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진]우리땅 확인해주는 독도 사철나무

2012.08.20 00:00

대통령의 첫 독도 방문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독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깊어졌다. 그러나 100여 년 전만 해도 당연한 우리 땅인 독도가 오늘날처럼 일본이 딴죽을 걸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당시의 상황으로 잠깐 되돌아가 보자.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강원도 울릉군으로 승격시키면서 독도는 한국령으로 확실하게 편입되었다. 하지만 1905년 1월 28일 일본의 시마네 지방정부는 한 물개잡이 어부가 제출한 독도 편입 청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네 영토로 만들어 버린다. 시정을 요구하고 외교문제로 삼아야 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강제병합 직전의 대한제국은 시비를 따지고 문제 삼을 여력은 물론이고 중요성을 알아차릴 선각자는 더더욱 없었다. 이렇게 어수선할 때 우리 땅임을 확인하듯 가녀린 생명체 하나가 움튼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상록수의 대표 사철나무 새싹이었다. 독도는 화산재와 암석조각이 쌓여 만들어진 응회암과 화산각력암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암석은 풍화와 침식이 비교적 쉽게 진행되어 식물이 간신히 자리 잡을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250만∼270만 년에 이르는 영겁의 역사를 가진 독도는 나무 한 포기의 자람도 내내 거부해 왔다. 그러다 1905년경 일본의 독도 불법 편입 무렵에 사철나무에게만은 비로소 정착을 허락한다. 우리에게는 우연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1905년의 불법 편입을 알아차린 혜안에 가슴 뭉클한 깊은 감동을 준다. 독도 사철나무는 어디서 왔는가? 주인공은 울릉도에서 씨앗을 따먹고 독도에 날아와 ‘실례’를 한 철새들이다. 사철나무는 동그란 열매 안에 주황색 팥알 굵기의 씨앗이 들어있다. 붉은색 계통이라 새들의 눈에 잘 띄고 배고픈 계절의 먹이가 된다. 독도 바위틈에서 사철나무 씨앗이 싹틔우고 살아가는 과정은 마치 나라를 잃고 고통 받는 민초의 삶과도 대비된다. 사철나무의 수명은 대체로 300년쯤이니 일제강점기 동안의 독도 사철나무는 사람으로 치면 유년기였던 셈이다. 비옥한 땅에서 충분한 수분 공급을 받는 행복한 유년이 아니었다. 짠물과 바람, 지독한 가뭄을 혼자 견디면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다 광복을 맞는다. 혼란기와 전쟁을 거치고 1953년 4월 20일 독도의용수비대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몸체를 불려갔다. 차츰 소년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독도 사철나무도 이제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터이다. 1982년 11월 16일 독도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그의 자람 터는 더욱 안전하게 보호받게 되었다. 이제 왕성한 청년기에 들어선 독도 사철나무는 주위에 형제자매도 늘렸다. 동도 천장굴 주변 두 곳에 일곱 그루, 면적으로 약 300m²와 서도 정상 부근의 세 그루 약 100m² 등 모두 세 곳에서 10여 그루가 자란다. 그 외 여기저기 독도 사철나무는 가지가 거의 땅에 붙은 채 아무리 거센 풍파가 닥쳐도 굳건히 잘 버티고 있다. 광복절을 맞아 문화재청은 동도 천장굴 사철나무를 천연기념물 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했다. 독도를 몰래 일본 땅으로 편입할 때 처음 뿌리를 내리고 온갖 역경을 극복하여 가장 오래된 고목이 된 이 사철나무는 이제 귀중한 문화재로서 독도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영목(靈木)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전 문화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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