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AI의 교훈… 축산시스템 바꾸자]가축 ‘벌집사육’… 전염병 무방비

2011.03.24 00:00
[동아일보] 정부 오늘 개선대책 발표 축산업 허가제 도입하기로… 사육 마릿수 총량제는 빠져

《 축사 문이 열렸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두 글자는 ‘지옥’이었다. 현장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참했다. 어미 돼지들은 쇠파이프로 짠 케이지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서 새끼를 낳았다. 마치 ‘출산기계’ 같았다. 어미들이 낳은 새끼돼지 100여 마리는 15m²(약 4.5평) 크기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자라고 있었다. 분뇨가스 때문에 돼지들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었다. 참혹함에 고개를 돌렸다. 》 최근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의 주원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밀집사육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9, 10일 국내 3개 지역의 돼지, 닭, 소 농장을 각각 둘러봤다. 일명 ‘공장식 사육’ ‘아파트식 사육’으로 불리는 밀집사육은 비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몰아 기르는 방식이다. 수익성을 높일 수 있어 국내 축산농가들이 쓰는 보편적 사육법이지만 가축들은 햇빛을 받거나 운동을 할 수 없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축사 안에서는 생명에 대한 존중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농가들은 밀집사육에 따른 면역력 저하로 인한 질병 감염을 막기 위해 각종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구제역 사태처럼 일단 가축 전염병이 돌았다 하면 꼼짝없이 수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는 올해 초부터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를 목표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왔다. 24일 국무총리실 주재로 발표될 이번 대책에는 가축 전염병 사전 차단과 발생 시 대처 강화, 축산분야 체질 개선을 위한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먼저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 농가들이 반드시 축산교육 등을 수료하고 ‘허가’를 받아야 축산업을 할 수 있는 ‘축산업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가축 전염병 발생 시 소요되는 백신과 도살처분 비용을 지방자치단체들에 공동 부담하도록 해 관리 강화를 유도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축산농가들도 평상시 방역 노력 여부에 따라 도살처분 보상비를 차등 지급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간 가장 큰 논란이 돼 온 ‘사육 마릿수 총량제(제한제)’는 축산농가의 심한 반발과 시행상 어려움을 고려해 이번 대책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축산농가의 밀집사육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행 사육면적 규정도 지키지 못하는 농가가 태반이라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의 축산농가 65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농가의 절반 이상이 ‘(밀집사육을 지양하는) 동물 복지형 사육 도입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밀집사육이 보편화된 양돈, 양계농가의 경우 65%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양돈농장주는 “지금의 축산물 유통구조에서는 친환경으로 키웠다고 해서 노력한 만큼 값을 더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지금보다 마릿수를 줄이는 사육을 하라는 건 농장주더러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임우선 동아일보 기자 imsun@donga.com 주성원 동아일보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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