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AI의 교훈… 축산시스템 바꾸자]<下> 동물복지형 축사 가보니

2011.03.25 00:00
[동아일보] 햇볕이 최고 보약… 지붕 여니 질병 뚝-성장 쑥 ‘복돼지’로

《 축사 안에는 상쾌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활짝 열린 지붕과 양 벽으로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돼지들은 ‘꿀꿀꿀∼’ 소리와 함께 작은 귀를 팔랑거리며 폭신폭신한 톱밥 위를 활기차게 걸어 다니고 서로 장난도 쳤다. ‘동물복지형 축사’에 도전하고 있는 전남 해남군의 돼지 농가 ‘강산이야기’를 이달 초 찾아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농장 대표 강민구 씨가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그의 뒤로 보이는 축사 주변 조경은 마치 교외의 펜션처럼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축사가 참 예쁘다’고 하자 그는 “앞으로 유럽처럼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와서 돼지를 만져보고 먹이주기 체험도 할 수 있게 하려고 열심히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보여줄 수 있는 축산’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깨끗하고, 냄새 안 나고, 돼지들이 행복하다면 축사를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그는 “‘강산’이란 농장 이름은 초등학생인 아들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며 “아들 이름을 걸고 친환경 축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자연과 하나된 축사-분뇨는 유기농 퇴비로 강 대표 농장의 가장 큰 특징은 ‘열려 있다’ ‘톱밥을 깔아놨다’ ‘헐렁하다(?)’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축사의 벽과 지붕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열려 햇빛과 바람이 통하도록 돼 있다. 바닥에는 모래사장보다 푹신해 보이는 톱밥이 고슬고슬하게 깔려 있다. 축사 크기는 일반 돼지 농장과 비슷했지만 돼지의 수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딱 봐도 돼지들이 넓은 곳에서 키워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물복지형 축산이라고 하면 첫째가 밀집사육을 하지 말아야지요. 햇볕, 바람을 통하게 하고 스트레스만 받지 않게 해줘도 돼지들은 훨씬 건강해져요.” 강 대표는 “일반적인 돼지 농가에서는 보통 4평에 15∼17마리를 넣는데 우리는 5마리만 넣는다”며 “새끼돼지들이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보니 서로를 물어뜯지 않아 이를 뽑거나 꼬리를 자를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 다른 농가에서는 돼지 꼬리를 새끼 때 잘라버리기 때문에 길이가 채 10cm도 되지 않았지만, 강 대표 농장의 돼지들은 꼬리가 20cm 이상 자라 동그랗게 말려있었다. 그는 “꼬리가 남아있다는 건 돼지들이 넉넉한 공간에서 자랐다는 뜻”이라며 “그래서인지 돼지들에게 흔한 호흡기질환이나 감기, 설사병도 우리 농장에서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강 대표 농장의 또 다른 강점은 ‘톱밥’ 바닥. 일반적인 돼지농가에서는 플라스틱이나 시멘트 바닥에 홈을 파 분뇨가 밑으로 떨어지게 하지만 그는 축사 바닥에 30cm 정도 깊이로 톱밥을 깔고 그 위에서 돼지들이 대소변을 보도록 하고 있었다. “우리 농장에는 돼지 똥 전담 직원이 있어요. 하루 종일 축사를 다니면서 똥만 줍는 거지요. 똥을 주운 자리에는 소나무 톱밥을 뿌려요. 소나무 진액이 구충을 잡아줘서 냄새도 없고 효과가 탁월하거든요.” 그는 “소변 같은 경우엔 돼지들이 한 자리에만 일을 보는 습성이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톱밥을 사용하면 분뇨처리 비용도 들지 않고 축사도 아주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강 대표와 비슷한 규모의 일반 돼지축사에서는 분뇨처리비로만 연간 7000만∼8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돼지 분뇨를 퇴비로 발효시켜 이웃 농가에 팔고 있었다. “마을에 유기농 밭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용달차 하나 기준으로 15만 원 정도 받고 주는데, 퇴비로는 최고라고 다들 만족스러워해요.” ○ 성장·출산 쑥쑥… 수익률도 ‘복돼지’ 강 대표는 동물복지에 필요한 또 한 가지로 햇빛을 꼽았다. “돼지도 사람처럼 볕을 쬐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져요. 방역의 기본은 소독이 아니라 면역력을 키워주는 거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햇빛은 최고의 소독약이지요.” 이 때문에 축사 지붕은 슬라이드식으로 열릴 수 있게 지어졌다. 지붕뿐 아니라 벽도 시멘트가 아닌 천막소재를 사용해 언제든지 커튼처럼 열 수 있다. 그는 “공간이 넓고 햇볕과 바람이 통하니 돼지들이 병에 강하고 성장속도도 빠르다”며 “똑같이 태어난 돼지가 우리 농장에서 115kg으로 자랄 때 다른 농장에서 자란 돼지는 90kg정도밖에 안 나가더라”고 귀띔했다. 갓 태어난 새끼돼지들도 덩치가 크다. 일반적인 새끼돼지의 무게는 700∼800g인 데 반해 이 농장의 돼지는 보통 1kg 정도라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엄마들이 건강하니까 새끼들도 큰 거 같다”며 “크게 태어난 놈들은 나중에도 더 크더라”라고 설명했다. 돼지들이 건강하다 보니 수정률과 출산성공률도 높다. 강 대표는 “비슷한 규모의 일반 돼지 농장에서는 보통 한 달에 6, 7마리의 새끼돼지가 죽는다”며 “우리 농장에서는 1년 반 동안 죽은 돼지가 7마리에 그쳤다”고 말했다. 무게가 더 나가고 육질이 좋다 보니 시장의 반응은 당연히 좋다. 그는 “요즘 시세가 돼지 한 마리에 54만 원 정도인데 우리는 7만 원을 더 받았다”며 “300마리로 계산하면 2000만 원이 넘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서는 짭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친환경 축산물 유통과정에서는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듯했다. 공들여 기른 만큼의 값을 주는 거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착하게 기르고, 좋은 돼지 만들고, 돈까지 더 벌 수 있다면 누가 동물복지형 축산을 마다하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막상 시장에 가면 다 같은 고기로 취급된다는 거죠. 아무리 친환경이라고 설명을 해도 결국 ‘가격’이에요. 그러다 보니 농가들이 동물복지형 축산에 선뜻 도전할 수 없는 거고요.” 해남=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 유럽, 1968년 동물복지 협정 마련… 고통 최소화 ▼ “동물들이 불필요한 고통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충분한 사육 공간이 있어야 한다.”(EU, 농장에서의 동물복지 규정) “가축은 반드시 혼절시킨 뒤 도축해야 한다. 도축의 방법, 장비, 시설 등은 동물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도록 고안돼야 한다.”(EU, 도축장에서의 동물복지 규정) 이처럼 농장과 도축장에서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까지 고려한 유럽연합(EU)은 축산 동물 복지와 관련해 가장 앞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지역이다. 유럽 각국은 1968년 동물복지에 대한 협정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 동물복지 주도하는 유럽 1986년 산란계의 과도한 밀집 사육을 금지하는 지침, 1991년 송아지 사육 기준과 돼지 사육 기준에 대한 지침을 잇달아 마련하면서 EU 국가들은 동물복지를 선도하게 됐다. 1822년 영국에서 세계 처음으로 동물보호법이 통과된 것이 유럽 동물복지 정책의 시발점이다. 한국수의과학검역원 동물복지과 이황 연구원은 “유럽에서는 내년부터 산란계의 배터리 케이지(상자형 철망) 사육이 금지된다”며 “이미 홰와 모래목욕 상자 등 동물복지를 고려한 닭장이 고안돼 보급되는 등 유럽 국가들은 명실상부한 동물복지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EU에서는 또 동물들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물과 먹이 공급) △불편으로부터의 자유(적절한 사육 환경) △고통,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부상방지 및 신속한 도축)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사육 공간 및 시설 확보) △공포와 고민으로부터의 자유(심적 고통 방지)를 누릴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 생산자 자각도 중요 미국은 ‘28시간 법’ 등을 제외하면 연방정부 차원의 동물복지 관련 법안은 많지 않다. 28시간 법은 동물을 28시간 이상 계속 가둬 운송하지 못하게 한 법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애리조나, 오리건 등 각 주 단위로는 송아지와 돼지 사육 등에서 동물복지를 규정한 법률이 마련돼 시행 중이다. 소비자단체의 ‘입김’이 센 미국에서는 축산이나 유통 기업들이 기업 이미지를 높이려는 차원에서 자체적인 동물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2007년부터 축종(畜種)별로 단계적인 동물복지 정책을 제정해 시행해 오고 있다. 2009년 돼지와 산란계에 대한 동물복지 사육 지침이 완성됐고, 지난해 육계와 젖소에 대한 동물 복지 사육 지침이 마련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동물복지형 축산의 동향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해외에서는 시민 단체의 동물복지 주장과 함께 생산자들의 자각이 동시에 이뤄졌다”며 생산자 단체의 자각이 동물복지 국가로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동물복지와 관련한 국제기구의 활동도 활발하다. 동물복지 문제를 선도적으로 다루고 있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동물복지와 관련한 각종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전 세계 177개 회원국들에 권고하고 있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국제금융공사(IFC)는 저개발국가 및 개발도상국의 농장 동물복지를 위한 시설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주성원 동아일보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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