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빛공해가 준비한 왕벚꽃 향연

2011.04.11 00:00
살랑살랑~ 봄바람에 한결 따뜻해진 이번 주부터 전국 곳곳에서는 꽃 축제가 열린다. 4월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왕벚꽃, 경기 이천시에서 산수유꽃 축제가, 9일부터 인천 강화 고려산에서 진달래, 경북 김천에서 자두꽃 축제가, 15일부터 경북 영덕에서 복사꽃 축제가 열린다. 전 국민은 어떤 꽃을 보며 봄을 즐길지 골라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이맘때, 기자는 10만 명의 인파 속에 묻혀 여의도 윤중로에 있는 벚꽃축제를 갔었다. 역시 소문대로 여의도역과 여의나루역은 발 디딜 틈조차 없고, 도로는 주차장처럼 정체돼 있었다. 오징어나 고구마스틱 같은 먹을거리까지 팔아 진정 축제임이 느껴졌다. 하지만 해가 지고 난 뒤부터는 설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벚꽃이 한순간 촌스러워진 것이다. 옥수수가 익어 터진 듯 새하얗던 벚꽃은 빨강, 파랑, 녹색,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나무마다 인공조명을 칭칭 감아놓은 덕분(?)이었다. 짙은 화장을 한 10대 여자아이처럼 벚꽃은 억지로 꾸며져 있었다. 과도한 빛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는 ‘빛공해’ 그 자체였다. 인공조명은 꽃들의 아름다운 경관을 망칠 뿐 아니라 성장과 생식도 방해한다. 이미 학계에는 밝은 가로등 옆에 있는 나무들은 단풍이 늦어지고 건강하지 못한 열매를 지나치게 많이 맺거나 수명이 짧아진다고 보고돼 있다. 식물이 정상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성장하려면 빛을 쬐는 시간이 하루 12시간 이내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요기를 위해 봄꽃들은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빛공해에 찌든 것은 봄꽃뿐이 아니다. 지나친 가로등 불빛이나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으로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너무 환한 밤과 낮을 구분하지 못해 생체리듬이 깨진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해양생물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일도 있다.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동식물과 사람의 생활리듬이 깨지고 생태계가 교란되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빛공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해 인공조명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인공조명에 대한 법을 만들어 100개 도시를 관리하고 있고, 일본도 1998년부터 ‘빛공해 대책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인공조명을 제한하는 수단이 없다. 2009년 의원입법으로 빛공해방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이 전부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도시 전광판의 87%가 국제기준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인공조명 사용을 제한하기 전에 ‘지나친 빛은 공해’라는 인식이 먼저 생겨야 할 것을 강조했다. 봄을 즐기기 위해 밤에라도 꽃을 보고 싶은 현대인의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낮은 낮다워야 하고 밤은 밤다워야 한다! 억지로 빨갛고 파랗게 빛나는 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올해 여의도에서는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새하얗게 빛나는, 얼굴을 보이는 듯 숨기는 듯 수줍어하는 청초한 벚꽃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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