들 말로는 심할 때는 비가 오지 않을 때도 뚝뚝 떨어진단다. 그런데 근래에는 주민들이 굼벵이 배설물을 오히려 반기고 있다. 굼벵이가 피로에 지친 간에 좋은 특효약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한마디로 초가집에 살더라도 굼벵이 때문에 호강할 수 있다는 뜻인데, 최근에는 이런 ‘굼벵이 똥물’이 제주도에서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기도 하다. 굳이 이런 똥물이 아니더라도 굼벵이의 가치는 크다. 초가집에 굼벵이가 있다는 건 생태계가 그대로 유지된 환경이라는 뜻이다. 초가집에 굼벵이나 참새 등이 공생하면서 지네나 모기와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다. 드물게 초가집 주변에선 사람을 해치지 않는 구렁이도 찾아볼 수 있는데,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은 채 집을 보호하기 때문에 선조들은 업구렁이를 주요한 집지킴이로 받들었다. 구렁이가 기어 나오면 주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손을 비비며 “볕을 쪼이셨으니, 이만 들어가시지요”라고 축원한다. 업구렁이가 밖으로 나가면 집의 재운도 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짚으로 지붕을 얻는 초가집 문화는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외국에는 짚문화가 없다. 물론 외국에도 밀짚이 있지만 보리짚이나 밀짚은 재질이 딱딱해서 지붕은 물론 일상용품을 만들기 어려우므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낙안읍성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초가집이 우대받는다. 초가집 9동이 중요민속자료 제92호부터 100호로 지정돼 있다. 또한 ‘임경업군수비각’이 전남문화재자료 제47호로 지정됐으며, 전남유형문화재 170호로 ‘객사’가 지정됐다. 낙안읍성의 초가집은 매년 정부 지원으로 초가를 잇고 있으며, 당시 관아였던 관청 건물들이 복원돼 일반에 공개돼 가장 충실한 읍성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명실공히 ‘중세 도시’… 개 숭배문화 존재 낙안읍성의 기본은 행정도시다. 세조 12년(1466)에 낙안군이 편제된 이래 1910년 폐지될 때까지 군 청사가 있는 큰 고을로 현재의 벌교읍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관할했다. 낙안읍성의 인구는 약 1000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전통마을 인구의 약 4배 정도에 해당한다. 일반 마을에 비해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아 중세의 ‘도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낙안읍성의 동문 앞에는 해자를 건너는 평석교(平石橋)가 있는데, 특이하게 개를 수호신으로 삼아 석구 한 쌍을 세워 뒀다. 읍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하는 동문 앞에 수호신으로 개를 조각하는 건 한국에서는 흔치 않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 사찰이나 신사 입구에 돌로 만든 개를 세우고 고마이누(고려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고려 때 일본에 불법을 전하면서 함께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옛부터 개는 집을 지키고 잡귀 잡신을 물리치는 영물로 여겨졌다. 원래 석구상은 세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고, 또 한 마리는 한국에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으로 알려진 ‘사라호’ 태풍으로 유실됐다. 1985년에 한 마리, 2008년에 마지막 한 마리를 복원해 현재는 세 마리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구상은 삽살개 모양으로 자세히 보면 익살스럽기 그지없으며, 꼬리를 치켜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한없이 귀엽다. 구전에 의하면 정유재란 때 지금의 오봉산(옛 멸악산) 아래서 많은 왜군이 죽었다. 이들 원귀가 고을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비보 역할이 이 석구상을 세운 풍수지리적 배경이다. ●우물이 없는 낙안읍성…물은 어떻게 구했나 인간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낙안읍성 사람들은 식수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송갑득 선생은 식수 공급은 읍성 안 동내리, 남내리 마을 중앙에 1m 정도의 낮은 샘이 있어 걱정 없었다고 설명한다. 두 샘은 천연 샘이다. 풍수에서는 물 위에 떠가는 배 모양인 낙안읍성에 깊은 우물을 파는 것은 금지했지만 천연적으로 생긴 우물은 오히려 적극 활용했다. 천연 우물을 배 안에 고인 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배 안에 들어 온 물을 퍼내야 배가 안전하므로 천연샘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천연 우물은 물이 깊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가뭄 때 마르거나 장마철에 넘치지 않고 본래의 수위를 유지했다. 가장 잘 알려진 우물이 남내리 골목 안에 있는 우물이다. ‘큰 샘’ 또는 ‘미인 샘’이라고도 하며, 원님(군수)이 식수로 이 우물물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더구나 예로부터 이 물을 마시면 심성이 고와지고 얼굴이 예뻐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외부에서도 많은 사람이 떠가는 명수(明水)라 낙안읍성의 자랑거리기도 하다. 남래리 마을에서는 큰 샘의 중요성을 기려 정월 초삼일에 이 우물에 우물제(당산제)를 올리고 있다. 동내리에 위치한 미나리꽝 옆에 있는 우물은 ‘통샘’이라고 하고 남문앞 골목에 있는 샘을 ‘옹달샘’이라고 부르는데 이 샘도 마을에서 신성시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지만 새마을 사업 이전만 해도 정월 대보름날이면 동내리 마을 주민이 모두 모여 우물제를 올렸다. 이외에도 동내리 375번지에 장방형의 커다란 ‘독(돌) 샘(빨래터)’이 있었으며 동문 앞 들 가운데도 이와 똑같은 우물이 있어 옛날에는 이 물을 길러다 정화수로 사용했다. 또 어느 마을에서나 거의 마찬가지이지만 읍성 사람들은 우물에서 가족의 건강과 모든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고 기원하기도 했다. (5-4에 계속)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참고문헌: 『토종문화와 모듬살이』, 홍석화, 학민사, 1997 『뒷간에서 주웠어, 뭘?』, 꿈꾸는 과학, 열린과학, 2007 『일본에 남은 한국 미술』, 존 카터 코벨, 글을읽다, 2008 『한옥마을』, 신광철, 한문화사, 2011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한필원, 휴머니스트, 2011 『낙안읍성』, 송갑득, 순천시, 2012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에 이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를 연재합니다. 전통마을은 사상, 문화, 전통, 역사 등 인문학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지역입니다. 유교 사상인 성리학을 질서로 따라 마을과 구성원이 살아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백 년 동안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마을 구성원이 합리적이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성된 곳이기도 합니다. 더사이언스는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조상들의 과학지식이 잔뜩 담겨있지만 잘 알렺지 않았던 한국의 전통마을에 대한 기사를 더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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