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의 성장엔진을 찾아라]<5>바이오 산실,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

2011.01.12 00:00
[동아일보] “지금은 정보통신, 미래엔 생명과학”… 1000개 기업 선점 레이스 《2011년 현재 이스라엘 경제를 이끄는 주역은 탄탄한 군사기술에서 파생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제전문가들은 “좀 더 먼 미래엔 주력산업 지형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ICT산업에서 생명과학 산업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생명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벤처투자 자금의 25%가 몰릴 정도다. 이스라엘의 기술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수석과학관실(OCS·Office of the Chief Scientist) 역시 지원 예산의 30%를 바이오, 나노 등 생명과학 분야에 몰아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미래를 생명과학 기술 선점에 걸었다.》 “10년 뒤 이스라엘의 모습을 취재하러 이곳에 오셨다고요? 그렇다면 잘못 오셨습니다. 이곳은 2030년, 2040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거든요.(웃음)” (다비드 카헨 바이츠만연구소 소재과학부 학장) 지난해 12월 2일 이스라엘 생명과학기술 산실로 유명한 바이츠만연구소를 찾았을 때 카헨 학장은 “우리가 연구하는 기술은 빨라야 2030년쯤 상용화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 미래 먹을거리의 씨앗, 기초과학에만 집중 바이츠만연구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스라엘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이다. 2009년에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다 요나트 교수를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이츠만연구소는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이 세웠다. 연구소의 존재 목적은 ‘이스라엘의 미래 먹을거리를 찾는 것’. 그러나 이들은 실용과학 연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레셰프 텐네 바이츠만연구소 나노과학센터 담당교수는 “기술의 대도약을 가져올 수 있는 건 오직 기초과학뿐”이라며 “바이츠만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든 연구자의 자유지만 실용과학에 대한 연구는 ‘거의 범죄로(almost crime)’ 취급한다”고 말했다. 겉에서 본 바이츠만연구소의 풍경은 미국 대학 캠퍼스 같았다. 녹음이 우거진 교정에 세워진 여러 건물 사이로 30, 40대 젊은 연구자와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들이 오갔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이곳은 대학과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학부생이 없는 것이다. 텐네 교수는 “이곳에서는 분야별 최고의 교수들이 석사 이상의 연구진과 함께 연구한다”며 “강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연구와 논문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교수들에겐 거의 파라다이스(낙원)”라고 말했다. 바이츠만연구소의 전체 연구자는 2800명. 연구소 내에는 250여 개 연구그룹이 있는데 그룹마다 전담 교수가 있다. 그룹을 이끄는 교수들은 적게는 2, 3명에서 많게는 10명 이상의 연구진을 데리고 전문 분야를 연구한다. 텐네 교수는 “각 그룹은 소규모지만 교수들끼리, 연구진끼리 협력이 매우 유기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 수십 명이 함께 일하는 ‘융합연구’가 많이 진행된다”고 전했다. 바이츠만연구소 연구그룹은 70%가 바이오, 나노 등 생명과학 연구에 집중돼 있다. 나머지 30%는 화학과 물리, 수학 등 기초학문을 연구한다. 실제 기자가 둘러본 연구동에서는 집채만 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세포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모습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 기초과학으로 수십억 달러 특허 수익 바이츠만연구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실용기술이 아닌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츠만연구소는 천문학적 금액의 특허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십수 년 전 연구한 기초과학 기술들이 지금의 생명공학, 신재생에너지, 전자, 화학 기업들의 제품 개발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츠만연구소의 특허수익 규모는 비공개 자료지만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바이츠만은 이스라엘의 최대 제약사 ‘테바(Teva)’ 한 곳에서만 연간 1억 달러(약 1130억 원)의 로열티를 얻는다”고 귀띔했다. 이는 1959년 바이츠만연구소가 만든 ‘예다(Yeda)’라는 조직 덕분이다. 예다는 바이츠만연구소 내의 독립기업으로, 연구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학문적 기술에 대해 특허전략을 짜고 이를 기업에 판매하는 일을 맡는다. 연구소의 재원 확보는 물론이고 연구자들의 성과물이 사장되지 않고 실제 인간의 삶에 활용되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얻는 특허 수익의 60%는 연구소에 소속되고 나머지 40%는 연구교수에게 돌아간다. 텐네 교수는 “바이츠만에서는 교수들이 특허 등록이나 기업 접촉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며 “오직 좋은 기술을 발견하고 좋은 페이퍼(논문)를 쓰는 것이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말했다. 예다가 크게 성공하면서 현재 이스라엘 대학들은 대부분이 예다와 같은 기술판매 기업(TTO·Technology Transfer Office)을 갖추고 있다. 이스라엘 과학계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연구실 기술이 기업으로 쉽고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바로 이 TTO 덕분”이라며 “만약 한국의 대학에 아직 이런 조직이 없다면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기초과학 기술과 연구 인재들을 바탕으로 10년 전 200여 개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생명과학 기업은 현재 1000개 이상으로 늘어난 상태다. 이스라엘 하이테크산업연합 관계자는 “이 기업들은 10곳 중 4곳이 설립 5년 미만의 신생기업”이라며 “그럼에도 이 중 30% 이상이 이미 이익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레호봇·예루살렘=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이스라엘 수석과학관실 샤울 프레이라이치 부실장 “정부 지원자금 27.7%, 생명과학 기업에 투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경제적 가능성이 없으면 예산 지원 대상에서 탈락됩니다. 수출 가능성이 적은 프로젝트도 탈락입니다.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작아서 해외에 팔 수 있는 기술이라야 가치가 있거든요.” 지난해 11월 29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산업무역노동부 청사에서 만난 수석과학관실(OCS·Office of the Chief Scientist) 샤울 프레이라이치 부실장은 “OCS는 철저히 산업적 차원에서 될 성싶은 기업들을 판별해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자원 없는 나라의 힘은 인재뿐’이란 믿음으로 1985년 연구개발(R&D)법을 제정했다. 그 일환으로 설립된 OCS는 이스라엘 기술산업 발전과 관련한 모든 정책과 펀드운용을 맡고 있다. 바이츠만연구소 같은 기관이 기술 진보를 위한 ‘기초과학’에 매진한다면 OCS는 ‘실무기술’ 지원을 담당하는 셈이다. OCS에는 바이오, 나노, 전자, 기계, 의료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70명의 ‘수석과학관’들이 있다. 이들은 벤처기업이 제출한 기획안을 수시로 검토하고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를 골라 자금 지원을 결정한다. 프레이라이치 부실장은 “단순히 교수나 기업 임원 같은 사람들은 수석과학관이 될 수 없다”며 “산학연 여러 분야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쌓은 사람이어야 기업 가치를 제대로 판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원이 집중된 분야는 바이오·나노다. 지난해 OCS 지원자금 중 27.7%가 생명과학 분야 기업에 돌아갔다. 지원프로그램 중 눈에 띄는 것은 ‘인큐베이터’와 ‘마그넷’ 프로그램.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은 너무 초기여서 일반 투자가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현재 24개 인큐베이터가 운영 중이다. 1개 인큐베이터에는 동종 분야의 8∼10개 기업이 포함된다. 프레이라이치 부실장은 “OCS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프로젝트 성공 시 의무적으로 로열티를 환급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OCS는 연간 1억 달러의 예산을 확보하는데, 이는 다시 신생 기업의 R&D에 투자된다”고 설명했다. 마그넷은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에만 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레이라이치 부실장은 “산학협력 시너지를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바이오산업은 대부분의 원천기술이 대학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그넷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임우선 동아일보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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