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짝별 ‘네메시스’는 어디에?

2012.04.18 00:00
지난 주 과학카페에서 얘기했듯이 물리학자 존 휠러의 자서전에서 ‘블랙홀’이란 이름이 붙여진 사연을 알게 된 기자는 최근 블랙홀 연구 경향이 궁금했다. 그러다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견했다. 거대질량블랙홀이 어떻게 덩치를 키웠는가를 설명하는 논문이었다. 거대질량블랙홀은 쌍성(binary star) 가운데 별 하나를 잡아먹은 결과라는 것이다. 거대질량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은 우리가 익숙한 블랙홀, 즉 태양보다 무거운 별이 수축해 생긴 천체가 아니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질량(태양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을 자랑하는 천체로 은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태양계가 속하는 우리은하의 중심에도 태양질량의 400만 배에 이르는 거대질량블랙홀(궁수자리 A*)이 있다. 도대체 이 괴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덩치를 키웠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물론 그 과정을 설명하는 가설은 여럿 나와 있다. 원시가스구름을 삼켰다는 얘기도 있고 별을 먹어치웠다는 설명도 있다. 심지어 블랙홀들이 합쳐져 한 덩어리가 됐다는 가설도 있다. 그런데 계산해보면 이런 가설들의 결함이 나타나 여전히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하 중심에도 거대한 블랙홀 있어 기자는 이참에 거대질량블랙홀에 대한 기사를 써볼까 하는 생각에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 4월 2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된 논문을 읽어보기로 했다. 저가 가운데 한 명인 미국 유타대 벤자민 브롬리 교수에게 논문 pdf 파일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쓰다가 문득 ‘혹시 태양도 원래는 쌍성이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거대질량블랙홀(궁수자리 A*)에 짝별을 잡아먹힌 게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옛날에 배운 걸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무식한 질문일 것 같아 잠깐 망설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미에 써서 보냈다. “Is there any possibility that a partner star of the Sun was eaten by the supermassive black hole in the center of the Milky Way billions years ago?” 뜻밖에도 브롬리 교수는 멋진 생각이라며 자신도 밤하늘에 보이는 별 가운데 얼마나 많은 별들이 블랙홀에 짝별을 잡아먹혔을지 궁금하다고 답했다. (That's an excellent thought, and I too wondered how many stars that we see in the night sky lost a partner to the black hole.) 하지만 태양은 거대질량블랙홀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짝별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It turns out the Sun was probably born far away from the supermassive black hole and so did not lose a partner in that way.) 지난 45억년 동안 태양의 궤도는 블랙홀이 있는 은하의 중심에 가까이 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다른 식으로 짝별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 태양은 처음부터 짝별이 없었다는 답이 올 줄 알았는데 도리어 궁금증만 커졌다. 바로 질문을 하려다 너무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 일단 구글에서 ‘sun & binary star’로 검색해봤다. 뜻밖에도 태양과 쌍성을 연결하는 문서들이 올라와서 몇 개를 열어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984년 네메시스 가설 나와 태양의 짝별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데 그 이름이 네메시스(Nemesis)라는 것.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 네메시스를 검색해보니 설명이 꽤 길다.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네메시스 가설의 출발점은 1984년 2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한 논문이다. 고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라우프와 잭 셉코스키는 이 논문에서 지난 2억5000만 년 동안의 화석을 조사해보니 2600만 년 주기로 12번의 대멸종이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은 지구 밖에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논문이 나가고 얼마 뒤 이 원인을 추정한 논문 두 편이 ‘네이처’에 나란히 실렸는데 둘 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태양의 짝별이 대멸종의 원인이라고 제안했다. 즉 심한 타원 궤도를 갖는 적색왜성 또는 갈색왜성이 주기적으로 오르트구름(Oort cloud, 장주기혜성의 근원지)을 교란해 태양계로 향하는 혜성의 수를 늘려 대멸종을 초래했다는 것. 태양의 숨은 짝별에 네메시스란 이름이 붙여진 배경이다.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이다. 연구자들은 네메시스가 태양에서 1.5광년쯤 떨어진 곳 어디에 있을 거라고 추정했다. 네메시스는 적외선을 방출하는 차가운 왜성으로 추측됐기 때문에 1980년대 적외선천체위성(IRAS)이 네메시스를 찾았으나 실패했고 1997~2001년 벌어진 2MASS천체조사에서도 역시 찾지 못했다. 그런데 2003년 태양계에서 심한 타원궤도를 보이는 미(微)행성(planetoid) 세드나(Sedna)가 발견되면서 다시 네메시스가 주목을 받았다. 태양만으로는 세드나의 극단적인 공전궤도(태양에 가장 가까울 때는 76AU(천문단위. 1AU는 태양과 지구의 평균 거리), 가장 멀 때는 975AU)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4년 세드나의 발견으로 재조명된 네메시스 가설에 찬물을 끼얹는 논문이 ‘네이처’에 발표됐다. 세드나의 특이한 공전궤도는 네메시스 때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점에 태양계를 스치고 지나간 별에 의해 궤도가 교란된 결과일 수 있음을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준 것. 이미 거대질량블랙홀에서 네메시스로 관심이 넘어간 기자로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누가 이런 연구를 한 거야?’ 논문 파일을 다운받아 저자를 찾아본 기자는 정말 깜짝 놀랐다. 저자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벤자민 브롬리 교수가 아닌가! 문득 손오공이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태양이 어떻게 생겨났나 찾아보니 초신성폭발로 생긴 우주먼지와 구름이 중력으로 뭉쳐지면서 별 무리가 생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태양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브롬리 교수에서 보낸 이메일에서 기자는 지난 탐구여정(!)을 요약한 뒤 네메시스를 찾을 가능성이 있는지, 또는 태양이 태어났을 때 별 무리 가운데 하나가 짝별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봤다. “Down-loading the paper(‘Stellar encounters as the origin of distant Solar System objects in highly eccentric orbits’) and I found that one of authors was YOU!! Now I ask one more question. Is there any possibility to find the Nemesis as a hidden companion star of the Sun? Or according to one scenario the Sun born in the cluster of Stars, is there any possibility the sun had its companion among them but it has disappeared for what reason?” 질문에 대해 브롬리 교수는 태양은 아마도 1000여개의 별무리 속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가까이에 별들도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태양은 짝별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짝별은 이른 시기에 주변 다른 별들과의 상호작용으로 태양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설명했다. “I think the Sun had close companions when it was young--it was likely born in a cluster of ~1000 or so stars. The sun may even have had a binary partner (nemesis) but the partner (if it was very far away, as in the nemesis hypothesis) got stripped away from the sun very early on, when there were a lot of other stars nearby to interact with.” 브롬리 교수는 가설처럼 먼 거리(1.5광년)에 네메시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과거 태양의 궤적을 추적해 태양이 태어난 위치나 초기에 함께 있었을지도 모를 짝별을 찾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미에 기자가 세드나 논문을 찾은 게 아주 기쁘다고 덧붙였다. (I am very glad that you found our paper on Sedna!) ●1000~10만 년에 하나 꼴로 희생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브롬리 교수와 공동연구자들이 제안한, 초거대블랙홀이 커지는 메커니즘을 좀 더 보자. 태양처럼 홀로 있는 별이 블랙홀의 중력에 잡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반면 쌍성은 훨씬 높은데 왜냐하면 두 별이 무게중심을 놓고 서로 공전하는 쌍성은 볼라(bola, 양 끝에 쇠공이 달린 올가미)와 같기 때문이다. 블랙홀 옆을 지나가던 쌍성 가운데 하나가 블랙홀 중력에 잡히면 나머지 짝은 떨어져 나가면서 속도가 더 붙어 그 자리를 벗어난다. 이런 별을 초속도별(hypervelocity star)라고 부른다. 한편 블랙홀에 잡힌 별은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블랙홀에 다가가다 결국은 찢겨 빨려 들어간다. 물론 태양은 초속도별이 아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쌍성 가운데 하나가 포획되고 빨려 들어가는 빈도가 각각 1000~10만 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났다고 예상했다. 이들 별의 평균 질량은 태양의 0.1~0.5배로 추정했다. 결국 태양계 중심의 거대질량블랙홀은 이런 식으로 엄청난 별들을 먹어치웠고 지난 50억~100억년 동안 몸무게를 2~4배 키웠다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네메시스는 물 건너 간 스토리인가? 대체로 그런 분위기이지만 아직 미련은 남아있다. 지난 2009년 NASA가 발사한 광역적외선탐사위성(WISE)이 네메시스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WISE는 태양에서 10광년 거리 안에 있는 표면온도가 영하 120도인 갈색왜성도 탐지할 수 있는 감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보낸 예비조사 결과에서는 네메시스의 흔적이 없었다. 내년에 최종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 만에 하나라도 네메시스가 발견된다면 굉장한 뉴스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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